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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 신사유람기' - CES 2023을 가다

2023-01-27 12:02:40 게재
이준호 서울대 교수 자연과학대 생명과학부

머지않은 미래에 세계를 선도할 수 있는 가전제품들을 전시하던 곳이 세계가전박람회(CES, Consumer Electronic Show)였다. IT의 새로운 바람이 불면서 CES는 변신했고, 격변의 4차산업혁명 시대에는 산업간 경계를 허무는 새로운 기술 트렌드를 집약적으로 보여주는 현장이 되고 있다. 매년 1월 라스베이거스 도시 전역에서 진행되는 이 전시회는 명실공히 미래 신기술 경연장이다. 필자에게도 좋은 기회가 생겨 처음으로 CES에 '신사유람'을 가는 행운을 누릴 수 있었다.

아는 만큼 보인다고 했던가. 2400개가 넘는 전시를 다 볼 수 없으니 제대로 골라 보려면 CES의 중심주제를 탐색해보는 것이 유용하다. 언론 기사들을 찾아보면 매년 CES의 핵심 주제의 변천사를 볼 수 있다. 가깝게 2021년에는 디지털, 헬스케어, 전기자동차 자율주행, 디스플레이 혁신, 스마트 홈 등이 돋보였다. 지난해에는 헬스, 웰니스, 모빌리티, 지속가능성 그리고 가상·증강 현실이 주된 주제였다. 올해의 핵심은 메타버스 웹3, 모빌리티, 디지털헬스, 지속가능성 그리고 휴먼 시큐리티라고 되어 있어서 지난해와 차이가 그리 크지는 않을 것으로 짐작할 수 있었다. 지속가능성이 2년 연속 중심 주제로 부각되어 있는 것을 보니 지속가능성이 앞으로도 중요한 경향일 것이라는 짐작을 할 수 있었다.

생명과학자인 필자의 전공과 관련해서는 에이지테크(AgeTech)라는 분야가 눈에 띄었다. 고령사회에 활용할 수 있는 새로운 기술들이 소개될 것으로 기대했지만 실제 볼 수 있었던 것은 자율주행 휠체어나 난청 해소 기술 등이 그나마 가장 인상적인 수준이었다. 중심 단어는 '치매'(dementia) '알츠하이머'(alzheimer) 등이었다. 그리고는 대부분은 하고 싶은 일들을 소개하며 투자를 유혹하는 정도였으니 아직 갈 길이 멀어 보였다. 어쩌면 비어 있는 공간이 많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다.

더 호기로운 혁신을 기대했지만

비전문가의 눈에 2023년의 CES는 어떻게 비쳐졌을까. 우선 필자가 받은 첫 인상은 한국의 대기업 몇곳과 나머지 전체로 나누어진다는 느낌이었다. 전시장의 한가운데 한국의 큰 기업들 전시장이 마련되어 있었고 수많은 인파가 몰렸다. 상대적으로 상당수의 부스들은 서울역 중소기업 전시장보다 덜 인상적인 곳도 많았다.

중국에서 많이 참여하지 않았지만 선전(深川) 지구의 업체들이 상당수 보였는데 다들 영세한 기술을 선보이고 있다는 느낌이었다. CES에 온 목적이 무엇일까 궁금할 지경이었다.

두번째 인상은, 기대했던 것보다 미래기술로 보이는 전시를 찾기 쉽지 않았다는 점이다. 과거 언론을 통해 볼 때에는 엄청난 미래기술들이 CES에서 처음으로 소개되었던 것 같은데, 현장에서는 그런 흥분이나 호기심을 별로 느낄 수 없었다. 뒤늦게 언론 기사들을 보니 이번에도 '대단한 기술'들이 전시되었다고 보도하고 있었다. 거꾸로 필자가 직접 보지 못한 지난 CES들도 사실은 과장된 기사를 빼면 인상적이지 않았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많은 안마 기계들이 그러했고, 유명 자동차 회사의 자동차도 이미 시판 중인 수준의 것들이 전시돼 있었다. 현장에서 만난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평도 필자와 크게 다르지는 않았다. "경기침체 상황이니 먼 미래에 가능할 거 같은 기술이 아니라 당장 실용화될 거 같은 기술을 들고 나오는 경향이 강해졌다. 지난해보다 양은 늘었지만 질적 진전이 있었다고 보기 힘들다"는 평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멋진 혁신적인 기술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자율주행 기술이 복잡한 많은 문제들을 어느 수준까지 해결했는지는 정확히 알기 힘들었지만, 교통사고 걱정이 없는 현장에서 작동하는 자율주행 장치들은 농업이나 광산업에 충분히 실용화될 수 있을 것 같았다. 대표적으로 존 디어(John Deere)와 캐터필러(Caterpillar)의 대형 장비들은 인공지능과 첨단기술들을 결합해 효과적이고 지속가능성에 부합하는 미래기술을 선보였다.

