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진단

'상시위기 시대' 경제주체들은 어떻게 움직일까

2022-12-09 10:51:19 게재
유경원 상명대 경제금융학부 교수

임인년 올해는 그야말로 호랑이 등에 올라탄 형국의 불안함과 불안정이 쭉 이어졌다. 국내적으로는 대통령선거와 지방선거, 중부지방 물난리, 이태원 참사 같은 사건·사고가 점철됐다. 해외에서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가뭄과 홍수의 기후재난, 가상화폐거래소 FTX 파산 등 경제에 충격을 주는 사건들이 다수 발생했다.

이러다 보니 영국 콜린스 사전은 올 한해를 규정짓는 단어로 '항구적인'(permanent)과 '위기'(crisis)의 합성어로 '상시위기'(permacrisis)를 선정했다. 이는 '긴 시간 지속되는 불안과 불안정한 상황'을 의미한다. 그런데 이러한 불안함과 불안정이 내년에도 지속될 우려가 있다.

올해 우리는 안정적이라고 생각해왔던 많은 것들이 갑자기 변하면서 이러한 불안감이 커졌다. 우크라이나전쟁은 2차대전 이후 유럽에서 전쟁과 핵폭탄의 공포를 되살렸고, 지난 여름 영국의 기록적인 더위, 파키스탄 홍수는 기후변화가 이제 기후재난으로 변화했음을 상기시켰다.

특히 기후위기와 우크라이나전쟁은 올겨울 세계경제를 '천수답 경제'로 만들어 놓았다. 이번 유럽의 겨울날씨가 얼마나 혹독하냐에 따라 유가 등 원자재 가격과 인플레 기대가 달라져 각국의 정책 효과를 제약하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 세계경제 전망이 과거 농경시대처럼 하늘만 바라보는 불확실한 상황으로 바뀐 것이다.

또한 10월 발생한 카카오 먹통 사태는 디지털로 촘촘히 연결된 우리의 일상이 얼마나 취약한지를 깨닫게 하는 계기가 됐다. 또 테라-루나 폭락사태와 FTX 파산은 디지털 시대의 투자대안으로 떠올랐던 가상화폐시장에 대한 신뢰를 추락시켰다. 이에 따라 디지털 사회가 가져오는 편익과 리스크에 투자자들이 민감하게 반응하게 되었다.

사회적으로는 이태원 참사를 통해 세월호 사태 이후 제기되었던 국가의 역할에 대한 불안감을 다시 한번 환기시켰다.


불안 속에 경제주체들은 안전 추구

불안감 속에서 경제주체들의 행태는 안정지향적으로 바뀌었으며, 시장에서 의사결정 시 안전함과 유동성이 우선시 되었다. 투자자들이 안전자산인 채권이나 달러를 챙기면서 시장에서는 강달러 현상과 역 머니무브 현상이 발생해 자금줄을 마르게 했다. 또 높아진 금리로 저축자들은 더 부유해지는 반면 조달 비용 상승으로 대출자들의 금리부담은 더 커져 일종의 재분배 효과가 발생하고 있다.

하지만 높은 금리 속에서도 불안감은 커지고 있다. '디지털 자백약'이라고 불리는 인터넷 검색자료를 살펴보면 사람들이 현재 느끼는 금융시장의 불안감을 확인할 수 있다. <그림> 에서 보는 것처럼 최근 금리가 급등한 상황에서 예금보호제도에 대한 검색이 급증했다. 높은 예금금리와 동시에 불안감이 쌓이고 있는 것이다. 이 불안감의 발현이 안전판에 대한 검색이다. 고금리에 대한 불안감이 경제에 부정적인 심리적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나타난다.

