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진단

세계질서 결정할 10년, 중장기전략은 있나

2022-09-30 11:45:09 게재
전재성 서울대 교수, 정치외교학부

국제정세의 거대 변동은 한국 외교에 기회와 도전을 동시에 안겨준다. 얼마나 큰 변화인지, 어떠한 성격의 변화인지 정확히 파악하고 대처하는 것이 중요하다. 1991년 12월 26일 소련은 공식적으로 15개 공화국으로 분해되었다. 올해 2월 24일 우크라이나전쟁이 발발하기까지 국가들 간 전쟁은 국제정치에서 주인공이 아니었다. 아프리카 중동에서 수많은 내전과 엄청난 사상자가 속출하기는 했지만 강고한 미국의 리더십 아래 세계질서는 온전히 유지되고 미래는 비교적 예측가능했다.

앞으로 미국은 예측가능하고 변하지 않는 패권의 모습을 더이상 유지하지 않을 것이다. 강대국 간 전쟁의 위험은 늘 도사리고 있을 것이고, 핵전쟁으로 인류의 생존시계가 멈출 수도 있다. 국가들 간 이합집산은 수시로 일어나고 적과 동지를 구별하기 어려울 것이다. 지정학 경쟁 속에서 시장에 대한 국가의 개입에 예외는 없을 것이고 갈수록 국가들 간 국력 편차는 다변할 것이다.

우크라전쟁은 영토 아닌 질서의 전쟁

미국 중국 유럽 등 강대국들은 앞으로 10년이 결정적 10년이라고 이야기한다. 10년 동안 혼란이 지속될 것이지만 동시에 10년을 어떻게 보내는가에 따라 2030년대 국가 위상이 결정될 것이라는 말이다.

미국은 패권을 유지하기 위해 자국우선주의를 핵심으로 하는 트럼프주의와 미국 중심의 단단한 진영을 만들고 세계적 관여를 추진하는 바이든주의의 두축 사이에서 움직일 것이다. 그 진동의 파장은 매우 크고 혼란한 미국 국내정치에 기인한다. 미국이 변수가 된다는 것은 한국과 같은 동맹국에게 매우 당혹스러운 일이다.

중국은 내달 개최될 20차 전당대회를 기점으로 수십년 간 유례 없던 지도자의 3연임체제를 맞이하게 된다. 도광양회를 버린 시진핑 주석이 개인에 집중된 권력을 어떻게 정당화하고 어떠한 유산을 남기려 할지에 따라 아시아와 세계는 흔들릴 것이다.

모든 국가들을 함께 묶을 것 같았던 코로나 사태의 와중에서도 미중은 더 격렬하게 경쟁했다. 앞으로 10년이 미중경쟁으로 얼룩질 것으로 생각될 즈음 러시아의 푸틴 대통령은 우크라이나를 자신의 영토로 만들고자 전쟁을 시작했다. 러시아가 그런 무리수를 감행한 것은 미국이 주도해 온 세계질서의 정당성이 약화되고 미국이 러시아의 도전을 막을 수 없다고 확신했기 때문이다.

우크라이나전쟁은 많은 것을 바꾸어 놓을 것이다. 미국은 고립주의를 축으로 미국우선주의를 택할 때 결국 약해지고 불안해진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적어도 바이든정부는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 블링컨 국무장관은 최근 미국의 한 프로그램에서 미국이 만든 공백은 반드시 다른 강대국, 그것도 독재국가들이 메울 것이라고 언급했다.

우크라이나전쟁은 두 국가 간 전쟁이 아니라 러시아와 유럽을 갈라놓은 전쟁이고, 미국 주도의 자유주의 규칙 기반 질서와 이에 도전하는 대안적 질서의 거대한 충돌로 기록될 것이다. 이번 전쟁에서 설사 러시아가 패퇴해도 또다른 우크라이나전쟁의 위험성은 상존하므로 유럽인의 마음 속에 전쟁은 가장 중요한 변수가 될 것이다. 불과 몇년 전까지만 해도 환경과 인권 등 분야에서 규범외교를 이끌던 탈근대의 안전지대가 근본적으로 변화한 것이다.

유럽에 국한된 문제가 아니다. 우크라이나전쟁이 언제 끝날지 모두 궁금해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어떻게 끝나는가이다. 러시아가 한뼘의 우크라이나 영토라도 빼앗는 이득을 취한다면 우크라이나 모델은 전세계로 확장될 것이다. 러시아를 몰아세운 미국의 내러티브들과 우크라이나에 대한 막대한 지원, 나토의 강화 및 확대를 통한 미국과 유럽의 연대, 엄청난 고통을 감수하면서 실행한 러시아에 대한 경제제재, 세계시민들의 분노 모두 러시아의 군사력 앞에서 무력한 것이 되기 때문이다. 결국 우크라이나전쟁은 미국 주도 세계가 흔들리면서 영토의 전쟁이 아닌 질서의 전쟁이 되었다.

