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진단

신기후체제와 영화 '아바타'

2022-12-30 11:16:55 게재
김상준 경희대 교수, '붕새의 날개, 문명의 진로' 저자

2009년 개봉한 '아바타1'은 생태주의 메시지를 선명하고 아름답게 전한 수작이었다. 상업적으로도 크게 성공해 수많은 아바타 팬이 생겼다. 이 영화의 한편에는 생명과 자연이 서로 의지하고 보호하며 살아가는 '생명의 그물'(Web of life)의 세계가 있고, 다른 한편에는 그러한 세계를 파괴하고 빼앗아 독차지하려는 거대한 힘이 있다. '아바타1'은 생명세력이 파괴세력을 몰아내는 것으로 끝난다.

그러나 올 12월, 13년 만에 개봉한 속편 '아바타2'는 아주 다르다. 돌아온 약탈세력의 파괴력은 훨씬 막강해졌다. 반면 '판도라 행성'의 '생명의 그물'의 힘은 가공할 파괴력 앞에 너무나 왜소하고 무력해 보인다.

아바타2는 미약한 생명세력이 파괴세력의 압도적인 위력과 위협과 추격에 시종 쫓겨다니는 이야기다. 3시간의 상영시간이 다 끝나갈 무렵에야 먼바다의 작은 섬까지 쫓아온 추격대를 겨우 물리치지만, 그 추격대란 배후의 거대한 파괴세력의 일부일 뿐임을 누가 모르랴.

'여섯번째 대멸종' 향해 달리는 인류

아바타의 생명세력과 파괴세력 간의 결전은 오늘날 기후위기의 세계에 대한 알레고리, 우화다. 올여름 더위는 많은 숲을 태우고 남북극의 빙하를 녹였다. 이제 이 겨울은 북극의 극한기류를 중간 위도대까지 밀어내고 있다. 냉기를 막는 제트기류가 풀린 탓이다. 이런 극서와 극한의 널뛰기가 더 이상 '이상기온'이 아니라 기후위기 시대의 뉴노멀, 새로운 정상상태가 되고 말았다. 이러한 사태에 대응하기 위한 국제협의 체제를 '신기후체제'라 한다. 신기후체제는 기후위기의 가속화 추세를 완화시키고 궁극적으로 멈추게 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아바타2는 이 신기후체제가 형편없이 비틀거리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만 같다. 격랑 속의 일엽편주 신세다. 이 일엽편주 속에서 아바타2의 생명세력은 모두 내 가족과 내 종족의 보존만을 생각하고 머리를 좁다란 뱃바닥에 처박는다. 그러나 기후위기의 가속화를 막지 못하면 내 가족, 내 민족, 더 나아가 인간뿐만이 아니라 지구 생명권 전체의 미래까지 암울하다.

지금 인류는 지구 역사에서 존재했던 다섯번의 '대멸종'에 이은 '여섯번째의 대멸종'의 벼랑 끝으로 달려가고 있다고 과학계는 경고한다. 지구과학에서 '대멸종'이란 지구 생물종의 75% 이상이 멸종하는 현상을 말한다. 생물계의 멸종 현상은 이미 심각한 수준으로 진행 중이다.

핵심은 인간 문명이 대량으로 대기에 방출하고 있는 탄소의 양이다. 대기 중 탄소 입자가 늘수록 기온은 올라간다. 급속한 온난화, 기후위기로 인해 이상기온이 일상화되고 숲이 타고 바다가 죽는다. 이런 현상은 양의 되먹임을 통해 무서운 속도로 대멸종을 향해 달린다. 이 '여섯번째 대멸종'에 대항하는 전투에서 인류 문명은 형편없이 밀리는 듯 보인다. 아바타2는 풍전등화가 된 인류의 가여운 운명을 보여주는 것만 같다.

한국 상황은 더 암울하다.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기후위기에 대항하는 '기후활동가'들이 여러 현장에서 헌신적인 운동을 벌이고 있지만, 기성 주류사회는 귀를 틀어막고 있다. 지난 대선에서 '기후위기' 문제는 제대로 언급조차 되지 못했다. 기후위기의 분명한 파생물이었던 코로나19 사태를 겪었음에도 그러했다.

더구나 새 정부는 한국정부가 엄연한 일원으로 되어 있는 '신기후체제'의 탄소배출 감소 약속을 부인하려 한다. 기왕의 녹색 재생에너지 사업의 성과들을 정쟁거리로 삼아 부정하고 공격하기 바쁘다. 안에서는 그렇게 부정하면서 밖으로 나가서는 그렇듯 차마 공개적으로 부정하지는 못하고 그 약속을 지키겠노라고 마음에 없는 말을 한다. 지난 11월 제27차 유엔 기후변화협약 당사국 총회(COP27)에서 나경원 기후환경대사 발언이 그러했다. 기후위기를 대놓고 부정하고 기후협약에서 탈퇴했던 트럼프의 뻔뻔함이 이 대목에서는 오히려 정직해 보인다.

