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진단

바이오에서 인공지능은 판도라 상자인가

2023-06-21 11:30:03 게재
이준호 서울대 교수 자연과학대 생명과학부

필자는 고리타분한 예쁜꼬마선충 유전학자다. 예쁜꼬마선충 연구의 원조 시드니 브레너 박사는 '고리타분'과는 거리가 먼 통찰력이 대단한 학자였다. 왜 과학자가 되었느냐는 질문을 받았을 때 어떤 물리학자는 어릴 적 라디오를 분해했다가도 조립할 수 있다는 점이 너무나 재미있어 물리학을 시작하게 됐다고 대답한 바 있다. 반면 브레너 박사는 어릴 적 개구리를 분해했는데 다시 조립할 수가 없다는 점이 의아해서 생물학을 시작하게 되었다고 대답했다. 물리학자의 의문의 1패.

그는 분자생물학이 막 달아오르던 1960년대에 이미 발생과 신경계의 연구가 미래 생물학의 중심이 될 것이며 이를 위해 단순한 모델동물이 필요하다고 역설한 바 있다. 1980년 어느 강연에서는 다음과 같은 유명한 말을 남겼다. "과학의 발전은 새로운 기술, 새로운 발견, 그리고 새로운 아이디어에 의존하게 되는데 아마도 중요성도 그 순서대로일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새로운 아이디어가 과학을 이끈다고 생각할 때 브레너 박사는 새로운 기술에 방점을 두었으니 시간이 많이 지난 후에 그 의미를 알고 감탄하게 된다. 21세기에 들어서야 과학이 비로소 그런 추세를 따르고 있다고 보이기 때문이다.

2013년 브레너 박사가 서울대에서 강연을 했다. 강연장을 가득 메운 청중의 대부분은 대학생이거나 브레너 박사를 존경하는 모델생물 학자들이었다. 그는 "이제는 모델생물이 아니라 사람을 직접 연구해야 한다, 단 한명이라도 환자를 직접 가장 깊이 있게 연구하면 정말 중요한 사실들을 찾아낼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를 존경하고 따르던 후학들에게는 가히 공상에 가까운 충격적인 주장이었다. 그런데 당시에는 상상하지도 못했던 대단한 기술들이 지금은 이 일을 가능하게 해주고 있다. 그 중심에 인공지능(AI)이 있다.

바이오 분야에서 할 수 있는 일 엄청나

알파고가 바둑계를 정복하는 것을 보고서도 AI가 어디까지 발전할지 당시에는 알지 못했다. 바이오 분야에서도 그랬다. 몇년 전만 해도 생명활동의 기초인 단백질의 아미노산 서열 정보만으로는 그 3차구조를 예측하기 힘들다는 것이 정설이었다. 그런데 2022년 알파고를 만들었던 바로 그 회사가 알파폴드를 발표하면서 그 예측을 단숨에 뒤집었다. 모든 생명체의 단백질들의 3차구조를 예측할 수 있다고 발표한 것이다.

아직 풀어야 할 문제들이 많지만 그동안의 상상을 뛰어넘는 성취를 볼 때 머지않은 미래에 더 많은 문제들이 해결될 것으로 믿게 된다. 단백질의 3차구조를 예측할 수 있게 됨으로써 단백질들 사이의 상호작용도 예측할 수 있게 되고 단백질 복합체의 구조도 풀 수 있게 되지 않을까 기대하게 된다. 나아가 단백질에 결합하는 작은 유기분자들도 예측할 수 있으리라.

유전물질인 DNA의 구조는 이중나선이라는 안정적인 구조라 비교적 예측이 쉽지만 한가닥으로 되어 있는 RNA는 그 구조예측이 단백질보다 어려워 아직은 예측이 쉽지 않다. 하지만 머지않아 해결될 것이라는 근거없는, 하지만 거의 확실한 기대와 믿음을 가지게 된다.

AI 도입으로 바이오 분야에서 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되는 일은 참으로 넓고 깊다. 생명정보를 읽어내는 일부터 새로운 정보를 생성하는 일까지 가능해질 전망이다. 인간 게놈 정보의 의미를 분석해내는 AI는 다양한 질병 가능성, 수명 예측, 좋아하는 와인의 종류까지 예측해줄 수 있을 것이다.

의료현장에서도 혁명적 변화를 예고한다. 사람은 많은 영상을 한꺼번에 보고 그 정보를 모아서 분석하는 데 취약점을 가지는데 AI는 대규모 임상자료에 대한 분석과 판단으로 진단의 정확성과 신속성이 획기적으로 개선될 것이다.

