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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크라이나전쟁 1년, 누구도 승자는 없다

2023-02-24 11:56:43 게재
박인휘 이화여대 국제정치학 교수

정확히 1년 전인 2022년 2월 24일 러시아는 우크라이나를 전격 침공했다. 러시아는 스스로 선택한 무력공격을 안보위협으로 정당화했다. 냉전 종식 이후 세계화 30년의 시간 동안 유럽 국가들의 결속 강화와 미국 주도의 나토(NATO) 동진은 러시아가 피부로 느끼는 생존적 위협이었다. 20세기 초 두차례 세계대전의 경험과 냉전기간 내내 구 소련이 보였던 피해의식은 러시아의 시각에서 전쟁 행위를 잘 설명한다.

미국과 캐나다 그리고 대서양 정체성이 강한 서유럽 국가들은 1949년 미국 주도의 군사동맹인 나토를 창설했다. 시작 당시 12개 회원국이었던 나토는 당시 소련 주도의 또 다른 동맹인 바르샤바조약기구와 대결하면서 냉전 시기 대서양 공동체의 강한 결속력을 보여주었다. 이는 미국이 가진 힘의 화려한 상징이었다.

1991년 소련이 해체되고 11개 국가로 이뤄진 독립국가연합(CIS)이 결성됐다. 연합 소속 국가들 중 조지아(그루지야) 투르크메니스탄 우크라이나는 회원국 지위를 포기했고, 러시아의 영향력이 상징적인 수준에 머물면서 현재는 경제관계 강화에 집중하고 있는 상황이다. 반면 나토의 확장은 순조로웠다. 현재 30개국으로 늘어난 나토 회원국은 서유럽에 머물던 미국의 영향력이 유럽 전체로 확장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우크라이나전쟁의 핵심적인 계기 역시 그루지야와 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 추진이었다.

스웨덴·핀란드 나토 가입이 가져올 변화

물론 턱밑까지 올라온 나토의 위력을 전쟁 감행이라는 수단으로만 대응해야 하는 건 아니다. 2차세계대전 이후 전개된 자유주의 질서에서 강대국들은 국가가 선택할 수 있는 옵션에서 전쟁을 가능한 배제하는 경향을 보여왔다. 40여년의 냉전 기간 동안 두차례의 국제전이 있었지만 그마저도 신생국가 출범과 국내정치 변수가 복잡하게 얽힌 한국과 베트남이었다. 물론 미국이 중동 중남미 등에서 군사작전을 감행한 경우가 있었지만, 국제질서의 변화에 영향을 줄만큼 역사의 변곡점을 만든 건 아니었다.

과거 냉전 역사에서 소련은 초강대국이었다. 마지막 순간에 보여준 소련의 허망한 몰락과 그 이후 유럽 국가로서의 정체성에 갇혀버린 러시아를 보면서, 과거 소련의 위력이 환상에 불과했다고 주장할 수는 있겠으나, 어차피 냉전은 이념과 이미지 대결이었다. 세계화 30년 동안 미국은 러시아를 유럽에 묶어두는 데 성공했다. 군사동맹으로 시작한 나토를 유럽 국가들간의 보편적인 지역기구로 전환시켰고, 동유럽 국가들과 과거 소련 위성 국가들을 회원국으로 받아들이는 동시에 유럽 국가들간 보편성의 확장을 통해 나토에 대한 거부감을 희석시켰다. 결과적으로 러시아를 서서히 고립·무기력화시키면서 미국 중심의 유럽 안정화 작전이 성공한 것이다.

1999년 체코 폴란드 헝가리 나토 가입 당시 러시아가 보였던 극렬한 반대, 조지아와 우크라이나를 통해 유럽을 향한 접경지역에서 안전장치를 마련하고자 한 러시아의 생존적 대외전략, 그리고 '스톡홀름 신드롬'의 저작권을 가지고 있는 스웨덴과 핀란드가 절대로 나토에 가입하지 않기를 바라는 심정은 우크라이나전쟁의 배경을 잘 말해준다. 참고로 러시아 침공 이후인 작년 5월 스웨덴과 핀란드가 나토에 가입 신청서를 제출했는데 튀르키예의 반대로 일단 무산된 상태이다. 하지만 1945년 이후부터 대서양 세력과 유라시아 세력 사이의 상징적인 '버퍼존(완충지대)'으로 남아 있던 스칸디나비아반도가 나토에 가입하게 된다면 세계질서의 향배는 더욱 가늠하기 어려워질 것이다.

