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대재해처벌법 - 검찰의 칼끝은

중대재해시 재벌총수도 처벌 가능

2022-03-22 11:14:12 게재

검찰, 중대재해처벌법 '적극' 적용 … "업무관련성 인정되면 공범 여지"

1월 27일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중대재해처벌법)이 시행됐다. 이후 한달 동안 42명의 노동자가 목숨을 잃었다. 고용노동부와 검찰의 중대재해처벌법 수사도 본격화되고 있다. 특히 검찰의 칼끝이 어디로 어떻게 향할지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대검찰청은 지난해 5월부터 공공수사부와 형사부 등 중대재해 수사전문검사들로 구성된 '중대재해처벌법안 대응 TF'를 통해 중대재해처벌법에 대한 이론적 기초를 제공하고 실무에 참고할 수 있는 '벌칙해설서'와 강화된 법정형에 부합한 새로운 '양형기준'을 지난 1월 마련했다.
대검은 중대재해처벌법의 중요사항 및 고용부 등 관계기관의 법령 설명자료, 연구용역 및 관련 논문 등을 참조해 만들었다고 밝혔다.
내일신문은 대검찰청의 '중재대해처벌법 벌칙 해설'과 '중대재해처벌법위반 사범 양형기준'을 입수해 분석했다. 검찰은 중대재해처벌법에 대한 확립된 판례가 없는 상황에서 입법 목적과 취지, 특수성을 반영해 강도높은 형사처벌을 예고했다.

"삼표산업 실질적인 경영책임자 엄중 처벌"│2월 3일 삼표산업 양주사업소 앞에서 민주노총이 기자회견을 열고 채석장 붕괴사고에 대한 중대재해기업처벌법에 따른 처벌을 촉구하고 있다. 양주=연합뉴스 임병식 기자

 


#. 1월 27일 중대재해처벌법이 시행된 지 이틀 뒤인 29일 삼표산업 경기 양주채석장에서 토사 붕괴사고로 노동자 3명이 숨졌다. 이 사고는 '중대재해처벌법 1호' 사건으로 처벌 수위와 범위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삼표산업은 삼표그룹 총수인 정도원 회장이 강력한 지배력을 행사 중이다. 삼표산업 지분 98.25%는 그룹 지주회사인 삼표가 보유하고 있다. 정 회장은 삼표 지분 65.99%를 보유한 최대주주다. 현재는 이종신 삼표산업 대표이사만 중대재해처벌법 위반 혐의로 입건된 상태다.


대검찰청은 '중대재해처벌법 벌칙 해설'에서 전문경영인 체제로 운영되는 기업에서 사망사고 등이 발생하면 전문경영인에게 영향력을 행사하는 재벌총수도 중대재해처벌법 위반으로 처벌을 받을 수 있다는 해석을 내놓았다.

중대재해처벌법은 '사업주 또는 경영책임자 등'이라는 신분이 있어야 범죄가 성립하는 신분범이지만, 경영책임자라는 신분이 없는 재벌총수도 공동정범으로 보고 수사할 수 있다는 취지다.

중대재해처벌법은 중대재해가 발생한 기업의 경영책임자가 재해예방을 위한 안전보건관리체계 구축 등의 의무를 이행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날 경우 1년 이상의 징역 또는 10억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규정했다.

◆경영책임자, 형식보다 '실질' 따져 = 검찰은 "기업집단의 총수가 경영책임자 등에 해당하지 않더라도 개별 사안에 따라 자신의 영향력을 이용해 해당 경영책임자 등에게 특정 업무집행을 지시한 사실 등이 인정되는 경우, 중대재해처벌법 위반의 공범관계가 될 여지가 있다"고 설명했다.

형식적인 지위나 명칭에 관계없이 실질적으로 사업을 대표하고 총괄하는 권한과 책임으로 따져야 한다는 것이다.

중대재해처벌법 2조 9호 가목의 '이에 준해 안전보건에 관한 업무를 담당하는 사람'의 경우, 검찰은 "안전보건관리책임자라는 사실만으로는 경영책임자로 인정하기 부족하다"고 설명했다. 경영대표자 등으로부터 안전보건에 대한 조직·인력·예산과 최종의사결정권을 위임받은 수준이어야 한다는 해석이다.

