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진단

저출산 발 사회보장제도 와해 고민하는 일본

2023-01-20 11:10:26 게재
이지평 한국외국어대 특임강의교수

일본 기시다 총리는 1월 4일의 연두기자회견에서 "다른 차원의 저출산 대책에 도전하겠다"고 강한 의지를 밝혔다. 현재 일본의 저출산 문제는 수요를 위축시키고, 공급능력을 제약해 일본경제의 성장 능력을 억제하는 데다 인구 증가를 전제로 만들어졌던 사회보장 시스템을 붕괴시키는 압력으로 작용하고 있다.

일본정부는 저출산 문제가 경제적 위기를 야기하고 있다는 인식 아래 대책을 강화하려 한다. 우선 1월 중 새로운 저출산 대책회의를 구성하고 3월 말 정책 제언을 정리해 신설 부처 '아동가정청'이 발족하는 4월 이후 구체적인 방안을 마련할 예정이다. 현재 중학교까지 1만5000엔 정도 지원되는 아동수당의 액수 및 지원 기간 확대 등의 방안이 모색되고 있다.

일본의 합계출산율(여성 1명이 평생 낳는 출생아 수)은 그동안의 저출산 대책에 힘입어 2005년의 1.26에서 2018년에는 1.42로 회복했고 2021년에도 1.37을 기록해 소폭 개선되긴 했다. 하지만 저출산 정책으로 일본의 저출산 문제가 획기적으로 완화될 것인지는 비관적인 측면이 있다. 이미 그동안 저출산 현상 장기화의 영향으로 일본의 가임 여성수가 크게 줄어든 상태다. 15~49세의 가임여성 인구는 정점이었던 1990년의 3145만명에서 2022년 12월 현재 2406만명으로 23.5%나 줄어들었다.

인구감소 대비한 경제구조 개편 필요

기시다내각의 대규모 저출산 대책에도 불구하고 일본의 인구감소세는 지속될 전망이다. 그런 만큼 인구감소 사회에 대응한 경제구조의 재편이 필요한 시점이다. 저출산·인구감소 사회에 대응하기 위한 시급한 과제는 기존 사회보장 시스템의 붕괴 압력에 대응하는 일이다. 재정이 악화되는 가운데 발생한 사회보장 시스템 붕괴 압력은 일본인들의 미래에 대한 불안→삶의 질 악화→결혼·출산 기피와 저출산 문제로 이어진다. 저출산 문제 해결을 위해서도 연금 의료보험 등의 사회보장 시스템의 지속가능성을 제고하고 불안감을 해소할 필요가 있다.


일본의 의료보험 연금 등의 사회보장 제도는 현역 세대의 부담으로 은퇴한 고령자까지 지원하는 '부과 방식'이다. 사실상 현역세대에서 고령세대로 소득재분배가 되는 것이다. 저출산 고령화로 고령자 비율이 높아지면 재정의 지속가능성이 위태로워질 수밖에 없다.

이 때문에 보험의 원래 취지가 질병이나 소득 감소의 위험에 대비하기 위한 것인 만큼 부과 방식이 아니라 개인이 낸 보험금을 계정으로 관리해 지급하는 '적립 방식'으로 전환하자는 주장도 제기되어 왔다. 개인별 적립 계정은 각 개인에게 건강 증진 인센티브를 확대하는 역할을 할 것이며, 연령층별 적립 계정 관리는 같은 연령의 부유층이 저소득층을 지원하는 공조 방식으로 소득재분배 기능도 살릴 수 있다.

'적립 방식'의 사회보장으로 개혁할 필요가 있음에도 기존 사회보장 제도가 고령자의 삶을 지탱하고 있고 인구고령화로 인해 이러한 사회보장 없이 일본 사회를 유지할 수 없는 상태가 돼 개혁이 쉽지 않았다. 그동안 일본정부는 사회보장 재정의 부족분을 재정지출에서 충당해 왔다. 그 결과 일본의 재정적자 문제가 더욱 심각해졌다고 할 수 있다. 2021 회계연도의 사회보험 지원 지출액은 129조6000억엔에 달했으나 보험료 수입의 부족분을 메우기 위해 51조3000억엔이 재정에서 지원되었다.

