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진단

신냉전은 누가 이길까?

2022-08-05 12:07:29 게재
김상준 경희대 교수. '붕새의 날개, 문명의 진로' 저자

승자가 어느 쪽인지 확실해 보인다면, 승자 쪽에 서는 것이 평범한 사람들이 세상을 살아가는 방식일 것이다. 당장 승패가 분명해 보이지 않더라도 결국 "승패는 갈리게 되어 있다"는 확신이 서면, 승률이 높을 것으로 보이는 편에 은근슬쩍이든지, 아예 앞장서 적극적으로든지 줄을 서는 것이 또한 세상인심이겠다. 이런 인심에 대해 이 자리에서 왈가왈부할 생각은 없다.

다만 이번 '신냉전'은 세상사의 그러한 이치대로 흘러갈 것 같지 않다. 승자는 없고 양편 모두 패자가 될 가능성이 매우 높아 보인다.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르게 생각하고 대응할 필요가 있다.

우선 '신냉전'이란 말부터 풀어보자.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전쟁 이후 각종 기사와 웹에 '신냉전'이란 말이 부쩍 자주 눈에 띈다. 새로운 말은 아니다. 세계의 내로라하는 국제문제 전문가들이 가장 많이 읽는다는 '포린 어페어스'(foreign affairs)의 지난 10년 간 최대 화두가 바로 '신냉전'(new cold war)이다. 이 언어와 발상의 진원지, 주창자는 짐작하듯 미국이다. 2011년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의 '아시아로의 회귀'(pivot to Asia) 전략이 바로 미국의 중국에 대한 '약한 신냉전'이 시작되었다는 신호였다. G2로 커오는 중국을 미리 꺾어놓겠다는 것이 핵심이었다.

오바마에서 트럼프, 지금의 바이든에 이르는 10여년 동안 그 신냉전은 점차 그 수위를 높여 왔다. 외교에서 경제로, 그리고 이제는 이윽고 군사 문제로까지. 러시아-우크라이나전쟁과 대만해협을 둘러싼 군사적 대치 기류 형성은 이제 신냉전이 외교나 경제 문제만이 아니라 군사적 힘겨루기에 도달하였음을 보여준다.

미국이 중국을 대상으로 시작했던 '약한 신냉전'은 중국과 러시아에 대한 '강한 신냉전'으로 변모하고 있다. 이 신냉전 전선에 유럽연합(EU)이 끌려들어 왔고, 한국에 대한 압박도 커지고 있다.

냉전시대와 달리 나눠줄 지원·혜택 없어

과거의 '냉전'에서는 승자와 패자가 분명했다. 미국이 승자였고 소련이 패자였다. 미국 편에 선 쪽은 얻었고 소련 편에 선 쪽은 잃었다. 그러나 이번 '신냉전'이 과거 '냉전'의 단순반복일 것이라고 믿는 것은 큰 오산이다. 세계가 크게 달라졌다.

과거 냉전의 최대 수혜자는 서유럽과 독일 일본이었다. 소련에 맞서기 위해 미국은 유럽과 일본에 큰 지원과 혜택을 주었다. 2차대전의 전승국이자 산업 능력이 최고조에 올라 있던 당시 미국이었기에 가능했다. 그리하여 전후 30년 미국 유럽 일본은 냉전을 통해 절정의 번영을 구가할 수 있었다. 영국 역사가 에릭 홉스봄이 '황금기'(golden age)라 불렀던 시대다.

지금 미국이 '신냉전'을 주도하면서 유럽과 일본을 최우선 동맹국으로 소환하는 데는 그런 과거가 있다. 그러나 지금 미국은 과거와 같은 지원과 혜택을 줄 수가 없다. 오히려 큰 부담과 고통을 분담해야 한다.

과거 냉전기에 미국과 그 동맹국들은 소련 동구권과 관계를 끊는다고 해도 큰 부담이나 고통은 없었다. 양자 간 경제적 의존관계가 거의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신냉전'이 운위되는 오늘날 미국과 유럽 일본이 러시아 중국과 관계를 끊게 되면 커다란 부담과 고통을 지게 된다.

트럼프정부 시기, 중국과 무리한 무역-관세전쟁을 벌여서 더 큰 부담과 고통을 받았던 쪽은 오히려 미국이었다. 우크라이나전쟁의 장기화로 현재 유럽이 받고 있는 일상생활의 압박과 고통은 러시아 못지않다. 굳이 여러 외신보도를 들지 않더라도 지인을 미국과 유럽에 두고 있는 분들은 누구나 듣게 되는 말이다.