최근 대기업들이 최고안전책임자(CSO)를 선임하면서 경영책임자의 처벌을 회피하려 한다는 논란에 대해 검찰은 "안전보건 담당이사가 있는 사실만으로 사업을 총괄하는 권한과 책임이 있는 사람의 의무가 면제된다고 볼 수 없다"고 설명했다.

해설서는 사업을 대표하고 총괄하는 권한과 책임을 가진 사람이 2명 이상일 경우 그들 모두 경영책임자가 될 수 있고 안전·보건 확보 의무도 공동으로 부여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최종적인 의사결정권이 총괄대표에게 있다고 판단되면 경영책임자는 총괄대표로 특정될 수 있다.

◆건설공사 발주자도 처벌될 수 있다 = 건설공사 발주자도 중대재해처벌법 사업주에 해당할 수 있다. 발주자가 시공을 주도해 총괄·관리하지는 않더라도 시설·장비·장소 등을 실질적으로 지배·관리하는 책임을 지고 있다면 중대재해처벌법상 안전·보건 확보 의무가 인정될 여지가 있다.

중대재해처벌법은 경영책임자 등이 부담하는 안전·보건 확보 의무의 대상인 종사자를 △근로기준법상 근로자 △대가를 목적으로 한 노무제공자 △수급인의 근로자로 규정했다.

검찰은 "중대재해처벌법이 '종사자의 생명과 신체를 보호함을 목적'으로 한다는 점을 고려하면 노무 제공의 대가가 반드시 금전적 대가일 필요는 없다"고 설명했다. 중대재해처벌법은 근로조건의 규율을 직접적인 목적으로 하는 근로기준법과 다르다는 취지다.

검찰 특수형태근로종사자(특고)도 중대재해처벌법상 종사자로 분류했다. 산업안전보건법(산안법)은 특고의 개념을 구체적으로 명시하고 있지만 중대재해처벌법은 별도로 규정하지 않았다. 검찰은 "중대재해처벌법상 종사자 개념은 산안법상 특고보다 더 넓은 개념"이라고 설명했다.

나아가 원사업주의 사업장에서 노무를 제공하는 수급인 소속 근로자뿐만 아니라 수급인도 중대재해처벌법상 원사업자의 종사자로 봤다.

◆파견근로자도 적용, 고용부와 배치 = 검찰의 법 해석은 주무부처인 고용노동부 해설서와 일부 배치된다. 중대재해처벌법은 상시근로자 5인 미만 사업장에는 적용되지 않고, 50인 미만 사업장도 2024년까지 유예기간을 줬다. 검찰은 상시근로자 범위에 특고와 플랫폼 종사자 등이 포함되지 않는다고 했다.

중대재해처벌법은 도급·용역·위탁 등 계약형식에 관계없이 노무제공자라면 안전·보건 확보 의무의 대상이 되는 종사자로 본다. 하지만 검찰은 이들이 근로기준법상 근로자에 해당하지는 않는 만큼 상시근로자 범위에 산정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상시근로자 규모와 관련해 고용부는 파견근로자까지 포함했지만 검찰은 파견근로자를 상시근로자에서 제외했다.

국내 법인의 해외사업장에서 발생한 중대재해에 대해 고용부는 법 적용대상이 아니라고 해석했지만 검찰은 수사가 가능하다는 입장이다.

◆뇌심혈관계 질환도 대상 = 검찰은 고용부가 중대재해처벌법 시행령에 명시한 24가지 직업성 질병에서 빠진 뇌심혈관계 질환을 과중한 업무나 급격한 업무환경 변화로 발병해 사망한 경우 중대산업재해에 해당할 수 있다고 봤다.

직장내 괴롭힘이 작업 수행이나 업무에 편승해 진행된 경우, 직무스트레스가 과도해 정상적인 인식 능력이 낮아진 상태에서 종사자가 극단적 선택을 한 경우는 중대산업재해에 포함될 수 있다고 봤다.

정진우 서울과기대 안전공학과 교수는 해설서에 대해 "검찰이 고용부의 특별사법경찰을 지휘하기 때문에 중대산업재해의 경우는 검찰의 입장이 관철될 가능성이 높다"며 "수범자 입장에서는 어디에 맞춰 대응해야 할지 매우 혼란스러운 상황"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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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남진 기자 njhan@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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