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진단

가계부채가 소득불평등 부른다

2023-06-09 11:33:09 게재
유경원 상명대 경제금융학부 교수

코로나 이후 인플레이션 대응으로 중앙은행들이 연이어 금리를 인상하면서 그간 계속해 늘어났던 우리나라 가계부채도 줄어드는 모습을 보인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가계부채는 올 1분기에만 13조원 넘게 감소해 국내총생산 대비 가계부채 비율은 105.5%에서 102.2%로 낮아졌다. 하지만 우리나라 가계부채는 여전히 국가 경제 규모를 고려할 때 세계 주요국 가운데 가장 높은 수준이다. 더욱이 최근 금리인하에 대한 기대가 높아지면서 가계의 신규 대출수요가 다시 늘고 있다.

가계부채가 빠르게 늘면서 그동안 가계부채의 경제적 영향 특히 금융위기 발생 가능성에 대한 우려가 지속적으로 제기됐다. 최근에는 늘어난 가계부채가 다른 사회적 문제를 일으킬 영향도 고려되고 있다.

또 가계부채 누증과 함께 금융업권의 높은 수익이 주목받고 있다. 최근 통계에 따르면 은행과 보험사들이 올해 1분기에만 12조원이 넘는 순이익을 거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가계대출을 주도한 국내 은행업의 경우 당기순이익은 6조원대 후반으로 전년 동기 5조6000억원보다 1조원 넘게 늘어난 것으로 추정됐다.

국내 은행들의 순이익 증가는 가계부채 누증과 금리상승에 따른 이자 이익이 급증한 데 따른 것이다. 이처럼 높은 수익을 낸 은행 보험 등 금융업계에서 CEO 등 임직원을 중심으로 한 고액 성과급과 명예퇴직금 지급도 사회적 이슈가 되었다. 우리 사회에는 늘어나는 가계부채로 인해 상환부담에 시달리는 계층도 있지만 이득을 누리는 계층도 엄연히 존재함을 보여준다.


가계부채가 급증한 선진국을 중심으로 가계부채의 누증이 단순히 가계의 재무건전성과 금융불안에만 영향을 미치는 것이 아니라 소득불평등과 관계를 맺을 가능성에 대해 많은 논의가 있었다.

가계부채와 금융위기 관련성 입증

미국의 서브프라임 사태 이후 높아진 가계부채가 금융위기 발발 가능성을 높이는 데 대한 연구들이 이뤄져왔다. 또한 가계부채 증가 원인에 관한 연구들이 상당 부분 축적됐다. 이중에는 낮은 이자율, 금융규제 완화와 같은 전통적인 요인은 물론, 1980년대 이후 미국 등 선진국을 중심으로 경제적 불평등의 악화가 가계부채를 증대시켜 금융위기가 촉발되었다는 새로운 주장이 주목받았다. 이들 연구에 따르면 사람들의 사회적 지위 유지 욕구와 정부의 대중영합주의 정책, 금융규제 완화가 결합하면 소득불평등의 악화가 저소득계층의 부채를 과도하게 늘리고 주택시장 거품을 유발해 금융위기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반면 다른 연구들은 저소득계층의 정치적 압력에 따라 금융규제가 완화된 게 아니라 오히려 소득분배 상단에 위치한 고소득 계층의 영향으로 금융완화가 발생해 자본소득 격차가 보다 확대되고 소득불평등이 악화됐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우리나라에도 양극화 심화로 나타나

선진국을 중심으로 가계부채가 증가함에 따라 금융불안정과 분배간 이슈에 대해 많은 실증연구가 있었으나 그 결과는 혼재되어 나타나고 있다. 다만 어느 정도 의견이 일치된 것은 가계부채의 급증이 금융위기와 관련 있으며 아울러 가계부채와 분배 간의 관계가 존재한다는 것이다. 이와 같은 관계를 종합적으로 검토한 국제통화기금(IMF)의 2020년 연구결과에 따르면 가계부채의 확대 등으로 나타난 금융심화의 영향이 U자형으로 나타났다. IMF의 금융심화 지표와 지니계수 간의 관계를 180개 국가를 대상으로 실증분석한 결과, 그림과 같은 비선형 관계를 얻을 수 있었다.

IMF의 금융심도 지수는 가계부채를 포함한 GDP 대비 민간부문 신용, 연금기금자산, 연금, 보험료 비중 등 4가지를 지수화한 것이다. 금융기관의 심도가 어느 수준에 달할 때까지는 불평등은 완화됐지만, 그 수준 이상을 벗어나면 오히려 증가한다. 최근 선진국을 중심으로 가계부채 기반 금융화가 진전되고 있는데 이는 부채를 진 가계로부터 금융회사로 이자수익이 옮겨감을 의미하고, 이러한 수익은 금융업 종사자나 관리자 또는 주주들에게 집중된다. 이는 가계부채가 소득불평등을 증가시킴을 시사한다.

금융산업이 어느 정도 발전한 선진국의 경우 금융심화는 더 이상 생산적 금융을 통해 불평등을 개선하기보다 금융부문 종사자들의 소득을 증대시킴으로써 일반 서민들과 소득격차를 키우고 있다는 설명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선진국에서 가계부채에 대한 이자는 금융 부문의 안정적인 고수익 원천이 됐고 관련 종사자들과 투자자들의 소득이 늘어남에 따라 불평등이 보다 심화됐다. 특히 영국의 경우 가계부채로 인해 소득분배 상위 1%와 하위계층 간 격차가 확대되는 양극화 현상의 심화가 보고됐다.

이와 같은 결과는 우리나라에도 나타날 가능성이 높다. 코로나19 과정에서 금융규제 완화와 저이자 정책으로 부동산시장 등 자산가격이 급등세를 보이면서 20~30대를 중심으로 투자가 확대되어 주요 국가 대비 빠른 가계부채 증가세를 보였다. 이 과정에서 은행 부문을 중심으로 한 금융산업의 수익이 지속적으로 확대됐다.

최근 금리인상기에 부채를 진 가계들은 높아진 금융비용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높은 이자로 금융산업은 최고의 실적과 이익을 얻고 있다. 가계부채 증가에 기인한 금융업권 수익증대로 인해 금융부문 종사자와 투자자들의 소득과 수익이 늘어났다. 또한 고소득 고자산가들의 부채를 활용한 자산소득이 확대됐다. 금융산업이 최고의 수익을 올린 올 1분기 소득 하위 20%와 상위 20% 간 소득격차를 나타내는 5분위 배수는 5.41배로 작년 동기 5.18배보다 확대된 것으로 나타났다.

통화·금융·재정당국의 정책공조 강화

결국 부채증가는 단순히 가계 부문 재무건전성이나 금융불균형 등 경제적 영향뿐 아니라 소득불평등, 나아가 자산불평등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때문에 이러한 가계부채 증대가 가져오는 경제 사회적 영향에 대한 심도 있는 모니터링과 금융시장 경쟁, 소비자보호정책을 강화해야 한다.

이러한 가계부채로 인한 불평등 악화의 부작용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가계부채 증가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통화 금융정책뿐 아니라 소득재분배정책에 유효한 조세·재정정책의 공조가 필수적이다. 가계부채와 관련된 거시건전성 규제정책이 가계부채는 물론 경제불평등에도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있어 이에 대한 고려가 필요하다. 더욱이 그동안 시장소득불평등을 줄이는 데 효과적이었던 조세와 재정의 소득재분배 기능이 최근 재정의 효율화 논의와 맞물리면서 위축될 가능성이 커지고 있으므로 이에 대한 숙고가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