한편에 서 부담과 고통 자초할 필요있나

미소 간 냉전은 근 50년 지속되었다(1946년~1991년). 모든 교류를 틀어막고 죽기살기로 버텼다. 이제 정말로 그 냉전을 다시 한번 해볼 생각이라면 상대가 무너질 때까지 몇십년, 최소한 십수년은 버틸 각오가 서 있어야 한다. 그러나 그렇게 모든 것을 걸기에 예상되는 이익은 너무 적고 당장 입게 될 피해는 너무나 크다. 십수년은커녕 단 몇년이나 버틸 수 있을지, 아니 당장 올겨울을 추위에 떨지 않고 무사히 견뎌낼 수 있을지가 오늘날 미국과 유럽 서민들의 걱정거리다.

고통스러울 장기전을 끝까지 견뎌낼 이유와 의지 역시 분명하지 않다. 과거 냉전기에는 미소 양 진영이 서로 불구대천의 이념적 적으로 철저히 맞섰다. 이념만이 아니라 정치 경제 군사적으로 그랬다. 네가 죽지 않으면 내가 죽는다는 절박함이 있었다. 그러나 이번 신냉전에는 그렇듯 필사적으로 싸워야 할 확고한 이유와 의지가 분명하지 않다.

러시아 중국에 대해 과거와 같은 이념적 적대가 존재하는 것도 아니고 정치 경제 사회적 교류와 상호의존은 이미 매우 커졌다. 모든 점에서 과거 냉전과 상황이 너무나 다르다. 서구 주류 담론을 펴는 '포린 어페어스'조차 '신냉전'에 대한 찬반은 반반이다. 공정하게 말해 회의론이 우세다.

미국과 유럽은 그렇다 치자. 그렇다면 우리에게 신냉전은 무엇인가? 신냉전이 한국에게만은 다시 한번 풍요의 기회를 열어줄까? 이 나라는 과거 냉전의 틈바구니에서 산업화를 잘 일구어내지 않았던가? 시련에 강한 우리 민족이 다시 잘해내지 못하리라는 법이 있는가?

그러나 번영의 조건이 완전히 달라졌다. 과거 냉전기 한국의 경제부흥은 미국 일본 유럽의 대부흥과 지원에 의해 가능했다. 오늘날 미국 일본 유럽은 정체 중이다. 중국 인도 동남아 등 아시아권이 부흥하고 남미권 중동권 러시아 중앙아시아권의 비중이 커지고 있다. 이제 한국의 번영은 서구권만이 아니라 이 지역과의 관계에 크게 의지하게 되었다.

이 지역의 대부분의 국가들은 '신냉전'의 어느 한편에 서기를 회피한다. 모든 것이 불투명한 신냉전의 한편에 서서 자신의 기회를 스스로 잘라먹기보다는, 양편에 다 열린 입장에 서서 어느 쪽이든 자국에 이익이 되는 기회를 놓치지 않겠다는 것이다. 한국 역시 마찬가지다. 왜 어느 한편에 서서 스스로 입지를 좁히고 부담과 고통을 자초해야 할까?

여러모로 억지스럽게 진행되고 있는 '신냉전' 판도에 특히 한국이 거리를 두어야 할 가장 중요한 이유는 따로 있다. 한국은 과거 냉전의 수혜자였던 것만은 아니다. 그 냉전으로 인해 코리아의 남과 북은 엄청나게 파괴적인 전쟁을 했다. 따지고 보면 가장 큰 피해자였다고 할 수 있다. 아직도 코리아의 남과 북은 그 전쟁으로 인한 적대를 풀지 못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신냉전은 코리아에 전쟁 위기를 다시금 높이지 않을 수 없다. 신냉전에 남북이 깊이 개입할수록 그렇다. '그래 좋다. 또 한번 전쟁을 하고 그 다음에 또 한번 번영을 이루자'라고 할 것인가? 아무리 황당한 이야기가 횡행하는 세상이라고 하지만, 아직까지 이런 주장이 정면으로 제기되지 못하고 있는 것을 보면 아직 건강한 상식이 완전히 망가지지는 않았나 보다.

다극 공존하는 수평적 세계가 순리

"신냉전은 누가 이길까?"라는 질문은 '신냉전은 누가'에서 끊고, '이길까?'는 말꼬리를 올려 읽어야 한다. 이 신냉전에는 승자가 있을 수 없다. 옛 냉전의 종식은 지난 30년 동안 세계를 평평하게(flat) 만들어왔다. 일극이 지배하는 수직적 세계가 아니라, 다극이 공존하는 수평적 세계로 가고 있다. 이 도도한 흐름에 역행하는 신냉전은 아무리 봐도 억지스럽다.

순천자(順天者)는 흥하고, 역천자(逆天者)는 망한다고 했다. 순리에 따라야 한다. 공존과 평화 안에서, 자연의 한계 안에서, 현대 문명이 이룬 풍요를 어느 한쪽이 독점하는 세상이 아니라, 독점을 풀어 풍족을 나눌 줄 아는 세상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