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자녀 살해 후 극단적 선택' 근본대책이 필요하다

2023-04-13 10:46:48 게재
박정연 초록우산어린이재단 아동옹호본부장

얼마 전 인천에서 일가족 5명이 한꺼번에 숨진 채 발견됐다. 경찰은 가장이 다른 가족들을 살해한 뒤 극단적 선택을 한 것으로 추정하고 수사를 진행중이다. 그에 앞서 경기도에서 30대 엄마와 두 자녀가, 제주에서도 모녀가 숨진 채 발견됐다.

불과 한달 사이 자녀를 살해하고 뒤따라 본인도 생을 마감하는 '비속살해'가 연달아 발생한 데 안타까움을 금할 수 없다.

'자녀 살해 후 극단적 선택'은 살인의 한 유형이나 별도의 법적 처벌조항이 없고 국가 차원의 공식통계도 없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강기윤 국민의힘 의원실이 보건복지부와 한국생명존중희망재단에서 제출받은 '2013~2020년 전수조사 보고서'로 최근 통계를 확인할 수 있는데, 8년간 발생한 자녀 살해 후 극단적 선택 사망자는 160명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주요 원인으로는 생활고 등의 '경제문제'가 32.5%로 가장 높았고, '정신건강문제'가 26.3%로 그 뒤를 이었다. 그러나 자녀 살해 후 가해자인 부모가 동시에 극단적 선택으로 숨지는 경우가 많아 대부분 공소권 없음으로 사건이 종결되고 있어, 정확한 사건경위를 파악하기는 쉽지 않다.

왜 그러한 선택을 하게 됐는지 명확하게 조사할 길이 없으며, 그 과정에서 피해자인 아동의 의견과 목소리 혹은 간절한 구조의 외침 역시 드러나지 않고 묻혔다.

자녀를 소유물로 여기는 왜곡된 사고

비속살해가 우리 사회에서 빈번하게 발생하는 것은 자녀를 부모의 소유물로 여기고 자녀의 생명권이 부모에게 있다는 왜곡된 사고와 인권의식의 부재에서 비롯되었다고 볼 수 있다. 우리나라가 1991년 비준한 유엔아동권리협약은 모든 아동이 생명에 관한 고유의 권리를 가지고 있음을 명시하고, 당사국은 아동의 생존과 발달을 최대한 보장해야 한다고 천명하고 있다.

그러나 벼랑 끝에 선 부모가 가장 극단적인 형태의 아동학대인 비속살해를 마지막 선택지로 삼는 일이 반복되는 상황에서 국가의 사회안전망이 정상적으로 작동하고 있는지 되짚어봐야 한다.

부모가 최악의 사태를 생각할 때 자녀를 독립된 인격체로 본다면, 부모 없이도 건강한 사회구성원으로 자랄 수 있다는 사회안전망에 대한 믿음이 있다면 어땠을까.

실제로 필자가 몸담고 있는 초록우산어린이재단은 한국생명존중희망재단과 함께 경제적 어려움을 겪고 있는 고위험군 가정과 위기 사각지대 가정을 발굴하고, 당면한 어려움을 이겨낼 수 있도록 긴급생계비 지원과 사례관리를 진행하고 있다.

경제적 어려움을 겪는 가정은 사회적 고립도 함께 경험할 가능성이 높아 경제적 지원과 더불어 정서적 지지 및 상담까지 세부적인 지원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자녀 살해 후 극단적 선택이라는 비극적인 사건을 예방할 수 있는 근본적인 대책 중 하나는 가정이 어려움에 직면했을 때 가족의 삶을, 나아가 자녀의 삶을 지킬 수 있는 촘촘한 사회안전망이 있다고 믿고, 위기의 순간에 떠올릴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사회안전망에 대한 믿음 있었다면

아이들이 안전하게 보호받고 온전한 권리를 누리며 현재와 미래를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정부와 지자체, 민간이 협력해 어려움이 있는 가정의 발굴 개입 지원과 사후관리까지 보다 실질적이고 체계적인 사회안전망을 구축하고, 지원내용에 대한 대국민 홍보도 더욱 강화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