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선머슴이 소죽이고 농사 망친다

2023-04-19 11:00:59 게재
정기숙 계명대 명예교수

'선머슴이 소죽이고 농사 망친다'는 속담이 있다. 이번 윤석열 대통령의 일본방문과 대일굴욕외교가 이 속담에 해당된다는 생각이 드는 것을 지울 수 없다. 특히 오랜 역사와 관계되는 대외문제는 대통령 독단으로 해결할 문제가 아니다. 대일관계의 복잡성은 일본의 잘못된 역사인식에서 시작된 것이지 우리만의 귀책사유가 아니다.

윤 대통령은 요미우리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어렸을 때 일본을 방문했던 기억을 회고하면서 일본을 '선진국' '정직' '깨끗함' 등으로 정의했다. 과연 일본에 대한 그의 기억이 사실에 합당한 것인가?

역사적 대일문제 독단으로 해결 안돼

일본을 연구한 전문가들의 견해를 보자.루스 베네딕트는 '국화와 칼'에서 일본인은 죄의 중요성보다 수치의 중요성에 무게를 두고 있다고 지적한다. 죄를 범한 사람은 죄를 고백해서 무거운 짐을 내려놓는 습관이 있는데, 수치의 문화에서는 인간에 대해서는 물론 신에 대해서도 고백의 관습이 없고, 행운의 의식은 있으나 속죄의 의식은 없다고 했다.

존 톨런드는 '일본 제국 패망사'에서 일본인은 이해할 수 없는 모순덩어리라고 했다. 예의가 바르면서 야만적이고, 정직하면서 믿을 수 없으며, 용감하면서 비겁하고, 부지런하면서 게으른 모습을 동시에 보여준다는 것이다.

태가트 머피는 '일본의 굴레'에서 일본인은 겉으로 드러내지 않지만 일본은 천황이 정치적 권력의 정통성을 부여한다고 생각한다. 정통성에 대한 이론적 바탕이 전쟁 전의 정치체제에서 변한 것이 없기 때문에 제2차세계대전같은 재앙이 다시 생겨서는 안된다는 분명한 입장 표명을 할 수 없고, 하더라도 신빙성이 없을 수밖에 없다고 했다.

이런 정치체제의 수호자들은 두 부류가 있고, 이들은 서로 보조를 맞춰서 일한다. 검찰과 주요 일간지의 편집자들이 그들이라고 했다. 일본의 정치는 어떤 정치인이라도 언제든 이런저런 법률 위반으로 기소될 수 있는 환경에서 작동하고 있다.

검찰은 일단 특정 정치인이 질서에 위협이 되는 존재라고 판단하면, 그 정치인이 각종 법률을 위반한 사례를 적발해 이를 주요 언론에 알린다. 검찰이 잠재적 범법자의 사무실에 들이닥쳐 '압수수색'을 하고, 그 장면은 잘 연출되어 시청자들에게 전달된다. 일본에 진정한 양당제도 시스템을 도입하려던 오자와와 호소카와의 시도는 수년전 호소카와의 흠집을 찾아내서 무력화 시켰다.(위의 글은 미국의 학자와 언론인이 저술한 자료에서 발췌한 것이다.)

미일의 첨병이 되는 우 범하지 말아야

임진왜란, 36년간 강제점유 등 유사 이래 일본과의 악연은 수없이 많았고, 하나도 옳게 해결된 것이 없다. 1965년도 한일협정에서도 경술국치를 그들은 교묘히 합법이라고 주장하고자 하는 의도를 숨겨두었다. 한일관계가 정상화되어야 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나, 어느 한쪽의 일방적인 주장을 추종하는 정상화는 정상화가 아니고, 한일관계 분쟁을 야기시킬 수 있는 또 하나의 단초가 된다.

오랜 시일이 걸리더라도 해결할 수 있는 것부터 하나하나씩 해결하고, 민간 차원의 활발한 교류를 강화는 데서 그 해법을 찾아야 하지 않을까? 미중갈등 속에서 미일의 첨병이 되는 한일정상화는 포신구화(抱薪救火)라는 생각이 드는 것이 단순한 기우이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