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진단

오늘 대선후보 TV토론을 보신다면

2022-02-11 12:14:23 게재
이현우 서강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현대정치연구소 소장

오늘 저녁에 두번째 대선후보 4자 TV토론이 열린다. 지난 3일 첫번째 토론회의 시청률은 39%로 1997년 대선후보 TV중계 다음으로 높았다. 이번 대선이 유례없는 비호감 선거라고 하지만 유권자들은 후보자들의 자질을 평가하기 위한 정보에 메말랐던 모양이다.

늘 그래왔듯이 언론은 TV토론이 대선후보들의 개인적 역량과 정책입장을 객관적으로 비교할 기회이며, 토론회가 후보들의 지지변화에 상당한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기사를 쏟아낸다. 지난 토론회 이후에도 지지율 지형의 변화가 없었는데 말이다.

케네디-닉슨 TV토론 뒤집어보기

한국의 대선후보 TV토론은 1997년 15대 대선 때 처음 도입됐다. 14대 대선에서 김대중 후보의 토론제안이 있었지만 당시 판세가 우세하다고 여긴 김영삼 후보가 거부해 성사되지 못했다.

역사상 최초의 대선후보 TV토론은 1960년 미국에서 시행됐다. 민주당의 케네디 상원의원과 공화당의 닉슨 현직 부통령간의 1시간짜리 토론방송이었다.

대선후보 TV토론이 선거판세 변화를 가져온다고 주장하는 이들이 반드시 언급하는 것이 바로 1960년 미국 대선후보 1차 토론회다. 왜냐하면 닉슨 후보가 첫번째 토론회를 완전히 망쳐버렸고 상대적으로 전국적 명성이 낮고 정치경륜이 일천하다고 평가된 젊은 케네디 후보가 신뢰를 얻는 계기가 됐기 때문이다. 실제로 1차 토론회를 계기로 케네디의 지지율은 상당히 상승했다.

그런데 여기서 눈여겨봐야 할 것은 TV토론 효과사례로 인용되는 1960년 첫번째 토론회가 사상 최초의 TV토론이라는 사실이다. 닉슨 후보는 TV로 중계되는 상황에 대처가 매우 미흡했다. 메이크업을 거부하고 생얼로 카메라 앞에 선 닉슨의 얼굴은 창백하게 보였다. 또한 그는 스튜디오의 뜨거운 조명을 계산하지 못하고 두터운 회색양복을 착용했다. TV 브라운관에 비친 닉슨은 땀으로 번질거리는 얼굴을 연신 손수건으로 닦아내 시청자들에게 매우 불안하고 초조하다는 이미지를 주었다. 일설에 의하면 TV토론을 보던 닉슨의 어머니가 아들이 아픈 것은 아닌지 연락을 취했다고 할 정도니 시청자들 입장에서 닉슨 후보는 현직 부통령임에도 불구하고 믿음직하지 못하다는 느낌을 받았을 것이다.

이 토론회에서 각 후보의 토론내용이 유권자에게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를 언급하는 평론가는 별로 없다. TV에 비친 후보자들의 이미지에서 닉슨 후보가 실패했다는 것이 주된 논평이다. 이후 2차 토론부터 양당 캠프는 의상부터 토론질문까지 만반의 대비를 했고 토론회 시청자들의 후보지지 변경은 유의미하게 나타나지 않았다. 1960년 선거판세에서 우세했던 닉슨의 TV토론 실패 교훈 덕분에 차후 선거에서 선두주자는 대선토론회를 꺼리게 됐고 1976년까지 대선후보 토론회가 열리지 않았다. 사실 지금까지도 미국 대선후보 토론회는 후보간 합의에 의해서 개최되는 것이지 우리나라처럼 법적의무 사항은 아니다.

TV토론 영향 예상보다 크지 않아

다수의 선거관련 전공학자들은 TV토론의 '최소효과'를 주장한다. 누가 TV토론을 시청하는가에 주목한 연구의 논리는 명확하다. 정치에 관심이 많은 사람들이 TV토론을 시청할 가능성이 높다. 그런데 정치관심이 높은 사람들은 선거운동 이전에 일찍이 지지후보를 결정하며 이후 지지후보를 변경할 가능성이 낮다. 지지후보에 대한 신뢰가 공고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TV토론 시청열의가 높은 이들에게는 토론회 시청은 이미 지지하는 후보를 더욱 지지하게 만드는 강화효과를 주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반면 투표결정을 하지 못한 부동층은 TV토론이 지지후보 결정에 도움이 될 것이다. 그런데 이들은 대체로 선거에 관심이 적다. 따라서 TV토론을 시청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정치가 지겹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따분한 TV토론에 관심을 가질 이유가 없다. 요약하면 TV토론 시청 가능성이 정치관심의 정도에 따라 차이가 나며, TV토론의 효과가 가장 클 것으로 기대되는 부동층의 TV토론 시청가능성은 낮다.

