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촌

국제적 법률 허브로 성장하는 싱가포르의 비결

2023-03-24 12:03:16 게재
안영집 전 주 싱가포르 대사

싱가포르는 법의 지배를 통해 질서 있고 안전한 사회를 만들었을 뿐만 아니라 해외 투자자들에게 그들의 투자가 안전할 것이라는 믿음을 주어 투자에 대한 확신을 심어주었다. 싱가포르는 국제적 거래나 제3자 간에 야기될 수 있는 법률적 사안에 대해 중심적 역할을 하고자 하는 노력을 지속해왔다. 그 결과 이제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국제적 법률 허브로서의 입지를 구축할 수 있었다.

싱가포르가 국제적 법률 허브로 자리잡게 된 밑바탕에는 다음 몇가지의 적극적인 노력이 있었다. 첫째, 싱가포르국제중재센터(Singapore International Arbitration Center) 설립이다. 1991년 설립된 중재센터는 소송의 경우에 비해 낮은 비용, 빠른 결정, 강화된 기밀유지 등 중재가 갖는 장점을 통해 많은 분쟁 당사자들을 끌어 모았다. 국내외 최고 전문 인사들로 중재인단을 구성하고 불편부당한 심리와 다중언어 지원 등 차별화된 서비스를 통해 2020년 한해에만 1000건이 넘는 신규 사례를 접수했다.

둘째, 싱가포르 해사중재원(Singapore Chamber of Maritime Arbitration) 설립이다. 2009년부터 업무를 개시한 해사중재원은 해사 부문이라는 특정 전문 분야에 초점을 맞추어 국내외 전문 중재인들이 분쟁을 중재한다. 이미 수많은 해사 관련 계약서에 싱가포르 해사중재원을 분쟁 해결처로 적시하고 있고, 근래 연간 40여건의 신규 사례가 접수된다.

영미법 체계와 다중언어 장점 최대한 활용

셋째, 2015년부터 업무를 시작한 싱가포르 국제조정센터(Singapore International Mediation Center) 설립이다. 분쟁 해결 비용과 시간적인 측면에서 효율성을 제고하면서 해결의 결과로 양 당사자를 적대적 관계가 아닌 화해적 관계로 이끌 수 있는 것이 조정의 장점으로 평가된다. 그러나 조정된 결과를 효과적으로 강제할 수 없다는 난점이 있었는데 유엔국제상거래법위원회에서 채택한 조정에 관한 싱가포르 협약(Singapore Convention on Mediation)이 2020년 9월 발효됨으로써 이행을 강제할 수 있는 근거가 마련되었다.

넷째, 싱가포르 국제상사법원(Singapore International Commercial Court) 설립이다. 2015년 1월 싱가포르 고등법원 내의 1개부이자 대법원의 일부로서 설립된 국제상사법원은 국제적 성격을 갖는 고부가 가치의 상사 분쟁 처리를 목적으로 한다. 17명의 재판관 풀은 전문성과 국제적 명성을 가진 싱가포르 출신 판사와 외국인 판사로 구성되어 있으며 매 사건 별 3인 합의부 또는 단독 판사를 대법원장이 선임한다. 기준 법률은 싱가포르 법률뿐만 아니라 당사자 간의 합의에 따라 외국의 법률도 선택하며 판결에 불복하면 싱가포르 항소법원에 항소할 수도 있다. 영연방 국가 상호 간에는 판결 이행을 강제할 수 있는 틀이 마련되어 있기에 싱가포르는 여타 국가 내에서의 판결 이행을 강제할 수 있는 제도를 적극 추진하고 있다.

물론 여기에 법률 문서 및 판례의 디지털화, 법적 절차의 전자화, 자동화 시스템 및 인공지능 체제의 도입 등을 통해 외국인이라도 손쉽게 관련 절차를 진행할 수 있도록 지속적인 개혁 작업을 진행해온 점도 국제적인 법률 허브 작업에 일조한다. 법과대학의 교과과정에 새로운 기술과 혁신 분야를 계속 신설해 학생들을 선제적으로 대비시키려는 노력 역시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싱가포르가 영미법 체계와 영어 및 중국어를 자유롭게 구사하는 장점을 법률 허브 형성에 최대한 활용했다면 한국은 제조업 기반이 튼튼한 기업 생태계와 조선 및 해운 분야에서 세계적 강국인 지위를 활용해 국제적 법률 허브로 발전할 수 있는 잠재력이 충분하다.

한국 국제 법률허브로 발전할 잠재력 충분

현재 우리나라도 대한상사중재원이 여러 국제 중재 사건을 처리하고 있지만 우리 기업이 일방 당사자로 되어 있는 사건에 대한 수임률을 높이는 것뿐만 아니라 한국 기업이 끼지 않은 제3국의 중재 사건을 늘려가는 노력을 적극 경주해야 한다.

아울러 현재 국회에 입법발의가 되어 있는 국제해사법원과 국제상사법원을 하루빨리 설립해 늘어나는 국제 법률 쟁송을 관장할 수 있어야 한다. 해사법원 및 국제상사법원의 설치는 국가경쟁력 문제인데 정치적 지역적 이해관계로 인해 아직까지 진척이 없다고 한다. "한국 같이 좋은 여건을 갖춘 나라에 국제적 쟁송을 다룰 전문 법원이 없다는 게 이해하기 어렵다"는 싱가포르 해운관계자의 언급을 아직도 잊을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