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로시간 임금체계 개편

1주 69시간까지 노동 가능, 노동시장 개혁 '시동'

2022-12-13 10:58:29 게재

이정식 고용부 장관 "개혁 기필코 완수하겠다" … 사회적 논의, 국회 입법 필요 "노동정치 주목"

윤석열정부의 노동시장 개혁과제를 발굴해 온 '미래노동시장연구회'(연구회)가 4차산업혁명, 고령화 등이 초래한 변화에 대비하는 근로시간·임금체계 혁신 방안과 노동시장의 구조적 문제인 이중구조 해결을 위한 추가과제를 제안했다.
연구회는 고용노동부 장관에게 제출하는 권고문을 통해 연장근로시간 관리 단위를 현행 '주'에서 최대 '연'으로 개편하고, 호봉제로 대표되는 연공형 임금체계를 직무·성과 중심의 임금체계로 바꿀 것을 권고했다. 이에 대해 한국노총·민주노총은 "정부 의도에 맞춘 '답정너' 권고문"이라며 장시간 노동과 임금 삭감을 초래할 것이라고 비판했다.
한국경영자총협회는 "방향성은 공감한다"면서도 11시간 연속휴식시간제 등 일부 내용에 대해서는 재검토가 필요하다는 반응이다.

정부 노동시간 제도 관련해 기자간담회 연 양대노총 | 11월 24일 서울 영등포 한국노총에서 민주노총, 한국노총 관계자들이 노동시간 제도 및 윤석열정부 정책 인식조사 발표 관련 양대노총 기자간담회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류영석 기자


미래노동시장노동연구회(연구회)가 12일 서울 중구 프레지던트호텔에서 '공정한 노동시장, 자유롭고 건강한 노동을 위하여'라는 제목으로 고용노동부 장관에게 제출하는 권고문을 발표했다.

지난 6월 이정식 고용부 장관이 발표한 '노동시장 개혁 추진방향' 이후 경영학·법학·보건학·경제학·사회복지학과 교수 등 12명으로 구성된 연구회는 7월 18일 발족하고 5개월 동안 활동해왔다.

연구회 좌장인 권순원 숙명여대 경영학과 교수는 "1953년 만들어진 근로기준법은 큰 골격 변화 없이 70년간 유지되고 있고, 노사관계는 대립과 갈등의 '1987년 체제'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며 "이중구조, 고령화, 낮은 고용률 등 노동시장 문제의 근저에 근로시간 규제와 장시간 근로 관행, 연공형 임금체계가 내재하고 있으며 이는 시급한 개혁대상"이라고 강조했다.

◆연장근로 관리 단위 '주'에서 최대 '연'으로 = 근로시간에 대해서 연구회는 "현행 근로시간 제도는 같은 시간, 같은 장소로 출근하고 같은 시간 퇴근하는 전통적인 공장형 노동과정을 전제로 설계돼있다"며 "기술혁신과 디지털 혁명, 일하는 방식과 생활세계의 변화 등에 더 이상 부합하지 않는다"고 진단했다. 이어 "노사의 자율적 선택권 확대를 통해서 일 효율성을 높이고, 충분한 휴식을 누리도록 해 근로시간 총량을 줄여야 한다"고 밝혔다.

먼저 법정 근로시간 1주 40시간을 유지하되 연장근로시간 관리 단위를 현행 '주'에서 '월·분기·반기·연'으로 관리해 노사의 선택권을 확대할 것을 권고했다.

권순원 숙명여자대학교 교수가 12일 서울 중구 프레지던트호텔에서 미래노동시장연구회 권고문을 발표하고 있다. 사진 고용노동부 제공


관리 단위가 길어짐에 따라 초래될 수 있는 장시간 연속 근로부담을 줄이기 위해 연장근로시간 총량을 비례적으로 감축하자는 것이다.

월 단위 연장근로시간은 1주 연장근로시간 12시간에 월 평균 4.345주를 곱해 월 52시간이 된다. 이 월 단위(52시간)을 기준으로 분기는 156시간 대비 90%인 140시간, 반기는 312시간 대비 80%인 250시간, 1년은 625시간 대비 70%인 440시간 연장근로를 할 수 있도록 하는 방식이다.

연구회는 월 단위 이상으로 연장근로할 경우 근로일 간 11시간 연속휴식을 부여하고 근로자 대표와의 서면 합의를 통해 도입할 것을 제안했다.

