금요진단

불확실성의 미래, 기초과학으로 밝혀나가자

2021-04-30 00:00:01 게재
이준호 서울대 생명과학부 교수, 자연과학대 학장

필자는 30년 이상 예쁜꼬마선충(Caenorhabditis elegans)을 연구해온 생명과학자다. 생명과학 중에서도 기초학문 성격 영역의 연구자다. 유전 발생 신경계, 그리고 진화가 주요 관심사다. 오늘 필자는 편하게 쓸 수 있는 전문영역을 조금 벗어나는 모험까지 하면서 기초과학의 중요성을 주장하려고 한다. 그만큼 절실하기 때문이다.

기초과학은 호기심을 기반으로 자연현상에 대한 새로운 이론과 지식을 정립하기 위해 행하는 기초연구를 말한다. 기초과학의 특징은 시간이 오래 걸릴 수 있고 아무런 실용적 용도가 드러나지 않을 수 있다는 점이다. 하지만 당장 쓰임새가 없어 보여도 결국은 미래 과학기술의 초석이 된다.

필자는 같은 식당을 열번은 가야 겨우 가본 곳이라는 것을 알고, 우회전을 두번만 해도 방향감각을 잃는 길치지만 요즘 전혀 불편하지 않다. GPS로 방향을 정확히 알려주는 내비게이션이나, 실시간으로 갈 길을 보여주는 앱을 이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GPS는 엄청난 기술이 들어가 있는, 하지만 일상에 가까이 와있는 첨단과학의 산물이다. 그 유명한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이 없었다면 GPS 기술은 탄생할 수 없었다. 지구 궤도를 엄청난 속도로 돌고 있는 GPS 위성의 시간을 상대성이론으로 보정하지 않으면 궤도오차가 하루에도 수 ㎞에 달할 수 있고 차량 내비게이션의 순간오차가 수 m씩 생길 수 있다고 한다.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이 이 세상의 모든 길치들을 환호하게 만드는 GPS 내비게이션 기술을 가능하게 해준 것이다.

UN의 어젠다2030 | 2030년까지 달성해야 할 목표 17개가 제시됐는데 이중 보건과 웰빙, 식수위생, 에너지, 기후행동 해양생물 육상생물 6개는 기초과학과 밀접히 연관돼 있다.


이렇듯 기초과학은 멀리 떨어져 있는 지적 사치가 아니라 우리 삶의 토대다. 여기서 간과할 수 없는 중요한 사실은 공공 영역에서 진행된 기초과학의 업적들이 널리 공유될 수 있었다는 점이다. 공유된 기초과학의 성과들은 짧은 시간 안에 다양한 용도로 비약적 발전해 전세계에 이롭게 쓰이도록 응용될 수 있었다.

mRNA 백신 개발은 기초과학의 승리

기초과학은 우리의 삶을 윤택하게 하고, 어떤 때는 우리의 삶을 구원하기도 한다. 코로나19 팬데믹이 2019년 이후 지금까지 전세계를 위협하면서 인류 대 코로나바이러스와의 전쟁이라 할 정도로 치열한 상황이 지속되고 있다. 이 전쟁의 승자가 인류가 될 것이라는 확신을 갖게 해주는 것이 백신이다. 백신은 개발에 10년은 족히 걸리는 지난한 과정의 산물이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개발 착수 1년도 안돼 아주 효과적인 백신을 만들 수 있게 되었다.

백신 개발 경주에서 가장 먼저 결승점에 도달한 것은 이전에 볼 수 없었던 아주 새로운 형태의 mRNA 백신이다. mRNA 백신의 작동 기전은 바이러스 표면에 있는 스파이크 돌기단백질 정보를 가진 mRNA를 인체에 주입해 스파이크 단백질 항원을 만들게 하고, 사람은 이 항원에 대한 항체를 형성하도록 면역계를 활성화시키는 것으로 이루어진다. 한번도 상용화해 유통된 적이 없는 mRNA 기반 백신이, 그것도 두개씩이나 전통의 백신들을 제치고 불쑥 스타덤에 올랐을까. 이 엄청난 성공이야말로 60년이라는 긴 시간을 견뎌온 기초과학의 승리라고 할 수 있다.

1953년 발표된 왓슨과 크릭의 기념비적 논문으로 DNA의 이중나선 구조가 밝혀진 후 분자생물학 시대가 활짝 열린다. 그후 mRNA가 생명과학의 전면에 등장한 것은 1961년이다. 분자생물학자들이 DNA에 담겨 있는 유전정보 즉 설계도가 어떤 과정을 거쳐 단백질이라는 최종 산물을 만들어 낼 수 있을까에 대한 답으로 mRNA를 찾아낸 것이다. mRNA는 직접 단백질 제조공장인 리보좀과 연결돼 단백질을 만들 수 있는 정보를 풀어내는 역할을 한다.

