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중러 견제 안보·경제동맹 앞장

2022-05-20 10:58:17 게재

미일 정상회담, 확장억지·IPEF 새판짜기 … 국민 안보불안 틈타 '핵반입' 등 강경론

일본이 미국 주도의 대중국·러시아 견제를 위한 국제질서 새판짜기에 앞장서고 있다. 중국의 경제·군사적 팽창과 러시아의 우쿠라이나 침공에 안보상 위협을 느끼는 일본은 미국 바이든 대통령과 기시다 총리의 첫 대면 정상회담을 앞두고 미일동맹 강화와 '쿼드' 및 '인도태평양 경제프레임워크'(IPEF)에 깊숙이 개입하고 있다. 일본 경제계를 중심으로 '미국이 주도하는 아시아 전략에 지나치게 밀착하는 게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

미국 핵우산 제공, 일본 방위력 강화

기시다 총리와 바이든 대통령은 23일 도쿄에서 정상회담을 갖고 양국간 안보 및 경제동맹 강화, 쿼드 및 IPEF 출범과 관련한 협력을 선언할 예정이다. 일본 언론은 이번 양국 정상회담과 공동성명에 담을 내용 등을 상세히 보도하고 있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18일 양국 정상이 공동성명에서 △대중국 억제 방안 △우크라이나 침공에 대한 대처 △IPEF 구성 △반도체 등 첨단산업 공급망 강화 △경제장관 2+2 회담의 조기 개최 등을 합의할 것으로 예상했다. 아사히신문도 19일 "일본에서 미국이 주도하는 IPEF 발족을 선언한다"며 "양국 정상은 일본에 대한 미국의 '핵우산'을 포함해 '확장억지'를 확고히 할 것"이라고 관측했다.

미일 정상회담은 크게 안보와 경제 두 축에서 결과물을 도출할 전망이다. 일본 언론은 정상회담에서 바이든 대통령이 일본에 대한 '핵우산' 약속을 분명히하면서 군사동맹을 강화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중국의 군사적 확장과 대만해협을 둘러싼 긴장, 우크라이나 사태를 통해 드러난 러시아의 핵위협, 북한의 핵실험과 탄도미사일 발사로 일본 내 안보위기가 커졌기 때문이다.

최근 각종 여론조사에서 안보위기에 대한 일본 국민의 우려는 커지고 있다. 아사히신문 5월 여론조사에 따르면, 우크라이나 사태와 중국의 센카쿠(중국명 댜오위다오)열도 근해 침입, 북한 핵실험 등에 대해 군사적 위협을 '크게 느낀다'는 답변이 58%, '어느 정도 느낀다'가 34%였다. 이런 틈을 타 아베 전 총리 등 일본 우익세력은 핵무기 반입과 배치를 의미하는 '핵공유'를 주장하고 나섰다.

이에 대해 바이든정권은 한국 및 일본과의 핵공유는 불가하다는 입장인 가운데 '핵우산' 제공을 통한 확장억지의 확대를 공약할 것이라는 분석이다. 아사히신문은 "미국은 핵무기와 통상의 전력에 의해 타국이 일본을 공격하는 것을 단념시키는 '확장억지'를 약속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양국 정상은 또 대만 문제에 더 강한 목소리를 낼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4월 바이든-스가 정상회담에서 "대만해협의 평화와 안정이 중요하다"고 합의한 데서 더 구체적인 발언이 나올 것이라는 전망이다. 이에 앞서 양국은 올해 1월 외무·국방장관이 참여하는 '2+2회담'에서 '억지'에서 유사시를 염두에 둔 '대처'라는 개념으로 더 구체화했다.

이는 결국 일본의 방위력 강화에 대한 미국의 지지로 귀결될 전망이다. 이미 올해 초 바이든-기시다 화상 정상회담 직후 백악관은 "일본의 방위능력을 근본적으로 강화하려는 기시다 총리의 결정을 지지한다"고 발표한 바 있다. 이는 곧바로 기시다 총리 등 집권 자민당이 추진하는 이른바 '적기지 공격능력' 강화를 위한 방위비 증액과 개헌 논쟁으로 이어질 수 있다. 자민당은 최근 일본정부가 유지해오던 방위비 'GDP대비 1% 상한룰'을 깨고 2%까지 끌어올려야 한다고 제안했다.

IPEF 출범 공식화, 일본 경제안보법 제정

양국 정상은 경제 분야에서도 협력을 강화할 방침이다. 미국이 주도하는 IPEF를 이번 정상회담에서 공식 발표한다. 제이크 설리번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18일(현지시간) 브리핑에서 바이든 대통령이 일본을 방문해 IPEF를 출범시킬 것이라고 공식 확인했다. 이에 앞서 지나 러몬도 미국 상무장관은 17일 "트럼프 정권이 이 지역에 관여하지 않으면서 생겨난 공백을 우리가 메울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 일본 언론은 미국이 주도하는 IPEF에 일본이 참여하면서도 일본 정부는 미국이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CPTPP)에 참여할 것을 내심 기대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러한 배경에는 미 행정부가 주도하는 IPEF가 의회의 승인을 받은 대외 조약이나 협정이 아니어서 미국 정권이 바뀌거나 국제정세가 변하면 진로가 불투명해질 수 있다는 우려가 깔려있다.