근로자가 근로일, 출퇴근 시간 등을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도록 선택적 근로시간제 정산기간을 모든 업종에서 3개월 이내로 확대할 것을 권고했다.

근로자가 원하는 경우 연장·야간·휴일근로 등에 대한 보상을 시간으로 저축해 휴가로 사용할 수 있도록 하는 '근로시간 저축계좌제' 도입을 제시했다.

근로시간 적용 제외 규정도 기술변화, 다양한 근로형태 확산에 맞춰 현대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관리가 가능하거나 필요한데도 적용제외 대상으로 분류된 1차산업 노동자, 감시적·단속적 노동자 등에 대해서는 근로시간, 휴게·휴일에 관한 규정의 적용하고 고소득 전문직의 경우에는 적용 제외 방안을 검토할 것을 주문했다. 이를 위한 실태조사도 제안했다.

야간근로 및 야간근로자에 대한 보호조치로 야간노동자 개념을 명확히 하고, 야간근로 일·시간에 대한 한도 설정 등 규율 방안을 마련할 것을 권고했다.

◆연공형을 직무·성과 중심의 임금체계로 = 임금체계에 대해서 연구회는 "우리나라 많은 기업은 해가 비뀌면 자동으로 임금이 올라가는 호봉제를 주요 임금결정 방식으로 활용한다"며 "이는 기업의 신규채용 기회를 제약하고 중·고령 근로자들의 고용유지에 부정적이며 남녀간 임금격차를 초래한다"고 지적했다.

연구회는 "고용형태 및 원·하청 기업 간 임금격차를 축소할 수 있도록 연공성 완화와 직무·숙련 등을 반영한 임금체계로 개편을 지원해야 한다"며 "임금체계가 없는 중소기업과 비정규직 근로자 등을 위한 공정한 임금체계 구축을 추진해야 한다"고 밝혔다.

세부과제로 △중소기업과 근로자에 대한 임금체계 구축 지원 △업종별 임금체계 개편 지원 △공정한 평가 및 보상 확산 지원 △60세 이상 계속 고용을 위한 임금체계 관련 제도 개편 모색 △포괄임금 오남용 방지 △상생임금위원회 설치 등을 제시했다.

◆원·하청 격차, 5인 미만 사업장 사각지대 해소 = 이 밖에도 연구회는 추가 주요과제를 제안했다. 연구회는 고용형태, 기업규모, 원·하청 간에 벌어지는 노동조건과 산업안전보건 환경 등의 격차를 해소하고, 근로기준법에서 항상 예외로 남아있는 5인 미만 사업장에 대한 사각지대 해소방안을 마련하라고 권고했다.

최근 다변화된 고용형태를 고려해 플랫폼 종사자를 보호하고, '불법파견' 논란을 빚고 있는 파견제도에 대해서도 전반적인 개선을 주문했다. 통상임금·평균임금, 주휴수당, 최저임금 등 임금제도 전반에 대한 불확실성을 해소할 것도 권고했다.

노사의 불법부당한 행위에 대한 규율, 노동형벌 제도 개편, 노동위원회 조정 기능 활성화 및 대안적 분쟁해결 활용 등을 위한 법·제도 개선과 함께, 노동자 대표의 정당성을 보장할 수 있는 선출 절차 등을 마련하고 이와 연계해 취업규칙 제도 개편방안을 검토하라고 주문했다.

권 교수는 "연구회 구성과 활동 초기 '답정너 연구회' 등의 비난과 오해가 있었지만 각자의 소신과 철학, 전문성에 기반해 독립적으로 활동했다"며 정부에 신속한 추진을 촉구했다.

연구회가 최종 권고문을 마련함에 따라 정부의 노동시장 개혁도 본격화될 전망이다.

이정식 고용부 장관은 이날 페이스북을 통해 "권고문에 구체적으로 담겨있는 임금과 근로시간 제도는 빠른 시일 내 입법안을 마련하겠다"며 "노동시장 이중구조 개선 등 추가 과제도 조속히 사회적 논의를 시작해 효과적인 방안을 모색하겠다"고 말했다. 이어 "온 힘을 다해 노동시장 개혁을 기필코 완수하겠다"며 노사의 동참을 호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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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남진 기자 njhan@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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