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고가 말하는 산재예방 ⑧

사고예방 만능기준 '안전규칙'

2022-08-23 10:46:47 게재
고재철 법무법인 화우 고문, 전 안전보건공단 안전보건연구원장

7월 20일 한 아파트 지하주차장 바닥 물청소를 하던 작업자가 주차용 턱에 걸려 넘어져 머리를 다친 뒤 병원에서 치료 중에 사망한 산업재해가 발생했다. 산업안전보건기준에 관한 규칙(안전규칙) 제3조 위반으로 볼 수 있고, 사법적 판단에 따라 위반으로 처벌을 받을 수도 있다.

물론 이 사고 역시 예방해야 하는 사고임에는 재론의 여지가 없고 예방 가능한 사고다. 그러나 고용노동부를 포함, 국내 산업안전보건 분야에 안전규칙을 산업재해 예방을 위한 만능기준으로 여기는 인식 때문에 많은 낭비와 부작용이 일어나고 있다.

위반을 사고원인으로 생각하는 오류

같은 행동을 같은 시간과 장소에서 21번 반복하면 습관 즉, 무의식화된 반복 행동이 시작된다고 한다. 뇌의 의사결정에 소모되는 자원을 절약하는 유용한 기제다. 생각도 행동의 습관과 같은 사고 습관이 형성되고 강화돼간다. 사고원인 조사를 하면 정해진 기준의 위반을 사고원인으로 지목하던 오류가 아직도 습관적으로 이어지고 있다.

예를 들어 전동드릴 같은 전기기구 사용 작업 중에 감전사고가 발생되면 누전차단기 미설치를 사고원인으로 지목하는 것과 같은 오류다. 누전차단기는 감전을 방지할 수 있는 방법들 중 하나이지, 원인이 아니다. 미설치 시에 반드시 감전이 일어나는 것도 아니고, 설치했어도 제품 설치방법 관리 등에 결함이 있는 경우 감전사고를 막을 수 없다.

예방 또는 경감조치 중 한가지를 사고원인으로 지목하는 문제는 같은 원인에 의해 다른 유형의 사고들로 이어질 수 있다. 또한 근본적이고 배경적인 원인의 탐색을 차단하고, 더 나은 방지 수단을 모색하거나 합리적 운용을 가로막는다.

구체적 조치가 모호한 조항들

'안전규칙 제3조(전도의 방지) ① 사업주는 근로자가 작업장에서 넘어지거나 미끄러지는 등의 위험이 없도록 작업장 바닥 등을 안전하고 청결한 상태로 유지하여야 한다.'

안전규칙은 강제 기준으로서 부작위 즉, 이행하지 않은 것을 처벌한다. 위 조항을 준수하기 위해 사업주는 어떤 조치를 해야 할까? 해야 하는 구체적인 무엇은 없으나, 법규라서 사고발생 시는 물론, 감독 시에도 위반으로 처벌이 가능하다. 안전규칙에 이와 유사한 조항들이 의외로 많다.

이런 조항들의 모호성과 앞서 말한 위반을 사고원인으로 생각하는 오류는 여론 등의 압박에 편승해 관련 비리와 행정 폭력의 빌미가 되고 있다.

사망재해 발생 시 작업중지 명령은 전체적인 개선계획 수립 명령과는 별개로 같은 사고의 재발방지를 위한 긴급조치에 해당한다. 그러나 작업중지 범위와 기간, 해제를 위한 조치 범위와 수준이 주관적 판단에 달려있다. 사고발생 사업장에 대한 특별감독 역시 마찬가지다. 이런 행정은 정부에 대한 불신과 사고예방 영역의 심각한 자원낭비를 유인하게 된다.

올해 초 발생한 포항제철소 안전감시인 사망사고는 여론 및 정치적인 압박과 폭력적 행정이 중요한 배경원인이다. 국회의원들의 방문, 장기 특별감독에 당황한 경영진이 허둥지둥 내어놓은 감시인 500명 증원 대책에 따라 투입된 감시인이 사망했다.

이들 행정명령은 중대재해처벌법의 입법 취지와 유사한 정책이므로 현재는 중복에 따른 자원낭비 해소 차원에서도 정리가 필요하다.

안전규칙의 취지를 살리려면

안전규칙은 사고방지와 피해 경감을 위한 기술기준으로 산업재해 감소에 큰 역할을 해왔다. 그러나 현장 상황의 빠른 변화를 신속하게 반영하기 어려운 법규의 속성과 강제력 때문에 현장에서 부적절한 상황들이 벌어지고 있다.

실례로 낙하물 방지망의 경우, 무비계공법을 적용하는 건축공사에서는 비계공법 공사보다 설치가 훨씬 어렵고 위험하다. 그러나 강제 기준이어서 약간의 변형으로 대체 가능함에도 규칙대로 설치하는 작업 중에 추락 사망하는 사고도 발생하고 있다.

법적 강제력을 가진 규칙은 규제자와 수규자가 같은 해석과 동의하는 범위에서 기본적이고, 지속성이 유지될 수 있는 기준이어야 현장과 겉돌지 않는다.

그 외의 안전기준들은 현장의 변화, 새로운 아이디어와 방법들이 신속하게 수용될 수 있도록 KOSHA CODE와 같은 하위 기준으로 전환이 필요하다. 전문기관의 섬세하고 신속한 관리를 통해 기업들이 유용하도록 지원하되, 사고발생 시에는 몰랐다는 핑계를 댈 수 없도록 하는 방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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