앞서 예를 들었던 단백질에 결합하는 작은 분자는 신약 개발 속도를 가속화할 중요한 진전이 될 것이다. 그동안 신약 개발을 위해 대규모 스크리닝을 통해 약효를 가질 수 있는 후보분자를 발굴하는 일을 해야 했는데 AI가 그 단계를 뛰어넘게 도와줄 것이다. 질병을 치유하기 위해서는 질병의 원인을 알고 그 원인을 제거하는 방법을 찾는 것이 중요한데, 이 모든 과정에서 AI는 인간지능을 넘어서는 능력을 발휘할 것이다.

AI 창발성 이해 못해 통제에 대한 우려

기존의 기계학습이 학습재료를 익힌 후 배운 만큼 작동해 왔다면, 지금의 인공지능은 하나를 학습하면 열을 이해하는 식으로 다른 분야의 종합도 이루어내는 '역량'을 키우는 방식의, 창발적 특성을 가진 생명체와 다름없이 작동한다. 가장 성공적인 AI는 거대언어모델(LLM, Large Language Model)을 기반으로 한다. LLM에서 하는 과업은 문장에서 괄호 안에 적절한 단어 채우기라는 단순 과업이지만 괄호 안에 가장 높은 점수의 답을 채우기 위해서는 큰 데이터를 다양한 방식으로 분석하고 이해하고 종합하는 능력을 가져야 한다. 그 데이터는 클수록 정확도가 높아져서 작은 데이터에서는 보이지 않던 능력이 어느 순간 생겨나는 창발적 특성을 가지게 된다.

AI가 다루는 데이터의 크기가 무한하다고 생각해 보라. AI의 창발적 능력이 우리의 예측가능한 수준을 넘어서서 상상하지 못하는 수준으로 개발될 수도 있음을 부정할 수 없다. 이미 전쟁 시뮬레이션에서 AI가 자신을 통제하는 인간을 살상하겠다는 결정을 했다는 보도가 있지 않은가.

우리는 인공지능이 어떻게 창발적 역량을 성취하는지 이해하지 못한다. 우리가 설명하지 못하는 방식으로 AI가 작동하는 상황이기에 앞으로 AI를 통제할 수 없는 상황이 오지 말라는 법이 없다. 사물인터넷 등을 통해 AI가 단순한 계산기계가 아니라 손발을 획득하고 스스로 판단하고 결정하는 상황이 단지 공상영화가 아니라 우리 눈앞에 펼쳐질 수도 있다. 인공지능을 전공하는 학자와 기업 관계자들 사이에도 AI의 미래에 대해 심각한 이견이 있다고 한다. 우리는 판도라의 상자를 이미 연 것일지도 모른다.

과학적 진보 추구하되 윤리 문제 챙기면

어떻게 할 것인가. 복제양 돌리의 탄생은 사람이 포함되어 있는 포유류를 체세포로 온전히 복제해 낸 것이기 때문에 생명과학 역사의 한장을 열었다고 할 수 있다. 최근에 발견된 유전자 가위를 이용해 원하는 대로 유전자를 조작한 후 체세포 복제를 통해 인간을 탄생시킨다면 이것도 판도라의 상자가 아닐까. 실제 중국에서는 HIV 감염을 막을 수 있는 돌연변이를 생성한 아기를 탄생시켜 세계를 경악시켰다. 많은 위험성들 때문에 혁명적 과학기술의 발전을 멈추게 할 것인가? 그러지 않아야 한다. 정상적인 사회적 논의 구조가 작동한다면 그러지 않아도 될 것이다.

유전공학의 혁명적 시대를 열었던 제한효소(특정 염기서열을 인식하고 잘라주는 효소) 발견 이후 과학자들이 의논해 가이드라인을 만들었고, 복제양 돌리가 보고된 직후 미국 의회에서는 논문의 저자를 불러 공청회를 열고 가이드라인을 정했다. 중국의 유전자 가위 아기 탄생 과학자는 체포됐다.

과학적 진보는 계속 추구하되 윤리적 문제는 짚고 챙기는 현명한 판단을 할 수 있는 것도 인간이니 예의 주시하되 지나치게 걱정하지는 않아도 되지 않을까. AI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다만 AI의 잠재적 역량을 우리가 다 알고 있지 못하다는 점이 결정적인 차이일 수도 있으니 좀 더 높은 수준의 경각심을 가지고 지켜보아야 할 것이다.

또 다른 걱정은 수혜계층의 양극화 문제다. 기술의 발전이 인류 보편적 복지에 기여하는 점도 많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부익부 빈익빈 문제를 심화시킬 수도 있으니 이 또한 면밀히 살펴봐야 할 점이라 하겠다. AI를 활용한 바이오 분야가 판도라의 상자가 아니라 미래 사회의 새로운 도약 발판이 되기를 희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