그 결과 TV토론을 기점으로 후보지지 변화폭이 크게 나타나지 않는다. 이상의 주장은 TV토론이 선거결과를 결정짓는 가장 중요한 요인인 것처럼 호들갑을 떠는 것에 대한 비판적 견해다.

TV토론이 유권자의 투표결정에 영향을 미치려면 다음과 같은 조건들을 만족시켜야 한다. 첫째, 주요후보 중 최소한 한명이 상대적으로 덜 알려져 있다. 둘째, 상당수의 유권자들이 누구에게 투표를 해야 할지 정하지 못하고 있는 상태여야 한다. 셋째, 유권자들의 정당에 대한 충성도가 약해 정당소속감에 의한 투표의 영향이 적어야 한다.

이러한 조건들을 현재 선거지형에 적용해보자. 먼저 주요 대선후보들은 이미 유권자들에게 잘 알려져 있다. 유권자들은 TV토론 초청대상인 4명의 후보들을 평가할 수 있는 충분한 정보를 가지고 있다. 특히 거대양당의 후보들은 이미 당내경선 과정에서부터 수많은 토론회를 치렀기 때문에 새로운 면모를 보일 여지가 별로 없다.

둘째로 현재 한국사회는 진영논리가 압도적이다. 투표결정을 하지 못했거나 향후 지지후보를 변경할 가능성이 있는 유권자들이 이전 선거에서보다 적다. 최근 선거조사를 보면 아직 부동층으로 분류되는 응답자 비율은 10% 남짓이다. 더욱이 부동층으로 분류되는 10% 내외의 유권자들 중 상당수는 정치에 무관심한 속성을 보이며 선거에서 기권 가능성이 높아 선거결과에 영향을 미칠 가능성은 낮다.

고백컨대 정치학을 업으로 삼고 있는 필자도 두시간짜리 대선후보 TV토론에 집중하는 것이 쉽지 않다. 분단위의 짧은 발언 공방 속에 새로운 것도 없고 반복되는 상호비방을 보고 있는 것이 고역이다. 특정후보를 지지하는 시청자라면 반대후보의 발언 때는 채널을 돌리고 싶은 마음에 리모컨을 만지작거리게 된다. 미국의 한 연구에 따르면 TV토론을 볼 때 눈동자의 움직임을 추적해 보니 드라마나 운동경기 중계를 시청할 때보다 훨씬 산만하다고 한다. 또한 TV토론을 봤다는 응답자들을 상세히 조사하면 절반 이상은 끝까지 시청하지 않고 중간에 채널을 돌린 것으로 확인됐다. 그만큼 집중하기 어려운 두시간이다.

국가가 당면할 과제에 대한 토론 기대

오늘 토론회는 한국기자협회와 공동주관의 4개의 종편채널, 2개의 보도전문채널 등 6개 방송이 생중계하는 이벤트다. 후보들은 유권자들을 잡아둘 책임을 느껴야 한다. 지금까지 각 선거캠프의 일방적인 주장들을 다시 반복한다면 동계올림픽 중계로 채널이 돌아갈 것이다. 모든 후보가 철저히 준비한 토론회에서 극적인 지지변동은 일어나지 않는다고 생각해야 한다. 상대후보의 약점을 찾기보다 자신의 강점을 부각해 지지자들을 감동시키려는 전략이 최선이다.

지금까지 거대정당 후보들의 선거운동은 소소한 정책에 치중했다. 이재명 후보의 '소확행 공약'은 탈모공약이나 골프공약 등 대통령의 국정운영 방향이라기에는 지나치게 세세하다. 윤석열 후보의 '심쿵공약' 역시 반려동물 쉼터 확대나 수능응시료 세액공제 등 소소한 내용을 담고 있다. 공히 국민을 세심하게 살피겠다는 의도로 이해된다. 이제 국민에게 앞으로 5년 동안 국가가 당면할 문제가 무엇이라 예상하며 그 문제들을 어떻게 해결할지에 대한 거대담론을 진지하게 논의하는 장이 되어야 한다.

필자는 나의 후보선택이 옳은지 재검증하기 위해 토론시간에 맞춰 알람을 설정했다. 정권교체와 정권재창출 중 선택이라는 선거구도적 사고를 내려놓고 후보들의 정치적 됨됨이를 평가해보려 한다. 혹시라도 역시 뽑을 후보가 없다는 푸념을 하거나 TV 앞에서 공연이 두시간을 허비했다는 한숨이 나오지 않게 하기를 바란다.

이현우 서강대 정치외교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