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촌

유럽연합, 폴란드를 어찌할꼬?

2022-04-01 12:07:18 게재
안병억 대구대 교수, 안쌤의 유로톡 제작진행자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지난달 26일부터 이틀 간 폴란드를 방문했다. 그는 바르샤바 국립경기장에 임시 수용된 우크라이나 피란민들을 만나 어려움을 청취하고 위로했다.

2월 24일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략한 후 폴란드는 자유세계의 최전선 국가가 되었다. 우크라이나와 500km 넘게 국경을 맞대고 있는 이웃이기에 230만명이 넘는 피란민들이 이곳으로 몰려들었다. 폴란드 시민들은 팔을 걷어붙이고 국경으로 가서 여성과 어린이들이 대부분인 이들을 따뜻하게 환영하며 안내해왔다. 전쟁 중에 꽃 피어난 인류애다.

두나라는 역사적으로 아주 긴밀하다. 우크라이나 서부의 대도시 리비프는 이전에 폴란드의 영토였다가 우크라이나에 귀속됐다. 폴란드 국민 가운데 우크라이나인의 비율은 전체 인구의 16% 정도로 추정된다. 전쟁 발발 이전에도 수많은 우크라이나 시민들이 폴란드에 체류하며 일했다.

폴란드는 냉전시기 소련의 압제에 신음하던 동유럽 국가 가운데 앞장서 저항했다. 1980년대 초 자유노조가 결성돼 당시 공산정권에 투쟁하며 민주화를 선도했고 1980년대 말 자유선거가 실시됐다. 그만큼 폴란드인들은 이번 침략 전쟁을 과거 소련의 압제 하에서 자신들의 투쟁과 동일시하는 경향이 강하다.

유럽연합(EU)도 회원국으로서 피란민 수용에 적극 나선 폴란드를 지원하려 한다. 하지만 폴란드가 법치주의를 위반한 데다 EU 법질서에 도전했기 때문에 쉽지 않다.

아직 유럽경제회생기금(ERF) 못받아

거의 2년 전 코로나19로 유럽경제가 휘청거릴 때 EU 27개 회원국들은 8000억유로(약 1000조원) 규모의 유럽경제회생기금(European Recovery Fund, ERF)에 합의했다. 독일과 프랑스가 주도했으나 많은 부담을 지게 된 오스트리아 덴마크 네덜란드 스웨덴 등은 ERF 지원과 법치주의 준수를 연계하고자 했다. 즉 회원국이 3권 분립, 언론의 자유, 소수자 존중과 같은 법치주의 기본원칙을 지키지 못하면 이 기금을 지원받지 못한다. 지난 2월 중순 유럽사법재판소는 ERF뿐만 아니라 EU의 다른 예산도 회원국이 법치주의를 준수해야 지원받을 수 있다고 판결했다.

그런데 폴란드의 여당인 법과정의당은 법무장관이 임명하는 판사징계위원회를 구성해 반정부적인 판사들을 징계했다. 또 동성 간의 결혼 금지 조항을 개정 헌법에 넣었다. 폴란드는 여기서 한발 더 나갔다. 폴란드 헌법재판소는 지난해 10월 EU법 일부가 자국의 헌법과 상충한다고 판시했다. EU법은 회원국 법보다 우선하며 회원국에 직접 적용된다는 EU 법질서를 무시하는 판결이다. 일부 학자들은 폴란드의 EU탈퇴(폴렉시트, Polexit)가 이 판결로 시작됐다고 해석하기도 한다.

이 때문에 폴란드는 ERF로 책정된 360억유로(약 48조원)를 아직까지 받지 못했다. 피란민 급증으로 폴란드는 한푼이 급한 상황이다. 다른 회원국들은 지난해 7월부터 이 기금을 지원받아 경제회복에 지출해왔다.

EU 일부에서는 폴란드의 이런 사정을 고려해 일단 ERF와 다른 기금을 신속하게 지원해주고 법치주의 준수는 잠정 보류하자는 의견이 조심스럽게 나왔다.

그러자 브뤼셀에서 활동하는 민간단체가 발끈하고 나섰다. 국제투명성기구 앰네스티인터내셔널 휴먼라이츠워치 등 12개 시민단체는 EU 집행위원장과 유럽이사회 상임의장에게 지난달 23일 공동서한을 보냈다. 이들은 편지에서 "피란민 사태 때문에 폴란드에 ERF 예산을 지원검토중인 집행위원회에 깊은 우려를 표한다"며 "법치주의 준수는 회원국의 의무이다"라고 강조했다.

유럽의회와 시민단체, 법치주의 준수 촉구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략 후에도 폴란드정부는 EU법에 따라 판결을 내린 판사를 정직시켰고 수십명의 친정부적인 판사 임명을 강행했다. 폴란드 시민단체는 정부가 이번 침략을 계기로 오히려 법치주의를 더 파괴한다고 우려한다.

유럽의회는 이번 전쟁이 폴란드와 헝가리의 법치주의 위반을 정당화해서는 안된다며 집행위원회에 폴란드와 헝가리에 대해 즉각 시정조치를 시행하라고 촉구해왔다.

행정부 역할을 하는 집행위원회는 곤혹스런 입장이다. 러시아의 침략에 맞서 EU의 단결이 무엇보다도 필요하지만 그렇다고 법치주의 파괴를 계속해서 좌시할 수는 없다. 그러나 우크라이나 위기가 어느 정도 해결되어야만 예산과 법치주의 준수 연계가 제대로 시행될 듯하다.

안병억 대구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