강대국 정치로 귀결될 지정학의 귀환

'지정학(地政學)의 귀환'. 우크라이나전쟁을 분석하는 전문가들의 한결같은 일성이다. 미국 영향력 하에 있는 유럽 국가들에게 둘러싸이는 것은 절대적 위협이라는 러시아의 판단이 2014년 3월 크림반도를 합병하게 만들었고, 급기야 우크라이나와의 전면전을 선택했다는 설명이다.

세계화 30년 동안 우리는 '지경학(地經學)'의 세계관 즉, 경제적 이해관계가 사람과 자원의 이동을 결정하는 핵심 변수였고, 결과적으로 지리적 중요성과 장애는 더 이상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판단 아래 살아왔다. 하지만 지리적 조건에 따른 안보상황이 다른 어떤 이해관계보다도 중요한 요인이고, 국가의 행동은 이런 요인으로부터 결코 자유로울 수 없다는 지정학적 관점이 다시 부상하게 된 것이다.

'지정학'은 필연적으로 '강대국 정치(power politics)'와 맞닿아 있다. 안보논리가 지배적이고 지리적 조건에 따른 군사력 동원이 정치적 판단의 핵심으로 작용한다면 국제질서에서 강대국 지위에 있는 행위자들의 입장이 무엇인가가 매우 중요한 요인이 되기 때문이다.

우크라니아전쟁을 설명하는 다른 중요한 변수들도 있다. 잘 알려진 바와 같이 러시아는 유럽지역에서 소비되는 천연가스의 40% 가까이를 공급했다. 유럽으로의 가스 공급 제한은 현재 우리가 겪고 있는 전세계적인 에너지값 폭등으로 이어졌고, 이러한 논란 한가운데에는 '노르트스트림'으로 알려진 러시아 야말반도에서 독일의 그라이프스발트에 이르는 '야말-유럽' 라인이 자리잡고 있다. 또한 세계 5대 곡물 수출국의 하나였던 우크라이나의 타격은 세계 곡물시장의 급등을 가져왔다.

가스와 밀로 상징되는 자원을 컨트롤하면서 과거의 영화를 회복하겠다는 푸틴 대통령의 계산이 실제인지는 판단키 어려운 부분이 있다. 하지만 분명한 점은 우크라이나전쟁 이후 격동하는 세계 에너지 자원 시장을 보면서 러시아가 의존할 수 있는 중요한 전략 수단을 확보했다는 생각을 분명히 하고 있을 것이다.

지난 1년 동안 우크라이나전쟁이 오히려 세계화 질서의 모순을 생각해 보게 만드는 기회일 수 있다는 일부 학자들의 의견이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과거 냉전시기와는 또 다른 방식으로 확장일변도로 치닫는 힘의 논리와, 이익이 된다면 어떤 관계와 약속도 마다하지 않는다는 세계화 버전의 약육강식이 그 이유였다.

하지만 현 시점에서 적어도 우크라이나전쟁 1년 동안 소위 '글로벌 부익부 빈익빈' 구조는 더욱 악화되었다. 코로나 팬데믹 구도에서 야기되었던 양적팽창이 후퇴하는 시기와 맞물려 주요국의 금리수준은 전례없이 올라갔고, 가난한 나라의 입장에서 턱없이 비싸진 에너지와 식량을 확보하기가 그만큼 더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러시아 안보, 우크라 명분 접점 찾을까

현재 러시아에 가해지는 경제 제재는 엄청난 수준이다. 규모 범위 대상 등 모든 기준에서 미국과 서방국가들은 강력하고 포괄적인 제재를 부과하고 있다. 러시아에 투자했던 1000여개가 넘는 기업들이 지난 1년 사이에 투자 영업 생산을 중단했다. 경제제재는 수천년 전 펠로폰네소스전쟁 때에도 활용됐다는 기록이 있을 만큼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지만, 국가들 간 상호의존성이 심한 오늘날 제재는 가하는 국가에게도 상당한 수준의 피해를 안겨주기 때문에 효용성을 놓고 갑론을박이 심하다.

하지만 미국의 다양한 경제정책 수단, 유럽국가들의 일치단결, 인권논쟁에서 확실하게 불리한 입장인 러시아, 중국의 일관된 대러시아 소극적 지원 등으로 말미암아 강력한 제재는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포스트 우크라이나전쟁'은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사이에 최소한의 접점이 발생해야 가능할 것인데, 러시아의 지정학적 안보상황 개선과 우크라이나의 명분 확보, 이 둘 사이의 균형점을 찾아야 할 것이다. 모두가 예상하듯 올 봄 치열한 공방전을 겪고 나서 협상이 조금씩 가시화되지 않을까 예상해 본다. 하지만 어느 누구도 승자의 지위와는 멀어 보인다.

박인휘 이화여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