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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청노동자들이 전근대적 투쟁을 하는 이유

2022-07-27 10:37:34 게재
김준영 한국노총 전국금속노련 사무처장

대우조선 하청 노동자들의 점거투쟁 방식을 고용노동부 차관은 '전근대적'이라고 평했다. 그는 "법 테두리 내에서 노동3권이라는 거는 100% 보장된다"며 "협상이 이루어지고 있기 때문에 불법을 해소해 달라는 것이 1차적인 정부의 요청"이라고 했다.

'전근대적'이라는 표현에 동의할 수 없지만 그 전근대적 투쟁을 하기 전까지 진짜 사용자 대우조선은 협상에 나오지 않았다. 전근대적 투쟁이 대우조선을 협상장으로 오게 만들었다. 차관 말처럼 법 테두리 내에서만 노동3권이 100% 보장되는데 왜 하청노동자들은 형사처벌까지 각오하며 점거투쟁을 할 수밖에 없었을까? 법테두리 내에서 방법이 없는 전근대적 제도와 하청 노사관계가 전근대적 투쟁방식을 부른 것은 아닐까?

프랑스혁명 이후 모든 인간은 평등하고, 서로 자유롭게 계약하고 그 계약을 지키는 것이 보편적 규범이 되었지만 근로계약은 자유롭고 평등한 조건에서 이루어지지 않는다. 노동자는 자신의 몸뚱이를 움직여 노동하는 것이 유일한 생계수단이다 보니 생계가 막막할 때는 터무니없는 조건이라도 노동할 기회를 잡을 수밖에 없다. 이런 노동시장의 특성 때문에 사용자와 노동자의 계약은 평등하지도 자유롭지도 않다.

그래서 노동자에게는 사용자와 1대 1이 아니라 다수가 모여서 교섭하고, 요구를 관철하기 위해 사용자에게 손해를 끼치는 쟁의도 할 수 있는 노동3권이라는 권리를 줬다. 그래야 힘의 균형에 기초한 긴장 속에 상호존중하며 상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노동 3권은 힘의 균형을 위해 존재

노동조합을 만들었다가 회사가 공중분해된 한 노동자는 27년을 근무하는 동안 회사 이름이 9번 바뀌고 9명의 사장과 9번의 근로계약을 했다. 노동조합을 만들어도 27년이나 근무를 했기에 해고를 그리 걱정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원청은 황당한 이유를 들어 도급계약을 해지했고, 사장은 폐업신고를 해버렸다.

사장과 하던 교섭은 중지되었고 원청은 교섭의무가 없다며 노동조합을 만나주지도 않았다. 결국 그 노동자들은 원청을 상대로 원직복직을 요구하며 싸울 수밖에 없었고, 그 투쟁 방식은 이른바 전근대적일 수밖에 없었다. 특별한 사례가 아니라 지금 이 시간 우리나라 어디선가 진행되고 있는 일이다.

흔히 하청 단체교섭에서 대표가 "나는 권한이 없다"는 이야기만 되풀이하는 경우가 많다. 임금교섭에서는 "원청에서 단가를 올려주지 않으면 임금인상 여력은 없다"는 이야기가 단골 레퍼토리다. 그러다 보니 진짜 사용자가 나오라고 외치며 원청을 상대로 싸우고 있는 노동자들이 무수히 많다.

하청 노동자가 파업을 하면 원청이나 다른 하청업체에 일을 맡긴다. 원청은 비슷한 업무를 여러 하청업체와 복수계약을 통해 언제든지 업무량을 이 업체 저 업체로 넘길 수 있도록 계약을 해둔다. 복수계약을 해두지 않았거나 적당한 업체가 없다면 급히 하청사를 만들어서라도 업무 모두를 다른 업체로 넘겨 버리기도 한다.

하청노동자가 일하는 시설과 장비가 원청 소유인 경우가 많아 시설출입을 통제하고 장비를 원청이 가져가기도 한다. 원청 입장에서는 대체근로가 합법적으로 보장되어 있다. 하청노동자가 합법적으로 쟁의를 하면 효과가 없는 것이다.

그러나 보니 하청노동자가 쟁의를 하려 하면 "원청사가 계약을 해지하면 어떻게 하려 하느냐" "효과도 없는 파업을 왜 하려 하느냐"라는 이야기를 무조건 듣게 된다.

이런 이유로 하청노동자는 노동조합을 만들 때도 쟁의를 결정할 때도 늘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신중히 결정한다. 노동조합 설립과 파업은 신중함과 절박함이 쌓인 결과다. "이대로 살 순 없지 않습니까"라는 대우조선 하청 노동자의 외침이 그 절박함을 보여준다. 대우조선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대기업 하청 노동자들 공통의 외침이다.

하청노동자에겐 노동3권 보장되지 않아

파업을 해도 대체근로로 효과도 없고, 일감이 다른 하청으로 넘어가면 일자리를 잃기도 한다. 원청과 교섭은 법으로 보장되어 있지 않다. 그래서 하청노동자는 합법적 투쟁으로는 그 효과를 기대할 수 없다. 노동3권이 보장되지 않은 하청노동자에게 힘의 균형에 기초한 상생을 기대할 수는 없는 것이다.

진짜 사용자 나오라고 외칠 수밖에 없는 무수한 하청노동자에게도 안정된 고용과 노동3권이 보장되어야 전근대적 투쟁방식이 사라질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