세번째로, 한국이 CES에 신사유람단으로 참여하는 것이 아니라, 거꾸로 한국이 CES를 먹여 살리고 있는 것 같다는 것이다. 과장해 말한다면 한국이 빠지면 CES는 김빠진 잔치가 될 거 같아 보였다. 약 600개의 전시가 우리나라에서 왔고 이는 전체의 1/4나 된다. 미국 다음으로 가장 많다고 한다. 실제로 우리말로 소통되는 부스를 많이 볼 수 있었다. 코골이 방지 AI 베개가 신기해 물어보니 설명하는 미국인이 "이 제품은 현재는 한국에서만 구할 수 있다"고 했다. 한국에서 개발되고 CES에 전시를 나온 제품이었던 것이다.

신사유람단 넘어서는 고민 필요한 시점

다양한 스타트업 기업들도 많이 참여하는 CES는 창업을 구상하는 청년들에게는 큰 울림을 줄 수 있을 거 같았다. 실제로 포항공대는 '코로나 학번'으로 불리는 2020학번 학생들 전체를 CES에 보내 경험을 쌓게 했다. 많은 예산이 들었겠지만, 그 이상의 효과를 거둘 것이라고 믿는다. 과거 신사유람단이 한국의 지식인들에게 여기저기서 새로운 문물을 흡수하게 해 준 것과 마찬가지로 CES 방문은 우리 학생들에게도 대단한 동기부여가 될 것이다. 그리고 단순한 유람기 이상의 진전을 위한 영양제로 작동할 것이다.

한국의 대학들이 왜 이렇게 많이 참여하는지 생각해 볼 지점이 있는 것 같았다. 많은 정부 지원 사업들이 산학협력을 강조하는 상황에서 CES 참여는 가장 좋은 실적이 될 것이라서 그런 건 아닌지. 실제로 내실 있는 기술을 선보인 경우가 얼마나 있는지.

그리고 국회의원도 30여명이 다녀갔단다. 그런데 어떤 인상과 교훈을 받았는지는 들어보지 못했다. 미래 기술혁신을 위한 법 체계 정비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고민하고, 지속가능성이라는 주요 핵심 가치의 실현을 위한 법적 정비는 어떻게 되어야 하는가를 고민하는 훌륭한 기회가 되었기를 기대한다.

지방자치단체들도 다수 참여했고 단체장들도 다녀갔다고 한다. 왜 왔다 갔을까. CES를 국내 정치에 활용할 도구라고 생각하는 것은 아닐 것이라고 믿는다.

한국이 엄청난 규모로 참여하고 있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면, 한국이 CES를 주도하는 상황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대학과 지자체들 참여가 가장 가성비 좋게 이루어지려면 어떤 방식이 좋을지 고민해야 할 것이고, 그런 시도들이 충분한 가치가 있다고 판명된다면 다른 나라들도 따라오지 않을까, 이런 생각도 해보았다.

전시장 안에만 존재하는 기술 넘어서길

CES 전시장을 다니면서 들었던 의문은 그 많은 자율주행 자동차들이 왜 아직도 전시장 안에만 있는가 하는 것이다. 그리고 전시장과 전시장, 호텔들을 연결하는 수많은 셔틀버스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운행되는 아직도 후진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는가 하는 것이다. CES 전시장 사이라는 한정된 공간 사이를 다닐 수 있는 자율주행 셔틀버스를 당장 기대하는 것은 무리일까?

오는 11월 라스베이거스에서 F1 그랑프리 대회가 열린다고 한다. 엄청난 자금을 들여서 호텔이 즐비한 도로를 경기장으로 만들고 거기서 시속 200마일이 넘는 자동차 경주를 치른다고 하니 가히 첨단기술과 자본의 최첨단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새로운 것에 대한 과감한 도전과 모험이 인간이라는 종으로 하여금 지구를 정복하게 만든 힘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할 필요도 없이, 전시장 간을 연결하는 자율주행 셔틀버스 정도야 마음먹기 나름 아닐까. 이런 소소한 기대를 넘어, 머지않은 미래에 CES에서 우리가 상상하지 못했던 새로운 기술들을 다시 만나볼 수 있을 것이라 희망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