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진단

'닭장'과 인도의 한계, 그리고 가능성

2023-06-02 11:56:56 게재
안유화 중국증권행정연구원 원장, 미국 어바인대(UI) 교수

'화이트 타이거(The White Tiger)'라는 인도 영화가 있다. 이 영화는 좀 과장해서 말하자면 필자의 인생 영화라고 부를 만하다. 영화 속 여러 장면들이 오랫동안 잔상으로 남아 떠오르곤 한다. 영화를 통해 최근 확대되고 있는 미국과 중국의 갈등도 생각해 본다.

우리는 주변에서 쉽게 '이제 중국은 끝났다!'라고 진단하는 전문가를 볼 수 있다. 그리고 중국을 대체할 나라로 15억 인구 대국 인도를 손꼽는다. 필자 또한 인도를 유심히 지켜보는 중이기도 하다. 인도는 과연 중국을 대체할 정도로 성장할 수 있을까? 만약 이 질문에 아무런 주저함이 없이 '예스'라고 답할 수 있으면 그 사람은 반드시 인도 주식에 투자해야 할 것이다. 투자란 해당 국가 운명에 대한 베팅이기 때문이다.

영화 '화이트 타이거'가 보여주는 실상

영화의 제목 '화이트 타이거'는 한국말로 백호(白虎)다. 100년에 한마리만 태어날 만큼 백호는 희귀한 종이라고 알려져 있다. 위에서 필자의 인생 영화라고 밝혔으니, 영화 이야기를 안 할 수가 없겠다.

인도에는 아직도 카스트(Caste)제도가 사회 전반에 많은 영향을 끼친다. 인도의 정치 사회 문화 전 영역에 걸쳐 전근대적 신분제인 카스트제도, 즉 브라만 크샤트리아 바이샤 수드라로 나뉘는 신분제가 깊이 뿌리박혀 있다. 공식적으로는 1947년에 이 제도가 폐지됐다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영화 주인공 발람은 하층민 출신이다. 그의 아버지, 할머니 또한 하인으로 태어났다. 조상 대대로 하층민 신분이다. 발람의 부모는 그에게 이런 말을 자주 한다.

"하인의 신분으로서 착실하게 살아가야 한다!"

어떻게든 하인으로 살아갈 것을 요구하는 부모라니, 지금이 어떤 시대인데 자녀에게 하인으로만 열심히 살아갈 것을 강요할까. 여기에서 우리는 왜 발람의 조상들이 대대로 그렇게 살아왔는지를 알 수 있다. 종래로 다르게 살 생각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자기의 생각을 자식들에게도 대대로 요구해왔기 때문이다. 그것이 바르다고 생각하고 한번도 의심한 적이 없었다.

영화에서 인상적인 것은 인도의 한 시장에서 닭들이 도살되는 장면이 있다. 주인공 발람은 자기 앞에서 닭들의 목이 잘리는 걸 보며 '닭들은 왜 도망칠 생각을 안 할까?'라고 질문을 던진다. 그리고 자기 미래가 목이 잘려 죽어 나가는 닭의 처지와 별반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부모가 강요한 숙명을 스스로 바꾸겠다는 발람의 의지, 이 영화의 전개를 암시하는 장면이다.

인도에서 하인으로 태어난 사람들은 체제에 순응하고 저항할 줄 모른다. 목이 잘려나가는 닭처럼 자기 운명이 닭과 다르지 않다는 것을 알지만 운명을 바꾸려 노력하지 않는다. 자신에게 주어진 숙명이라고 받아들이고 저항하지 않는다.

오랜 시간 유지되어 온 신분제를 담담히 받아들이고 숙명으로 여기는 삶, 그것이 인도 사회계급 하층에 사는 사람들을 옭아맨 '닭장'이다. 닭장에 갇혔으면서도 닭장 밖으로 나오지 않는 이유는 단순하다. 닭장 밖으로 나가면 죽는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전생의 업보가 현생의 삶으로 나타나고, 현재의 고행이 내세의 보상으로 돌아온다는 인도 특유의 종교관도 이런 생각을 깨지 못하게 만든다.

영화에서 발람은 결국 부모의 바람대로 그토록 충성을 바쳤지만 주인에게 배신당한다. 주인이 뺑소니사고를 내놓고 그 죄를 발람에게 뒤집어 씌우고 자백서를 받는다. 엄청난 배신감을 느낀 발람은 어느 날 동물공원에서 우연히 화이트 타이거를 보게 된다. 그리고 이런 대사가 나온다.

"사람은 아름다운 순간을 경험한 그 즉시 노예가 되기를 거부한다."