이와 관련 니혼게이자이신문은 24일 열리는 쿼드 정상회담에 윤석열 대통령이 화상으로 깜짝 참여하는 방안이 검토되고 있다고 전했다. 한국정부가 IPEF 참여를 공식화하고 있어 일본에서 발족을 선언할 때 윤 대통령이 화상을 통해 상징적으로 참여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지금까지 IPEF 참여가 유력한 국가는 한국과 미국 일본 호주 뉴질랜드 싱가포르 등이다. 태국도 참여를 저울질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동남아 각국이 이 협력틀에 참여할지는 불투명하다는 전망이다. IPEF는 크게 △무역 △공급망 △인프라 및 탈탄소 △관세 및 반부패 등 4개 분야로 구성되는데, 바이든정권이 노조와 민주당 내 좌파의 반대로 관세 인하 등 무역장벽을 낮추는 데 소극적이어서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무역장벽을 낮춰주지 않으면 동남아 국가는 참여의 실익이 떨어질 수 있다"면서 "IPEF를 통해 미국은 무역과 공급망 등에서 선진적인 규칙을 통해 얻을 게 있지만, 신흥국은 얻을 수 있는 경제적 이득이 줄어든다"고 했다.

미일 양국은 또 반도체 등 첨단산업에서 공급망 정비에도 나설 전망이다. 미국과 일본은 이미 대만 TSMC 등과 연계해 반도체 공급망의 정비를 서두르고 있다. 최근 우크라이나 사태로 곡물과 에너지가격 폭등하는 상황에서 원자재 공급망도 강화할 것으로 보인다. 이를 위해 두나라 정상은 조속한 시일 내 양국 경제장관이 참여하는 '2+2회담' 개최에 합의할 것으로 보인다.

양국은 우주 분야 협력도 강화할 것이라는 전망이다. 교도통신은 19일 미국이 주도하고 일본이 참여하는 달탐사 프로젝트 '아르테미스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일본인의 달 착륙 계획을 정상회담 이후 발표할 것이라고 보도했다. 요미우리신문도 양국이 정상회담을 계기로 소형 위성관측망 구축에서 협력할 것이라고 했다.

이에 앞서 일본은 자국내 관련 법도 정비했다. 일본 참의원은 지난 11일 '경제안정보장추진법' 제정안을 가결했다. 이 법은 △공급망 구축 △기간인프라 안전 확보 △첨단기술 민관 공동연구 △특허 비공개 등 4개 분야로 구성됐는데 2023년부터 단계적으로 시행한다.

법안은 전략물자 조달을 해외에 의존하는 데 따른 리스크를 줄이는 데 중점을 뒀다. 정부가 반도체를 비롯해 희토류 등 전략적 가치가 있는 광물, 2차전지, 의약품 등을 '특정중요물자'로 지정하고 재정지원을 강화하도록 했다. 대신 기업의 원재료 조달처와 재고에 대해 정부가 조사할 권한을 갖는다.

아울러 안보상 위협이 되는 외국제품이 기간인프라 분야를 잠식하지 못하도록 했다. 전기와 금융, 철도 등 14개 업종을 지정해 사업자는 사업개요와 조달처, 부품 등에 대해 사전에 정부에 보고해야 한다.

오키나와 반환 50년, 일본 안보의 딜레마

미일 군사동맹이 강화될수록 일본열도 최남단 오키나와 문제는 더 첨예해지고 있다. 지난 15일 오키나와 반환 50주년을 맞아 기시다 총리가 직접 방문해 기념식을 갖는 등 일본 내에서 대대적인 축하행사가 열렸다. 하지만 중국의 태평양 진출이 가속화하고 대만해협의 긴장이 높아질수록 오키나와의 긴장은 높아진다.

오키나와 본섬을 비롯해 크고 작은 섬들의 전략적 중요성이 커지면서 군사기지화가 심화되고 있어서다. 일본 국토의 0.6%에 불과한 오키나와에는 전체 주일미군기지의 70%가 몰려 있다. 주변 섬들에는 자위대 미사일부대가 속속 들어서고 있다.

타마키 오키나와현 지사는 15일 기념식에서 "오키나와를 평화의 섬으로 하자는 목표는 반환 이후 50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달성되지 않았다"면서 "자립형 경제의 구축은 갈길이 멀고, 아이들의 빈곤 등 극복해야 할 많은 과제가 남아 있다"고 했다.

한편 중국을 겨냥한 IPEF 출범에 우려도 나온다. 일본은 대중국 무역에서 압도적인 실적을 올리고 있다. 일본 재무성에 따르면 지난해 일본의 대중국 무역수지 흑자 규모는 209억달러에 달해 전년대비 12% 이상 증가했다. 도요타 등 일본의 주요기업은 중국 사업에서 막대한 이익을 거두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일본 경제계는 IPEF의 출범에 대해 내놓고 반대는 못하지만 내심 불안한 움직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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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만호 기자 hopebaik@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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