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촌

러시아-우크라 전쟁은 어디로 가고 있는가

2023-06-02 11:58:13 게재
김원수 경희대 미래문명원장, 전 유엔 사무차장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지 16개월이 지나가고 있다. 그 사이에 양국군은 물론 우크라이나 민간이 입은 피해는 막심하며 전쟁이 장기화하면서 수반되는 고통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다. 인접한 유럽은 난민 구호, 에너지 부족으로 고생하고 있고 제3세계의 많은 국가들이 식량위기를 겪고 있어 그 영향은 세계적이기도 하다.

하지만 전쟁이 끝날 징후는 아직 보이지 않는다. 러시아는 동부 우크라이나의 점령 지역에서 철수할 의사가 없고 우크라이나는 잃은 영토 회복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우크라이나가 대반격을 예고하고 러시아가 점령지 사수에 나서면서 공수가 바뀌고 있다.

이렇게 국면이 반전된 데에는 세가지 요인이 작용한다. 첫째, 우크라이나 국민의 반러시아 정서 확산으로 과거 분열적이었던 국론이 친서방으로 결집되면서 항전 의지가 불타오르고 있다. 둘째, 이번의 침공이 러시아의 승리로 귀결될 경우 우려되는 인접지역으로 도미노 가능성을 봉쇄하겠다는 서방의 의지가 견고하다. 사실상 서방의 첨단무기와 우주, 정보 분야의 민간기술까지 동원한 대리전이 되었다. 셋째, 러시아가 당초 기획했던 속전속결 전략이 실패하면서 장기·소모전으로 바뀜에 따라 침공해 들어간 쪽에 불리하게 돌아갈 수밖에 없는 전쟁의 속성이다. 시간이 지날수록 지형지물에 익숙하고 동원과 보급에 유리한 수비측의 이점이 상대적으로 커지게 돼 있다.

소모전 지속된 후에야 휴전 모색 가능성

우크라이나가 예고한 대공세가 임박하고 굳히기에 들어간 러시아도 강력한 맞대응을 호언해 양측의 충돌과 긴장도 높아지고 있다. 뒤바뀐 공수에서 어떠한 결과가 나올 지가 앞으로의 전쟁 추이를 가늠하는 중요한 시금석이 될 것이다.

현재로서는 양측의 휴전을 가능하게 할 어떠한 조건도 마련되어 있지 않다. 양측의 입장이 대척점에 서 있는 상황에서 제3자의 중재노력이 진전을 보기는 어렵다. 앞선 많은 전쟁에서 나타났듯이 양측의 입장이 절충점을 향하기 위해서는 앞으로 상당기간 전쟁이 지속되면서 지루하게 밀고 당기는 소모전으로 진행되는 단계를 거치게 될 것이다.

전쟁의 장기화는 양 당사국은 물론 유럽과 세계에 주는 고통과 사회경제에 미칠 부작용을 가중시킨다. 절대적 관점에서 전쟁은 모두를 패자로 만들 수밖에 없다. 그러나 국제 정치적 득실에 대한 판단은 상대적 관점에서 이루어 질 것이다. 여러 변수를 고려할 때 전쟁이 어느 시점에 어떻게 끝날지 예측하기는 아직 어렵다. 현 시점에서 전망해 본다면 어느 일방의 승리로 포장되지 않으면서 전쟁을 잠정 중단하는 방식의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이러한 가능성을 가정하고 현재까지의 국제정치적 득실을 상대적 관점에서 평가해 본다면, 이 전쟁의 패자는 러시아가 될 수밖에 없다. 우크라이나의 국론을 친서방으로 결집시킨 데 이어 국제무대에서 우크라이나의 항전이 골리앗에 맞서는 다윗처럼 보이게 만들었다. 러시아의 동부 우크라이나 점령 지역의 강제 병합을 규탄하는 유엔 결의안이 143개국의 압도적 찬성으로 통과된 게 그 단적인 예다. 반대는 벨라루스 북한 등 5개국에 그쳤고 정치적 우호 관계에 있는 중국과 인도, 중앙아시아 등 35개 국가들도 기권을 선택했다.

더욱이 안보적 측면에서 보면, 유럽의 중립 성향인 핀란드가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로 들어가고 스웨덴도 뒤따라 이번 전쟁의 명분이었던 NATO의 확대를 오히려 촉진시키는 결과까지 야기했다.

유럽 국가들에게는 러시아의 침공을 막아내는데 성공하더라도 상처뿐인 영광이 될 가능성이 높다. 직간접적으로 치른 비용이 너무 크고 난민 구호와 전후 복구 지원 부담까지 떠안게 됨으로써 유럽연합(EU)에게는 브렉시트에 이은 두번째 악재이며, 전쟁이 길어질수록 그 피해는 커지게 될 것이다.

패배자는 러시아, 피해자 EU, 승자는 미중

반면 미국과 중국은 전쟁의 직접적 영향을 받지 않으면서 각기 우크라이나와 유럽, 그리고 러시아에 대한 영향력을 키우게 됨으로써 전쟁 중에는 물론 종전 또는 휴전 과정과 전후에도 가장 큰 정치적 수혜를 보게 될 것이다. 이에 따라 탈냉전 이후 다시 살아나고 있는 동(권위)서(민주) 양 진영 간 경쟁에서 미중의 주도권은 더욱 강화될 것이다.

러시아의 침공에 대한 서방의 대응이 어떠한 결말로 이어지느냐는 인도·태평양 지역에서 진행되고 있는 미중 경쟁의 향후 양상에도 중요한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다. 양 진영 간 대립의 지정학적 단층대의 양 끝이 동유럽과 동북아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우크라이나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을 강 건너 불로 볼 수 없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