한국은행이 경제기사에 나타나는 심리를 지수화한 '뉴스심리지수'는 예금보호제도에 대한 검색기록과 반대로 움직여 불안감이 클수록 현재 경제에 대한 부정적인 심리를 보여준다. '뉴스심리지수'가 기준치 100 미만이면 그만큼 가계·기업 체감심리가 나빠졌다는 뜻이다. 이 지수는 코로나19 사태 직후인 2020년 3월에 68.9로 떨어졌고, 금융위기를 겪던 2008년 11월 후 최저치를 기록한 바 있다. 최근 이 지수의 하락은 결국 불안감이 경제 체감심리에 부정적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와 같은 불안감 때문에 소비자들은 소비지출을 덜 하게 되고 예비자금을 보유하게 되며, 기업들 역시 투자보다는 유동성 확보에 전념하게 된다. 최근 보도에 따르면 은행의 10억원 이상의 고액 정기예금이 늘었는데 대부분은 기업이 보유한 것으로 알려졌다. 대내외적 불확실성에 경기둔화 조짐까지 나타나자 기업들이 적극적인 투자보다는 현금을 쌓아두는 것을 택한 것이다. 입출금이 가능한 기업자유예금 증가폭이 크지 않은 것으로 볼 때 기업들은 투자보다 일정 예치기간을 두고 이자수익을 얻으려하는 것으로 보인다.

코로나19 완화과정에서 확대되었던 소비지출 역시 3분기 들어 주춤하는 모습이다. 무역수지는 8개월째 적자행진 중이어서 내년 하반기까지 경기둔화가 이어질 가능성이 커졌다. 주요 경제기관들은 내년 우리나라 경제성장을 1%대로 낮춰 전망했는데 결국 내년 경기를 어둡게 만드는 배경에는 경제주체들의 지속적인 불안감이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고 봐야 한다.

상시위기감으로 인한 경제주체들의 불안감 지속은 자칫 경제위기를 촉발할 우려가 있다. 한국은행이 지난달 27일 발표한 '2022년 하반기 시스템 리스크 서베이'에 따르면 경제전문가 10명 중 6명은 '1년 안에 한국에서 금융시스템 위기를 초래하는 단기충격이 있을 수 있다'고 응답했다. 조사 결과에 따르면 단기충격 발생 가능성에'매우 높음'이나 '높음'으로 응답한 비중은 58.3%로, 올 6월 말 26.9%에 비해 2배 이상 높아졌다. 단기충격에도 경제가 민감하게 반응할 수 있다는 것은 예비적 저축동기 등 소비이론에 의해 설명되는데 불확실성이 확대될 경우 소비 변동폭이 커져 경기변동성이 확대된다는 것이다.

상시위기 상황 속 각자도생 시대 열릴 듯

경기침체 폭과 경제위기 가능성을 줄이기 위해서는 이러한 불확실성과 불안감의 해소 노력이 체계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하지만 현재로서는 정부의 제대로 된 경제운용이나 위험관리 계획이 보이지 않는다. 그야말로 경제주체들이 느끼는 체감적인 상시위기 상황이 지속되고 이에 따라 향후 각자도생의 시대가 열릴 전망이다.

결국 불확실성과 그로 인한 불안감이 지배하는 상황에서는 사회안전망이 중요하다. 사람들이 위험한 순간에 안전판을 찾는 것처럼 사회안전망이 있어야 사람들은 안심하고 경제활동을 할 수 있다.

하지만 무엇보다 국가가 최후의 보루로서 그리고 위험관리자로서 역할을 할 것이라는 믿음이 있을 때 국민은 본인들의 생업에 전념하고 합리적으로 행동한다. 현재 불안감이 팽배해 있는 상황에서 각자도생 사회의 결과는 혼란이다. 혼란 속에서 위기는 자라나고 이것이 자기충족적 예언에 따라 실현될 것이다. 상시위기 사회의 도래에 따라 지속가능한 사회안전망 구축과 함께 국가위기 관리 점검이 제대로 이루어져야 한다.

이제 얼마 후면 임인년 호랑이 등에서 내려와 계묘년 토끼해를 맞이하게 된다. 내년 한해는 토끼처럼 마음 졸이며 살지 않기를, 그리고 충격이 와도 너무 놀라 뛰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