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촌

아베와 모디, 그리고 일본과 인도

2022-07-22 10:54:21 게재
이준규 한국외교협회장, 전 주인도·일본 대사

이달 초 아베가 참의원 선거 유세 중 괴한의 흉탄에 맞아 급서했을 때 전세계는 그의 갑작스런 죽음을 애도했다. 그가 한국에서는 그리 환영 받는 지도자가 아니었지만 일본에서는 물론이고 국제사회에서도 상당히 뛰어난 지도자로 인정받았던 것은 틀림없다.

쿼드 회원국인 미국의 바이든 대통령, 인도의 모디 총리, 호주의 알바니지 총리는 공동으로 애도 성명을 발표했다. 특히 모디는 '가장 친한 친구 중 하나인 아베 총리의 비극적 죽음에 충격을 받았고 매우 슬프다. 그는 우뚝 솟은 탁월한 세계적 정치인이었고, 세계와 인도-일본 관계 발전에 헌신해 왔다'면서 아베 사망 다음날 하루를 국가추모일로 선포했다.

일찍이 인도의 중요성을 간파한 아베는 첫번째 총리 재임 중인 2007년, 그리고 두번째 재임 중에는 2014년 2015년 2017년에 인도를 방문, 인도를 가장 많이 방문한 총리가 됐다.

일본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있던 모디는 구자라트 주 총리 시절 이미 일본을 여러번 방문했고, 2014년 9월 인도 총리 취임 후 첫번째 역외 방문 목적지를 일본으로 정했다. 이 방문에서 양국은 '특별 전략적, 지구적 동반자 관계'에 합의했다.

두 지도자는 이러한 상호 방문 이외에도 수많은 다자 무대에서 만났고, 수시로 전화를 통해서도 소통했다. 이들의 친밀한 모습을 보면서 양 국민들은 자연스럽게 서로에 대해 호감을 가지게 되었고, 양국 간 경제적, 인적 교류는 급증했다. 양국은 안보군사면에서도 협력을 강화해 왔는데, 2019년에는 델리에서 최초로 양국의 외교·국방장관이 참가하는 2+2 회의를 개최했다.

'인도태평양' 개념 처음 쓴 아베

미국이 아시아 정책을 얘기할 때 '아시아태평양' 대신에 쓰는 지금은 우리 귀에도 익숙해진 '인도태평양' 이라는 개념을 쓴 원조는 사실상 아베 전 총리였다. 2007년 8월 총리로서 인도를 방문해 인도의회에서 한 연설 '두 바다의 합류점'에서 아베는 "태평양과 인도양은 자유와 번영의 바다로서 경계를 허물고 결합해야 한다"고 주장했는데 이것이 두 바다를 합쳐 인도태평양이라고 부르는 첫 사례로 꼽힌다.

이때 이미 아베는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서는 인도와 손을 잡아야 한다는 것을 인식했고, 쿼드도 이즈음 태동했다. 중국이 인도태평양 지역에 대한 진출을 본격화하고 있던 2017년 10월 아베의 일본은 10년 동안 잠자고 있던 쿼드를 되살리자는 아이디어를 띄웠고, 이에 호응해 11월 마닐라에서 열렸던 동아시아 정상회의 참석 기회에 인도 일본 호주 미국의 관계자들이 쿼드 부활을 위한 회합을 가졌다.

인도는 이때 중국과의 접경지역인 도크람에서 2013년부터 4차례나 대치하는 상황을 겪고 있어서 무엇인가 해야 된다는 인식을 가지고 있었는데, 중국과 문제가 생길 때마다 자신 편에서 중국을 비난해 준 일본의 제의에 호의적으로 응할 분위기가 조성돼 있었다 할 수 있다.

아베와 모디 두 지도자의 밀착은 일본과 인도 두 나라가 서로 친밀감을 공유하면서 전방위적으로 협력하는 관계로 발전하는 원동력이 되었다. 2015년 아베의 인도 방문시 인도는 고속열차로 일본의 신칸센 시스템을 도입키로 결정했고, 동방정책포럼을 결성해 중국이 예민하게 관찰하고 있는 인도 동북지방 프로젝트를 추진케했다. 두 나라는 또한 중국의 영향력 확대를 견제하기 위해 몰디브와 스리랑카에서 공동 프로젝트를 계획하기도 했다.

국익관점에서 다른 나라 지도자 대우해야

일본의 아베와 인도의 모디가 실제로 얼마나 친했는지 인간적 유대감은 얼마나 강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두 지도자가 보여준 친밀한 모습이 양국 관계 발전에 크게 기여한 것은 틀림없다.

2012년 아베가 두번째로 총리가 되고 최장수 총리로 재임하는 동안 우리 정부와 언론은 아베의 극우적 성향을 문제삼아 틈만 있으면 그를 비판했고 조그만 실수가 나올 때마다 조롱했다. 하지만 일본 국내정치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아베에 어떻게 대처할지, 아베를 어떻게 이용할지에 대한 진지한 고민을 전혀 하지 않았다.

우리가 어느 나라의 지도자에 대해 호불호를 얼마든지 가질 수 있지만 우리의 국익을 위해서는 그 지도자를 어떻게 대접하고 포용해나갈 것인가에 대한 냉정하고 진지한 고민이 우선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