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개 경제형벌 폐지·개선, 실효성 논란

2022-08-26 12:31:26 게재

정부 "단순 행정의무 위반은 형벌 대신 행정제재, 역동경제 전환 도움될 것"

전문가 "일부 개선과제 단순 행정의무위반으로만 볼 수 없어, 부작용 우려"

정부가 민간 중심 역동경제로의 전환을 위해 기업 활동을 저해하는 32개 경제형벌규정을 우선 개선키로 했다.

식품위생법 제97조 제6호(식품접객업자의 고객 유인행위) 등 2건은 형벌규정을 폐지한다. 신고·변경 등 행정상 경미한 의무위반의 경우, 범죄가 아닌 질서위반 행위로 보고 형벌규정을 과태료로 전환한다. 공정거래법과 벤처투자법 등 7개 법률, 11개 규정이 대상이다.

또 하도급법 등 5개 형벌규정은 우선 행정제재를 부과한 뒤 불이행할 경우에만 형벌을 부과하도록 고친다. 처벌이 과도한 환경범죄단속법 등의 14개 규정은 형량을 완화하거나 차등화하기로 했다.

하지만 전문가 일각에서는 '실익이 없어 생색내기용'이란 비판도 제기됐다. 1차 개선과제로 선정된 32개 경제형벌이 실제 적용된 사례가 거의 없어, 정비가 되어도 기업이나 시장의 실익이 별로 없을 것이란 진단이다.

◆불합리한 형벌 대폭 손질 = 26일 기획재정부와 법무부는 과도한 경제 형벌규정의 개선 방향과 1차 개선과제 32건의 추진방안을 대통령 주재 규제혁신전략회의에 보고했다.

국민의 생명·안전 등 중요법익과 관련성이 적은 단순 행정상 의무·명령 위반행위에 대한 형벌을 과태료로 전환하는 등 비범죄화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다.

우선 기존 행정제재로 충분히 입법목적 달성이 가능한 경우 해당 조항을 삭제한다. 물류시설법 제65조 제1항3호(공사인가를 받지 않고 물류터미널 공사 시행→1년 이하 징역 또는 1000만원 이하 벌금)은 형벌규정을 삭제하고 같은 법의 '사업정지' 제재로 갈음하기로 했다. 식품접객업자의 고객 유인행위를 금지한 형벌규정 역시 삭제하되 같은 법의 행정제재로 대체한다.

행정상 경미한 의무위반 행위 11건은 형벌 대신 과태료로 전환키로 했다. 벤처투자법 제78조 제2항1호(신용요건을 갖추지 않은 중소기업창업투자회사 대주주가 주식처분명령을 이행하지 않은 경우)의 경우 징역 또는 벌금의 형벌규정을 3000만원 이하의 과태료 부과로 전환한다.

형벌 존치가 불가피한 경우에도 행정제재를 우선 부과하고, 이를 불이행할 경우 형벌을 부과한다. 처벌이 과도하거나 불합리한 형량도 조정된다.

◆'실익 없다' 비판도 = 하지만 경제형벌 축소에 대해 일부 전문가들은 '생색내기용 형벌정비'라고 비판했다. 지철호 고려대 특임교수는 "정부가 민간중심 역동경제 실현을 위해 경제형벌을 합리적으로 개선하겠다고 했지만, 32개 1차과제 결과를 보면 눈에 띄는 것이 별로 없다"면서 "공정위 소관 7개 조항만 보더라도 이런 형벌이 부과된 전례가 거의 없다"고 지적했다.

TF 구성과 출발 자체에 문제가 있다는 지적도 나왔다. 이번 '경제형벌규정 개선TF'의 컨트롤타워는 법무부와 기획재정부다. 출발부터 시장·국민의 실익이 아닌 검찰·법조계의 이익을 지키는 방향이 예고됐다는 지적이다. 전직 정부 고위 관계자는 "TF의 주축은 상대적으로 시장과 기업동향에 밝은 기재부 산업부 중기부 등이 맡고, 법무부는 이들 부처가 정비하자는 형벌에 대해 방어적 입장을 담당했다면 제대로 된 형벌정비가 되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지금처럼 법무부가 칼자루를 쥔 TF로는 시혜적 정비를 벗어나기 힘들 것이란 지적이다.

◆일부 과제는 부작용 우려도 = 일부 개선과제는 정부안대로 바뀔 경우 부작용이 더 클 것이란 우려도 제기됐다. 이황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32개 개선과제 중 공정위 관련 3건은 질서위반행위로 보고 형벌을 과태료로 전환하도록 제안됐다"면서 "하지만 이 3건은 단순 질서위반행위가 아니라 중요한 실체법 의무이행확보를 위한 절차규정으로 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 교수가 지적한 개선과제는 △공정거래법 제126조 제1호(지주회사 설립 또는 전환시 신고누락, 거짓신고) △제126조 제2호(지주회사 사업내용 보고서 신고누락, 거짓신고) △제126조 제3호(대기업집단의 주식소유현황과 채무보증현황 신고누락, 거짓신고) 등이다. 이들 법령의 위반을 단순한 교통법규 위반과 같은 차원으로 처리해서는 안된다는 지적이다.

이 교수는 "이들 법령위반 행위를 기존보다 훨씬 가벼운 과태료 처분으로 변경하면 대기업의 모회사격인 지주회사의 실체나 불법 행위 파악이 어려워질 수 있다"면서 "과태료 수준을 대폭 상향하거나 과징금과 통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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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홍식 기자 king@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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