이런 점에 착안해 mRNA를 다양한 질병치료에 응용할 도구로 쓸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한 연구가 진행되어 왔다. 그 연구자 중 한사람인 카탈린 카리코 박사는 화이자-바이오엔테크 코로나19 백신 개발의 주역이 된다. mRNA 백신이 성공하기까지는 mRNA의 기전 규명이라는 기초연구뿐 아니라, mRNA에 의해 발생되는 이상면역반응에 대한 연구, 이를 회피할 수 있는 변형된 mRNA의 개발, 그리고 mRNA를 담아 세포 속으로 운반할 지질나노입자의 개발 등이 필요했다. 이 모든 연구 결과물들이 한꺼번에 잘 짜여진 오케스트라와 같이 협력함으로써 인류 역사상 가장 짧은 시간 내의 백신 개발 성공의 신화를 이룰 수 있었다. 그 기저에는 끝없는 호기심과 질문에 기반한 기초과학연구가 있었다.

공공재로 돈벌이를 해도 될까

기초과학으로 돈벌이가 될까? 아니 돈벌이를 해도 될까? 소아마비는 20세기 초 전세계를 위협한 질병중 하나였다. 소아마비 희생자였던 루스벨트 대통령은 이 질환 극복을 위한 연구를 적극 추진했고, 그에 부응해 요나스 솔크 박사가 백신 개발에 성공했다. 이 백신의 힘으로 전세계가 소아마비의 공포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솔크 박사가 소아마비 백신을 발표하는 현장에서 특허에 관한 질문을 받았을 때 “태양에도 특허를 걸 수 있나요?”라고 물었다고 한다. 공기나 물에 특허가 없듯이 인류가 필요로 하는 백신에는 특허를 걸지 않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라고 이해가 된다. 물론 소아마비 백신 개발은 정부 주도로 진행된 것이라 공공의 성격이 강해서 특허를 포기했을 수도 있겠다.

최근의 mRNA 코로나 백신의 경우는 어떤가? mRNA 백신은 작은 바이오 기업들이 힘들게 끌어온 연구의 산물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경우에도 공공재 성격이니 공유해 달라고 할 수 있을지 자신이 없다. 어려운 문제지만 아주 불가능하지는 않은 듯하다. 아스트라제네카는 코로나 백신으로는 돈을 벌지 않겠다고 선언했다고 한다.

‘기초과학의 해 2022년’이 전환점 되길

mRNA 백신 사례에서 보듯 기초과학은 종종 인류의 구원자 역할을 한다. 특히 미래 인류사회의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해서는 기초과학이 역할을 해야 한다. 다행히 유네스코는 2022년을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한 기초과학의 해’로 선포하기 위한 결의를 채택했고 올해 UN 총회에서 의결될 것으로 기대된다. 세계의 다양한 학회와 학술기구들이 이 일에 동참하고 있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아직 구체적인 움직임은 없다.

2022년에는 우리나라에서도 기초과학을 다시 새겨보는 계기가 마련되기를 기대해본다. 구체적으로는 호기심 넘치는 과학교육 강화, 기초과학 지원 강화, 지식의 공유, 과학에서 여성의 역할 확대, 그리고 남북교류 강화를 포함하는 국제협력 강화가 주요 내용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리하여 우리나라 어린이들의 미래 꿈 중 하나가 과학자였던 시절로 다시 돌아갈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상상을 해본다. 과학은 즐거운 상상으로 출발해서 경이로운 발견으로 매듭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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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N의 아젠다2030과 2022 세계 기초과학의 해 추진

2015년 제70차 UN총회에서는 2030년까지 달성하기로 한 지속가능발전목표(SDGs:Sustainable Development Goals)를 설정했다. 이것은 지속가능발전의 이념을 실현하기 위한 인류 공동의 17개 목표로 ‘2030 지속가능발전 의제’또는 ‘아젠다 2030’이라고 한다.

'단 한 사람도 소외되지 않음'이라는 슬로건과 함께 인류가 나아가야 할 방향성을 17개 목표로 제시했는데 그중 기초과학과 연관된 것이 무려 6개나 있다. △보건과 웰빙(3번 의제) △식수위생(6) △에너지(7) △기후행동(13) △해양생물(14) △육상생물 (15) 등이 그것이다.

이와 같은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해 기여할 수 있는 중요한 도구가 기초과학이다. 이라는 인식에서 출발해 올해 UN 총회에서는 2022년을 세계기초과학의 해로 선포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세계기초과학의 해 추진을 위한 국제적 기구가 발족되었고, 우리나라에서는 과학기술한림원이 국제 자문위원의 일원으로 참여하고 있다. 2022년 기초과학의 해가 선포된다면 우리나라에서도 다양한 행사를 통해 기초과학을 다시한번 바라볼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