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시평

특허정보에서 찾는 기술혁신 열쇠

2023-07-07 12:09:17 게재
김용래 경희대 학술연구교수, 전 특허청장

연구개발(R&D) 결과물은 특허 또는 영업비밀로 관리된다. 둘의 차이는 공개여부다. 특허는 세부 기술내용이 공개되며 그 대가로 20년간 독점사용권을 가지게 된다. 반면 영업비밀은 외부사람이 알지 못하게 철저히 비밀로 유지된다. KFC의 닭튀김, 코카콜라 제조비법이 대표적이다. 제조방법 성분비율 등에 있어 역공학 (reverse engineering)이 쉬울 때는 특허가, 반대의 경우는 영업비밀이 선호된다. 한편 상품은 특허로, 서비스는 영업비밀로 보호되는 경향이 있어 제조업 중심의 한국과 일본은 특허 비중이 상대적으로 높고 서비스업 중심의 미국과 유럽은 영업비밀이 우세하다.

최근 일본이 경제안보전략의 하나로 특허를 공개하지 않는 비밀특허를 도입하고 있다. 비밀특허는 2020년 12월 자민당이 정부에 도입을 권고하고 이를 반영한 경제안보보장추진법이 작년 5월 제정되면서 제도화된다. 일본정부는 지난달 항공기 위장·은폐, 고체연료 로켓엔진, 잠수함, 무기관련 무인항공·자율제어 등 25개 기술을 비밀특허 대상으로 제시하고 내년 상반기부터 시행할 방침이다.

특허에는 기술유출을 우려할 정도의 고급 기술정보 포함

특허를 공개하지 않는 이유는 명확하다. 안보위협이 되는 국가나 기업으로 기술정보가 흘러가는 것을 막기 위해서다. 2021년 5월 자민당 신국제질서창조전략본부는 2004년 국제원자력기구(IAEA)가 한국의 농축우라늄 시설을 사찰했을 때 특허로 공개된 일본의 원자력기술이 활용되었다며 기술유출을 막기 위해 특허제도 정비를 제안하기도 했다. 우리나라도 국방기술 특허를 공개하지 않고 있으며, 최근 국가핵심기술까지 그 범위를 확대하려 하고 있다.

이처럼 특허에는 기술유출을 우려할 정도로 중요한 정보가 담겨 있다. 모든 과학기술정보의 80%는 특허문서에서 찾을 수 있다고 한다. 여기에 도면 연구자 기술이전 권리변동과 같은 핵심정보가 국제적으로 표준화된 형태로 작성되어 있어 특허정보는 양질의 고급정보로 평가받는다. 이러한 고급정보는 기술혁신 과정에서 유용하게 쓰인다. 우선 중복된 R&D투자를 방지하고 특허소송 위험도 줄일 수 있다. 유럽특허청에 따르면 사전 특허분석 부족으로 연구개발비의 30%까지 낭비되고 있다고 한다. 몇년전 국내업체가 최초로 폐렴구균 백신을 개발했으나 외국 기업의 특허소송 제기로 출시가 불발된 사례도 있다.

또한 특허정보는 기술적 문제 해결에도 효과적이다. 반도체장비 부품업체인 포인트엔지니어링은 다른 업종의 특허에서 발견한 기술정보를 이용해 고질적인 웨이퍼불량 발생 문제를 성공적으로 해결한다.

한편 특허정보 분석을 통해 신제품개발 동향, 기업·대학·연구소간 협력 관계 등을 파악할 수 있을 뿐 아니라 기술의 유출이나 이동경로에 대한 진단도 가능하다. 이 밖에도 특정산업내 기술개발 추세, 국가별 기술수준, 경쟁·협력구도와 같이 산업정책을 수립하는 데 필요한 내용도 알아낼 수 있다.

특허정보 활용폭을 넓힐 수 있도록 기반조성 필요

이처럼 기술혁신 과정에서 여러 쓰임새가 있는 특허정보가 보다 다양하고 효과적으로 활용될 수 있도록 기반을 만들 필요가 있다.

우선 따로 놀고 있는 특허분류체계를 표준산업분류 과학기술분류 수출입분류(HSK)와 연동시켜야 한다. 특허정보가 다른 분야 정보와 결합되면 가치가 높아지고 활용폭도 넓어지게 된다. 또한 현재 특허정보시스템(KIPRIS)에 특허정보 분석 틀을 추가해 민간에서 분석서비스가 활성화되도록 지원해야 할 것이다. 소부장 개발 등에 한정해 시행되고 있는 특허기반연구전략(IP-R&D을 국가 R&D사업에 대폭 확대·적용하는 노력도 필요하다.

전세계에서 매년 300만건 넘는 특허신청이 쏟아져 나오면서 특허정보가 쌓여가고 있다. 체계적인 분석과 다양한 활용으로 우리의 기술혁신 수준이 한단계 올라설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