50년 전 '성장의 한계' 경고가 현실로

경고는 일찍 시작됐다. 1972년 발표된 '성장의 한계'(Limits to Growth)라는 의미심장한 보고서다. 이제 저무는 2022년은 '성장의 한계' 출간 50주년이었다. 당시 MIT의 세 젊은 학자들은 컴퓨터 시뮬레이션 기법을 활용해 세계 인구, 1인당 산업생산물, 1인당 서비스 등의 지표가 2030년 즈음부터 하락하기 시작할 것이라고 예측했다. 경제성장이 한계에 이르러 하강하기 시작한다는 것이다. 주요 이유로 지구 가용 자원의 한계를 들었다.

빛나는 예지력을 보여준 이 경고는 그러나 오랫동안 칭송보다는 엄청난 반발과 비난을 받았다. 과학기술과 경제성장의 무한한 잠재력을 이해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실제로 '성장의 한계' 출간 이후 오늘날까지 지구촌의 산업생산 지표는 과거보다 더욱 맹렬한 상승곡선을 그려왔다. 석유 매장량에 한계가 보이자 셰일가스 채취 기술을 개발한 것처럼 한 자원이 한계에 이르면 다른 대체 광물을 개발해 무한히 지속할 수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이제 달라졌다. '성장의 한계'의 메시지에 다시금 강한 힘을 불어넣었던 것이 기후위기였다. 세계경제 성장추세 역시 뚜렷이 꺾이고 있다. 경제규모가 커질수록 경제성장이 요구하는 자원과 에너지의 양은 이자가 이자를 낳는 복률 이자처럼 커진다. 문제의 초점은 지구자원의 물리적 한계가 아니었다. 한계 없는 복률 성장이 쏟아내는 엄청난 화석연료 배출물 폐기물 자연파괴가 문제였다. 그렇듯 한계를 넘은 성장이 낳은 부정적 결과들이 모여 기후위기라는 새로운 자연현상을 만들고, 그렇듯 만들어진 '신기후'라는 '신자연'이 성장에 자연적 한계를 긋고 있다.

그 사이 성장지상주의는 오히려 불평등과 양극화를 심화시켰다. 풍요를 위해 무한한 성장이 필요하지 않음도 밝혀졌다. 코로나19 사태는 성장이 멈추고도 풍요를 나눌 수 있는 길이 있음을 알려주었다. 오히려 무한성장주의가 나눔의 풍요를 질식시킨다.

그럼에도 아바타의 파괴세력처럼 자연을 끝없이 약탈하면서 무한성장을 추구하는 세력은 여전히 존재할 것이다. '대멸종'이 오더라도 지구 밖으로 탈출해 새로운 우주 자연을 정복하면 된다고 꿈꾸는 사람들도 있다. 자연과 우주가, 그리고 생명과 인간까지도, 오직 그들과 그들의 욕망 충족을 위해 존재한다고 믿는 괴이한 부류다. 그들이 바로 '아바타'의 침략자, 파괴세력이다.

생명세력-파괴세력 결전에서 이기려면

'아바타3'이 2024년 개봉 예정이라 한다. 아바타2에 그것에 대한 예고는 없지만, 막강한 파괴세력을 피해 숨어다니기에 급급했던 생명세력이 대반전을 이루는 내용일 것임은 누구나 짐작할 수 있다.

아바타란 힌두교에서 신의 화신(化身)을 말한다. 영화 아바타에서는 지구 인간이 '판도라 행성'의 나비족 몸으로 화한 존재다. 나비족은 '생명의 그물' 속의 삶을 살아간다. 영화 속 아바타는 두 얼굴이다. 하나는 자연과 생명을 파괴하기 위해 나비족으로 위장한 파괴 아바타이고 다른 하나는 '생명의 그물'과 하나가 된 생명 아바타다.

아바타1을 보면 주인공은 파괴 아바타로 시작하나, 이후 생명 아바타로 의식과 존재를 바꾼다. 따라서 아바타 시리즈는 생명세력과 파괴세력 간의 문명적 결전의 영화이자, 인간 내부의 생명과 파괴의 투쟁에 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아바타2에서 보았듯 파괴세력의 힘은 막강하다. 이 결전에서 이기기 위해서는 파괴세력이 가진 힘을 생명화해야 한다. 인간의 권력 부 과학 종교가 생명화되어야 한다. 생명화란 '생명의 그물망' 속의 그물코가 됨이고, 그 그물은 나눔과 공존의 그물이다. 그동안 실망스러웠던 신기후체제가 힘을 내기 바란다. 모두가 힘을 낼 때다. 그렇게 모두 힘찬 새해를 맞이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