일본정부는 사회보장 재원 확충을 위해 세금확대 정책을 실시해왔다. 2012년에 '사회보장과 조세의 일체 개혁'에 관한 정치적 합의를 도출하고 아베정권 하에서 소비세를 2번 인상했다. 다만 현재 10%가 된 소비세율 인상만으로는 사회보장 제도를 유지하는 데는 부족한 실정이다. 더구나 사회보장 지출 확대와 함께 일본 재정의 지속가능성에 대한 불안감도 늘었다. 사회보장 재정이 어렵지만 다수 일본 국민들이 전반적으로 증세에 대해 반대 입장을 보이고 있어서 복지제도가 정비된 유럽 각국처럼 20% 정도로 소비세율을 인상하는 것은 정치적으로 민감하고 어려운 상황이다.

미래세대에 부담 전가 암묵적 선호

인구감소 시대에 불가능한 사회보장 제도를 개혁하려는 시도가 부진하고 증세 정책도 한계를 보이는 가운데 일본의 재정적자는 계속 확대돼왔다. 그 결과 기존 채무상환 및 이자비용은 2022년도 일반회계 예산(추경예산 고려)의 22.1%를 기록했다. 사회보장비의 32.9%를 합치면 50%를 초과해 나머지 예산으로 교육이나 공공사업, 산업 및 중소기업 지원, 방위비를 충당해야 할 어려운 상황이다. 이에 따라 일본정부는 각 분야에서 긴축적 재정운영에 주력해왔으나 이는 잠재성장력을 강화하는 산업부흥책을 어렵게 하는 측면도 있었다.

최근 코로나19를 계기로 일본정부는 막대한 재정확대 정책을 실시 중이며 이를 뒷받침하는 일본은행의 초금융완화 정책, 일본 국채의 대량 매입도 계속됐다. 막대한 재정적자에도 불구하고 대규모 경제대책을 계속해도 일본은행이 국채를 대량 매입함으로써 국채금리의 급등을 막기 때문에 일본 정치권에서 재정규율이 약해지는 효과도 나타났다. 일본 국민들도 당장의 증세보다는 그 부담을 국채발행을 통해 아직 태어나지 않은 미래세대에게 전가하는 방식을 묵시적으로 선호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정부채무가 지속가능한지를 검증하기 위한 방법으로 '본 룰'(Bohn Rule)이 있다. 이는 국내총생산(GDP) 대비 정부채무 비율 상승국면에서 기초적 재정수지(Primary Balance, 세수에서 과거의 국채비용을 뺀 재정수지)의 흑자화를 위한 재정운영 노력이 있는지를 관찰한다.

<그림>과 같이 일본정부는 GDP 대비 정부채무 비율이 상승하는 국면에서 기초적 재정수지의 개선 노력이 미진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림>의 전반적 추세선이 우하향하는데 이는 총부채가 늘어날수록 기초적 재정수지의 적자화가 심화되고 있다는 뜻이다. 각종 경제쇼크 발생시 재정팽창 후의 자동 증세 대책을 미리 위기대책에 포함할 필요도 있었으며, 현재는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대응한 재정긴축이 필요한 상황이기도 하다.

일본 인구감소와 재정적자는 타산지석

일본의 저출산과 인구감소, 이에 따른 사회보장 제도와 재정 불안은 우리에게도 해당되는 일이다. 일본의 경험을 보면서 미리 대응하는 자세가 중요하다. 출산율이나 경제성장세에 대한 보수적인 전망을 전제로 하면서 균형 재정을 위한 과제와 목표를 분명하게 할 필요가 있다.

현실 정책에서는 단기적 타협은 불가피하지만 장기목표를 고수하면서 복지와 증세의 균형에 대한 국민의 이해와 합의를 형성해 단계적으로 지속가능한 사회보장 제도의 기반을 강화하는 자세가 중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