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진단

대학병원 간호사도 피하지 못한 응급의료 사각지대

2022-09-02 11:57:33 게재
김윤 서울대 의대 교수, 의료관리학교실

서울아산병원에서 뇌출혈을 일으킨 30대 간호사가 수술을 받지 못하고 다른 대학병원으로 옮겨졌다가 숨지는 안타까운 일이 있었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큰 규모의 대학병원이 자기네 간호사를 제때 수술하지 못했다는 것이 국민들에게 큰 충격을 주었다.

하지만 중증 응급환자가 받아주는 병원이 없어 골든타임 안에 제대로 치료를 받지 못해 사망하는 일은 대한민국에서 매일 반복되는 충격적인 일상이다. 최근 연구에 의하면 처음 방문한 병원에서 치료받지 못하고 다른 병원으로 이송된 중증 응급환자의 수는 연간 3만명을 넘는다.

역설적으로 중증 응급환자 가운데 더 응급하고 더 중증일수록 더 많이 다른 병원으로 전원되었다. 전체 중증 응급환자에서는 11명 중 1명이 전원되었지만, 치명률이 20%에 이르는 초응급질환인 대동맥박리 환자는 4명 중 1명이 전원되었다. 대표적인 중증 응급질환인 급성심근경색과 뇌졸중, 중증외상 환자는 8명 중 1명이 다른 병원으로 전원되었다.

그런데 뇌졸중 같은 중증 응급환자가 제 때 치료를 받지 못하고 다른 병원으로 옮겨지는 일은 피할 수 없는 일일까? 아니다. 미국이나 유럽에서는 중증 응급환자를 다른 병원으로 전원하는 일이 드물다. 우리나라 응급환자의 전원율은 미국의 3배에 달하며, 미국의 시골보다 2배가량 높다. 후진적인 대한민국 응급의료체계가 제대로 치료받으면 살릴 수 있는 중증 응급환자를 살려내지 못하고 있다.

후진적 응급의료체계가 근본원인

어떻게 해야 중증 응급환자가 제대로 치료받지 못한 채 사망하는 일이 되풀이되지 않을까? 의사들은 건강보험 수가가 낮아서 뇌혈관수술을 하는 신경외과 같이 힘든 일을 하려는 의사가 점점 줄어들기 때문이라고 본다. 보건의료노조는 의사수가 부족해서 생기는 문제이니 의과대학 정원을 늘려야 한다고 주장한다. 일부 전문가는 의료의 공공성이 부족해서 생기는 일이라고 한다.

모두 다 맞는 말이지만 장님 코끼리 만지듯이 각자 입장에서 관심있는 단편적인 대안만으로는 문제를 해결하기 어렵다. 중증 응급환자가 제때 치료를 받지 못하는 응급의료의 사각지대를 해소하기 위해서는 건강보험 수가를 높이고 의사를 늘리는 것과 함께 부실한 응급의료체계를 전면적으로 개편해야 한다.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 첫째, 의사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중증 응급환자에 대한 건강보험 수가(진료비)를 올릴 필요가 있다. 급성심근경색환자의 막힌 심장혈관을 뚫어주는 시술, 뇌졸중 환자의 뇌혈관 수술료를 크게 올려야 한다. 모든 건강보험 수가를 올려야 하는 것이 아니라 중증 응급환자 진료에 필요한 수가를 올려야 한다는 점을 분명히 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건강보험 재정지출이 크게 늘어나고 중증 응급환자를 진료하는 의사가 다른 분야로 유출되면서 문제는 오히려 악화될 수 있다.

하지만 건강보험 수가를 올린다고 응급의료 사각지대가 해소되진 않는다. 2009년 보건복지부는 부족한 흉부외과 의사를 늘리기 위해 흉부외과 건강보험 수가를 100% 인상하는 획기적인 조치를 단행했다. 그러나 예상과 달리 흉부외과 전공의 지원율은 크게 높아지지 않았고 병원의 흉부외과 의사 부족 문제는 계속되고 있다. 2배로 인상된 흉부외과 수가 덕분에 병원 수입은 늘었지만 병원이 그 돈으로 흉부외과 의사를 늘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정확히 말하면 정부가 수가를 2배나 올려주면서도 병원이 인력을 충원하도록 하는 법규를 함께 마련하기 않았기 때문이다. 체계적이지 않은 문제 진단에 근거한 단편적인 대안으로는 응급의료 사각지대와 같은 복합적인 문제를 해결할 수 없음을 보여주는 좋은 예다.

