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촌

남태평양 섬 쟁탈 삼국지

2022-11-11 11:56:10 게재
이백순 전 호주대사, 법무법인 율촌 고문

남태평양의 작은 섬나라들을 둘러싸고 미국·중국·호주 세 나라가 숨 막히는 경쟁을 벌이고 있다. 발단은 중국이 남태평양의 14개 작은 섬나라들을 집요하게 외교적으로 공략하면서다. 중국은 40년 전부터 섬나라들이 대만과 단교하고 자국과 외교관계를 맺도록 외교력을 집중했다.

중국의 현금외교에 사모아가 맨 먼저 넘어가고 퉁가 파푸아뉴기니 통가 바누아투 키리바시, 마지막으로 솔로몬 제도가 2019년 대만과 단교했다. 그리고 중국은 이들 섬나라에 필요 이상으로 큰 항구와 비행장을 건설하도록 지원했고 지난 8월에는 솔로몬제도와 안보협정을 맺었다. 남태평양을 자신들의 안마당이라고 여겼던 미국과 호주는 중국의 공세에 화들짝 놀라 대응에 나서기 시작했다.

콜럼버스가 대서양을 건너기 훨씬 이전인 명나라 시대에 엄청난 규모의 정화함대를 아프리카 대륙까지 보낸 전력을 갖고 있던 중국은 15세기 최강의 해양세력이었다. 그러나 그 이후 해금(海禁)정책을 펴면서 바다로부터 멀어졌다. 그 결과 바다를 장악한 서양 국가들이 해로를 통해 식민지를 개척하고 제국을 건설하는 동안 중국은 열강의 침탈을 당하는 처지로 전락했다.

중국, 태평양 반분하는 야심 구체화

이러한 아픈 역사를 만회하고자 중국 지도부는 2014년 이후 '일대일로' 정책을 본격적으로 시행하면서 전세계 바닷길의 요충을 공략, 유럽까지 이르는 교역로 상에 주요항구 사용권을 확보하기 시작했다. 이 교역로는 그 항구들을 잇는 선의 늘어진 모양을 본떠 '진주목걸이'라 불린다. '진주목걸이'를 확보한 중국은 이제 눈을 태평양으로 돌려 14개 섬나라를 장차 군사기지로 변경할 목적으로 항구를 준설하고 확장하는 사업을 지원하고 있다.

2019년 중국은 바누아투의 루간빌 항구를 확장하는 사업에 자금지원은 물론 건설회사까지 제공했다. 대형 크루즈선 입항을 위해 항구를 확장했다고 했지만 관광객이 많지 않고 컨테이너선도 한주에 3~4편 들어오는 항구이기에 사업 타당성이 부족하다. 그래서 이 항구도 진주목걸이 선상의 다른 항구처럼 바누아투정부가 부두운영 수익금으로 원리금을 상환하지 못하면 소유권이 중국으로 넘어갈 공산이 크다. 이러면 이 항구는 중국 항공모함이 정박하는 해군기지가 될 수도 있다. 중국과 안보협정을 맺은 솔로몬제도도 자국 항구에 정기적으로 정박하던 미국 해안경비대 함정의 입항을 금지하려고까지 했다. 그리고 중국 회사들은 솔로몬제도 한 구석에 심해항구를 건설할 목적으로 농장을 매입해 건설을 추진하고 있다.

미국은 이런 현상이 남태평양에 확산되는 것을 막기 위해 발벗고 나섰다. 호주정부도 본토에서 2000km 채 떨어지지 않은 솔로몬제도 등에 중국 기지가 들어선다면 자국 안보에 치명적이기에 이를 용납하기 힘들다. 그리하여 미국·호주·중국 세 나라는 남태평양 섬나라들에게 경쟁적으로 인프라 건설을 돕고 다른 지원을 제공하는 등 여러 유인책을 제시하며 이들을 자기 쪽에 묶어두려고 노력하고 있다.

평화로운 관광지로 여겨졌던 남태평양에 이런 각축전이 벌어지는 것은 이 지역이 미중간 경쟁에서 전략적으로 중요한 곳이기 때문이다. 2차대전 중에도 일본이 먼저 점령한 이 지역을 탈환하기 위해 미군은 과달카날 혈전 같은 수많은 전투를 치러야 했다.

이 섬들이 중국 영향권에 들어간다면 서태평양에서 미국의 제해권이 심각히 위협을 받고 호주는 자신의 코앞 군사기지에서 본토공격을 당할 위험성을 감수해야 한다. 만약 이 섬나라들이 중국에 넘어가면 알류산 열도-하와이-뉴질랜드를 잇는 소위 제3도련선까지 중국이 미국 해군을 밀어낼 수 있게 된다. 그러면 중국은 원하는 대로 태평양을 미국과 반분하는 원대한 야심을 달성하게 된다.

호주와 한국·일본에 심각한 안보위협

이런 상황은 서태평양을 주요 수송로로 삼는 호주뿐만 아니라 한국과 일본에게도 심각한 안보위협이 될 것이다. 남태평양 삼국지를 우리가 더 이상 강 건너 불구경할 상황이 아니다.

우리는 미국·호주·일본 등과 잘 조율해 14개 섬나라들에 대한 인프라 건설지원과 원조를 제공함으로써 이들이 중국의 품에 쉽게 빠져들지 않도록 도와주어야 한다. 윤석열정부는 '한-태평양 도서국 회의'는 물론 미국·일본·호주와 양자협의를 활용해 이 섬나라들에 대한 전략적 접근을 해야 할 것이다.

글로벌 중추국이 되려면 이런 전략적 행보를 해야 한다. 내년에 한-남태평양 도서국 정상회의를 최초로 개최키로 한 일은 잘한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