그렇다. 발람은 자신을 옭아맨 것들로부터 도망치기로 결심한다. 그는 주인을 죽이고 인도의 아웃소싱 허브 도시 뱅갈루루로 건너가 거기서 벤처사업을 벌여 큰 성공을 거둔다.

영화는 인도 내부의 뿌리 깊은 카스트제도, 빈부격차 문제 등 그들이 해결해야 할 사회적 문제를 다룬다. 이와 동시에 무기력하고 가난한 하인의 신분에서 벗어나고자 노력하는 발람을 100년에 한마리 태어나는 백호에 비유한다.

한계 깨지 않으면 중국 대체 쉽지 않아

이 영화는 우리에게 두 가지 시사점을 준다. 먼저 인도의 사회적·문화적 현실로 비추어볼 때 아무리 세계 인구 1위 대국이라지만 20년간 중국이 맡아온 글로벌 공급망 역할을 인도가 대체하기엔 현재로선 역부족이라는 점, 그리고 노동자로서의 소질이 부족한 인도 하인들로 산업 인프라를 구축하는 데에는 오랜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특히 많은 인도인이 스스로 하인인 것조차 모르거나 하인의 처지에서 벗어나지 않고 살아가는 현실도 인도가 앞으로 풀어야 할 난제다.

반면에 중국의 경우 1949년 공산당 정권이 세워지면서부터 모든 국민에게 다음과 같은 교육을 했다.

'사람과 사람은 누구나 평등하다(人人平等)' '여성이 하늘의 절반을 받치고 있다(婦女能頂半邊天)'

이런 교육을 받은 중국 사람들은 누군가를 차별하거나 나와 다르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누구나 평등한 인격이라고 여긴다. 중국인들 의식 속에는 스스로 불가능하다거나 한계를 두지 않는다. 즉 인도인과 달리 닭장에 갇혀도 언젠가는 나올 것이라고 확신한다. 주어진 현실, 숙명에 굴하지 않고 과감히 '닭장' 밖으로 나오고자 노력하는 사람에게 기회가 생긴다. "아름다움을 경험한 순간 노예가 되기를 거부한다"는 대사처럼 닭장 밖으로 나와서 보고 듣는 경험, 그 아름다운 순간을 경험해야만 자신의 '닭장'을 인식하고, 과감히 돌파하는 진정으로 가치 있는 삶으로 갈 수 있다.

닭장 안이 바깥보다 더 위태로울 수도

영화를 보고 난 후, 필자 역시 오랫동안 닭장 안에서 살아왔음을 느꼈다. 익숙한 일들에 함몰되어 익숙한 것 그 이상의 변화를 직접 느끼고 보면서도 두려움이 앞서 변하지 못한 삶이 아니었나 반성해본다. 나름 익숙해진 삶이라는 닭장에서 벗어나지 않는 삶을 살아왔음을 느꼈다. 닭장 밖은 위험할 수도 나를 죽음으로 내몰 수도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닭장 안에 있더라도 어차피 곧 목이 비틀려 죽고 말 것이라는 것을 몰랐다.

영화에서 발람이 그렇게 충성을 다했던 주인에게 배신당한 것처럼 말이다. 단 1초라도 새로운 경험, 아름다움을 느끼는 삶은 분명 닭장 밖에 있다! 그것을 경험해야만 진정한 나의 삶을 살 수 있다.

시대적 운명 앞에서 스스로 변할 것인가, 변화를 지켜만 보고 있을 것인가? 선택은 여러분의 몫이다. 그리고 어떤 선택을 하든 그 결과 역시 각자 받아들여야 한다. 분명한 사실은 100년 변혁의 시대 문턱에서 '변하지 않는 닭장 안에서의 삶'은 '변화무쌍한 닭장 밖에서의 삶'보다 더 위태로울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닭장 밖으로 나가야만 성공의 기회가 열린다는 것이다. 비록 낯설고 두려운 일일지라도 닭장 밖에서의 삶이 인간이 유의미한 존재임을 확인시켜준다.

누군가 만들어 놓은 자신에 대한 '한계'라는 선을 과감히 넘어보자. 똑똑하고 지혜로운 한국인이지만 한국인의 잠재력과 가능성을 옭아매는 '닭장'과 같은 뿌리 깊은 편견이 있다면 그건 무엇일까? 어떻게 극복해야 좋을까? 깊이 생각해 볼 문제다. 마지막 아래 말로 이 글을 마친다.

"코너 맥그리거의 훌륭한 점은 도전을 즐길 때 최고가 된다는 거에요. 코너는 이 순간이 되면 감상에 빠지는 대신 경기를 읽고 상대방을 읽고 기회를 노리죠. 이런 코너를 이길 사람은 이 세상에 아무도 없어요."
- 다큐멘터리 '맥그리거 포에버'에서

안유화 중국증권행정연구원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