적정 인력 확보할 수 있도록 법령 개정

둘째, 중증 응급환자 진료수가 인상과 함께 병원이 중증 응급환자를 진료하는 의사와 간호사 등을 적정 수준으로 확보하도록 응급의료 관련 법령을 개정해야 한다. 현 응급의료법에서는 당직 의사를 내과 외과 신경외과와 같이 진료과목만으로 구분한다. 하지만 당뇨병 환자를 주로 보는 내분비 내과의사가 급성심근경색 환자를 볼 수 없고, 척추수술을 하는 신경외과 의사가 뇌혈관수술이 필요한 뇌졸중 환자를 진료할 수 없다. 따라서 중증 응급환자 진료에 필요한 전문분야 의사가 24시간 당직을 서도록 응급의료법을 구체화해야 한다.

법으로 병원이 어떤 의사를 얼마나 확보해야 할지를 정하기 위해서는 응급환자를 보는 병원의 기능을 명확하게 구분해야 한다. 동네 종합병원이 대학병원 수준으로 의사를 확보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대학병원에서 진료해야 할 최중증 응급환자 수도 한정되어 있기 때문이다. 같은 뇌졸중 환자라도 뇌혈관 수술이 필요한 최중증 응급환자는 대학병원에서 진료하도록 하고, 단순한 시술은 지역 종합병원에서 담당하도록 기능을 구분해야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셋째, 중증 응급환자가 전국 어디에서 생기든지 골든타임 안에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응급센터를 전국적으로 고르게 배치해야 한다. 큰 종합병원이 없는 응급의료 취약지에서는 기존에 지역에 있는 병원을 확충하거나 공공병원을 새로 지어야 한다. 반대로 대도시에서는 너무 많은 병원이 난립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중증 응급환자의 수는 일정한데 이들을 진료하는 병원이 너무 많으면 진료의 질과 효율성이 떨어진다. 중증 환자를 가끔 진료해서는 진료의 질을 유지하기 어렵고 적지 않은 수의 의료진이 24시간 당직을 해야 하는데 환자수가 너무 적으면 효율성을 유지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넷째, 중증 응급환자를 진료하는 의사를 충분히 확보할 수 있도록 의사인력 수급대책을 마련해야 건강보험 수가를 올리고 병원이 의사를 고용하도록 해도 절대적으로 배출되는 의사수가 적거나 다른 곳으로 유출되는 의사가 많으면 중증 응급환자를 진료할 의사는 부족할 수밖에 없다.

외과 산부인과 흉부외과 신경외과는 의료에서 생명을 좌우하는 필수적인 분야지만 건강보험 수가는 낮고 일은 힘들어 의대생들이 잘 지원하지 않는 기피 과목으로 알려져 있다. 흔히 의대생들이 잘 하려고 하지 않으니 의사가 부족하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이들 기피 과목의 인구당 전문의 숫자는 우리나라가 외국에 비해 1.5배 이상 많다.

의사수가 많아도 중증 응급환자를 진료할 의사가 없는 이유는 배출된 의사들이 수입이 좋고 편한 분야로 빠져나가기 때문이다. 흉부외과 전문의의 약 40%는 개원해서 수입이 좋은 하지정맥류 수술과 같은 비급여 진료를 하거나 내과 의사처럼 고혈압 당뇨병 환자를 진료한다. 신경외과 의사 중 상당수는 건강보험 비급여 MRI 검사와 시술이 많은 척추수술을 하는 병원에서 일한다. 미국과 유럽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독특한 현상이다.

환자 입장에서 문제해결 대안 내와야

중증 응급환자를 진료하는 의사의 월급을 높여주고 인력을 늘려 당직을 줄여주는 등 근무조건을 개선할 수는 있지만 하지정맥류 수술을 하는 흉부외과 의사나 척추수술 전문병원에서 일하는 신경외과 의사 수준으로 높여줄 방법은 없다. 최근 조사에 의하면 흉부외과 개원의의 연봉은 약 4억9000만원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의사 수입 평균의 3~4배 수준이다. 의학적으로 꼭 필요하지 않은 수술을 하거나 비급여 진료를 해서 높은 수입을 올리는 영역을 의사 수입의 표준으로 삼을 일도 아니다.

중증 응급환자가 제때 치료받지 못하고 사망하는 일이 일상화된 후진적인 응급의료체계를 더 이상 방치해서는 안된다. 이제라도 제대로 된 대책을 마련하기 위해서는 환자 입장에서 문제를 해결할 실질적인 대안을 마련하는 데 모두 적극 나서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