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촌

홍콩 위협하는 싱가포르의 금융허브 비결

2022-10-28 11:55:25 게재
안영집 전 주 싱가포르 대사

국제 금융 중심지로의 입지를 공고히 해가는 싱가포르의 기세가 무섭다. 영국 컨설팅업체 지엔(Z/Yen)이 매년 두차례 금융 중심지 경쟁력을 지표화해 발표하는 국제금융센터지수(GFCI) 평가에 따르면 금년 하반기 싱가포르는 뉴욕과 런던에 이어 3위로 올라섰고 홍콩은 4위로 추락했다.

평가 시점에 따라 변동은 있지만 최근 싱가포르는 여러 지표상에서 홍콩에 역전하는 양상을 보인다. 한때 도쿄가 아시아의 금융 중심지로 부상한 적도 있지만 오랜 기간 아시아권에서는 홍콩이 역내 금융 부문에서 선도적 역할을 해왔다. 그 배경에는 중국이라는 큰 시장을 배후지로 두고 있고 영미권의 금융 시스템에 긴밀히 연계된 강점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지역적 차원에서 보면 전통적으로 경제력이 앞선 한국 등 동북아 지역과 중국은 홍콩 금융시스템을, 동남아 국가들과 인도는 싱가포르 금융시스템을 더 많이 활용해 왔다. 그런데 최근의 몇가지 사태로 홍콩이 가진 매력과 경쟁력이 약화됐다. 먼저 자치권이 크게 약화된 홍콩의 체제 변화다.

2020년 통과된 홍콩보안법은 법 위반 사항에 대한 강력한 처벌 및 외국인에 대한 역외적용 등으로 상당수 외국자본의 이탈을 초래했다. 다음으로 코로나19 유입 방지를 위한 오랜 격리 기간 등 방역조치로 2020년 이후 매년 10만명 이상의 거주자가 홍콩을 빠져나가는 현상이 나타났다.

100개 이상 가족 경영회사 이전

이러한 상황에서 자연스레 싱가포르가 그 대안으로 부상하고 있다. 기업하기 편한 환경, 깨끗한 정부, 세계적 수준의 기업생태계와 국제 금융시스템이 외국 기업에 매력 있는 환경을 제공하고 있기 때문이다. 수준 높은 법률서비스와 예측가능한 법체계를 유지하고 있는 것도 싱가포르가 갖고 있는 장점이다. 영어 사용이 자유롭고 다수의 국제학교가 있다는 점 역시 외국인과 그 가족들의 선택에 중요한 요소가 되었다.

특히 싱가포르는 2021년 10월부터 코로나19 방역규제를 대폭 완화해 홍콩과의 차별성을 부각시켰다. 세계 최대의 자산관리회사인 블랙록(BlackRock)은 홍콩사무실을 줄이고 싱가포르 영업을 대폭 확대했으며, 시티그룹은 주식시장 고위급 직원 절반 이상을 홍콩에서 싱가포르로 이동시켰다. 금년에만 전세계 100개 이상의 가족 경영회사들이 싱가포르로 이전했다. 자산관리 규모면에서 볼 때 2020년 기준 싱가포르는 3조4000억달러, 홍콩은 3조달러 수준으로 이미 역전이 된 상태다.

물론 주식시장의 규모로만 보면 현재 홍콩의 시가총액은 4조6000억달러 수준이고 싱가포르는 6400억달러 수준이라 아직 큰 차이가 나지만 2022년 3월 기준 홍콩에 소재하는 외국 및 중국계 은행 총수는 126개로 127개인 싱가포르에 역전됐다. 2022년 6월 기준 헤지펀드 운영 규모는 홍콩이 802억달러, 싱가포르가 531억달러 수준이지만 홍콩이 감소추세인 반면 싱가포르는 계속 증가해온 차이점이 있다.

이러한 변화에 따라 싱가포르 부동산 가격 추이도 가파른 상승세를 보이는 중이다. 금년 들어 아파트나 콘도 임대료는 1년 전에 비해 약 40~50%까지 급등했다. 아파트는 시장에 나오는 즉시 선점되며 외국인학교는 1자리 공석에 평균 15명의 신입 학생이 경쟁하고 있다. 특히 요즘과 같이 세계 주요 통화가 약세를 보이는 상황에서도 싱가포르 달러는 안정성을 보인다. 물론 싱가포르의 여건이 모든 면에서 좋은 것만은 아니다. 최근 가족기업의 투자이민비자 기준이 크게 상향되고 엄격한 현지인 채용 조건 등 홍콩보다 상대적으로 요구 조건이 많은 것도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싱가포르로 금융이 몰리는 이유는 싱가포르가 가진 매력이 많기 때문이 아닐까.

예측 가능성 보여주는 법체계 장점

많은 투자자들은 자본 이익에 대한 무과세 등 우호적인 세금과 예측가능성을 보여주는 법체계가 싱가포르의 장점이라고 얘기한다. 핀테크 등 혁신 금융기법에 문호를 개방하고 블록체인과 암호화폐 등에 대해서도 규제 샌드박스 제도를 활용해 제한적인 범위 내에서 우선 허용한 후 문제점이 발견되면 규제하는 방식도 호평을 받는다. 싱가포르는 특히 가족 경영회사, 헤지펀드 및 사모주식 운영 회사가 쉽게 설립될 수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싱가포르의 현실과 우리의 상황이 같을 수는 없다. 한국을 국제금융의 중심지로 성장시키고자 하는 정부 역시 싱가포르 사례를 보다 면밀히 분석해 외국 금융자본을 유치할 유인책을 좀 더 적극적으로 모색해 나가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