대만, 미중경쟁 향방 가늠할 실마리

우크라이나전쟁 직전, 평화를 상징하는 올림픽에서 시진핑 주석과 푸틴 대통령은 "제한 없는" 우정을 약속했다. 우정에 끝이 없다면 전쟁은 우정을 확인하는 좋은 시험대다. 지는 전쟁이라면 귀추가 더욱 주목될 수밖에 없다. 시진핑 주석은 푸틴 대통령에게 전쟁에 필요한 무기를 주지 않았다. 불법적인 전쟁에 군사력 지원을 하면 중국몽은 좌절되기 때문이다.

최근 두 정상의 만남과 중국 외교부 성명에서 중국은 전쟁에 대한 '의문'를 표하고 정전을 촉구했다. 중러 간 우정은 전쟁 중이 아니라 전쟁이 끝난 뒤에 확인될 것이다. 세계에서 고립되고 경제가 망가지고 국내적으로 혼란한 러시아는 중국에 더 기댈 수밖에 없을 것이다. 전쟁의 향방에 따라 우정은 종속관계로 변화될 수 있다.

결국 중국이다. 적어도 미국은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 점증하는 미중경쟁은 결정적 10년 동안 한국 외교를 여러 분야에서 시험할 것이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병합할 엄두를 낸 것을 보고 미국은 대만을 주시하고 있다. 이미 홍콩에 대한 강력한 흡수정책에 아무런 제동을 걸지 못한 미국으로서는 중국의 대만 강제병합을 경계하고 두려워하고 있다.

대만은 지정학적 중요성을 거의 갖지 못하는 홍콩과는 다르다. 중국이 태평양으로 진출하는 통로이며 모든 국가들이 사용하는 반도체를 만드는 세계 1위의 위탁생산 국가이다. 미국 중국 대만 중에 누가 충돌의 방아쇠를 당길지 알 수 없지만, 언제든 충돌이 가능하고 그 충돌은 미중경쟁의 향방과 세계평화를 결정할 실마리가 될 것이라는 인식 자체가 아시아를 흔들고 있다.

북한은 세계가 결국 두개의 진영으로 나뉠 것이라는 신냉전론을 공식화했다. 북한에게 신냉전은 기회다. 미국 본토를 공격할 수 있는 핵무기를 개발하는 과정에서 더 이상의 UN 경제제재는 중국과 러시아의 비토로 가능하지 않을 것이다. 위기의 러시아를 지원하면서 적어도 푸틴에게 북한의 위상은 진작되었다. 미국으로부터 안전보장을 받지 않아도 중국과 함께 북한의 미래를 도모할 수 있다고 판단할 수 있다.

국가적 전문지식 총동원할 전략 수립을

한국은 중견국과 선진국의 사이에서 진동하고 있다. 세계시민에 대해 자유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지구적 연대를 통해 주축 역할을 하는 선진국을 만들겠다는 대통령의 메시지가 발신되고 있다. 한국이 좁은 국가이익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국제정세의 변화에 긍정적으로 기여하는 선진국이라는 사실은 충분히 수용가능하다. 한국의 위상이 한껏 올라간 것은 사실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앞으로 10년을 준비할 정확한 정세평가가 선행되고 있는가, 중장기 외교전략의 가닥을 잡고 있는가 등이다. 미중갈등은 이제 피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미국에 한국의 대중전략을, 중국에 한국의 대미전략을 설명하고 그 사이에서 전략공간을 만들어낼 수 있는 실력이 필요하다. 미중관계 속에서 단기적 피해를 최소화하면서 중장기 이익을 도모할 계산서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정부뿐 아니라 전문가 기업 시민사회의 지혜를 모을 수 있는 전략체계가 필요하다. 미중 어느 한쪽에 이념적으로 치우친 정부가 아니라 국내 전문지식을 총동원할 수 있는 결집의 중심이 있어야 한다. 미중관계의 전선이 가치와 이념을 넘어 경제로, 군사안보로 확대되므로 분야간 벽을 허물어야 한다.

북한은 신냉전이 중국의 승리로 끝나는 장기전을 바랄 것이다. 혹은 적어도 그 과정에서 강성국가가 되려는 호기를 잡으려 할 것이다. 그러한 북한을 한국정부가 정교한 국제정세에 대한 평가로 설득해 남북화해로 이끌 수 있는 마지막 기회를 잡을지, 아니면 한미동맹을 강화하면서 장기전으로 돌입할지 결정의 순간이 다가오고 있다.

전재성 서울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