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규제혁파, 다시 추격자 전략으로

2023-07-25 11:43:40 게재
이정민 벤처기업협회 사무총장

추격자 전략(Fast Follower)은 한국이 단시간에 세계 10위권 경제도약에 성공하고 삼성전자 현대자동차 등의 국내 대기업들이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하는데 매우 효과적이었던 전략으로 평가된다.

하지만 지식산업시대로 접어들면서 한국은 이러한 추격자 전략의 대대적 수정을 요구받고 있다. 우리 기업과 국가는 적어도 산업적인 영역에서는 선택과 집중, 지속적 혁신을 통해 퍼스트 무버(First Mover) 전략으로의 변화가 불가피하며, 나아가 장기적 시장 전략 하에 독창적 기술력으로 시장을 지속적으로 선점할 수 있는 초격차 전략으로 도전해야 한다.

법·제도화 늦어 추격자 전략 동력도 상실

그러나 이러한 산업혁신을 뒷받침해야 할 한국의 법·제도는 퍼스트 무버는커녕 추격자 전략의 동력도 사라진 지가 오래다.

최근 벤처업계의 뜨거운 화두 중 하나였던 '복수의결권 제도'가 지난 4월 국회를 통과했다. 시행령 제정 등을 거쳐 11월 시행을 앞두고 있다. 복수의결권은 벤처기업 창업자에게 1주당 복수의결권을 부여해 창업과 기업가정신을 고취하는 제도다.

그러나 문제는 시간이다. 혁신생태계 선도국가의 제도를 따라가기는 했으나 그 시간은 전혀 빠르지 못했다. 벤처기업협회가 창업활성화를 위해 미국 등 도입사례를 벤치마킹해 국내도입을 최초로 요청한 것은 지난 2016년이고 입법화를 위해 본격적으로 국회에서 논의한 것이 2018년이다. 본 제도 도입에 무려 7년이라는 시간이 걸린 것이다.

이 뿐만 아니다. 발달된 정보통신 기술 등을 활용한 비대면 의료의 법적 근거는 지난 2002년 원격의료를 시범적으로 시행한지 21년 만인 올해에야 입법화되었다.

2017년에야 실현된 창업자 연대보증 폐지는 벤처업계가 1999년부터 호소했던 사안이다. 창업의욕을 꺾고 재도전을 원천적으로 저해하는 창업자 연대보증은 지금도 정책금융기관에 한해 금지되어 있다.

이 밖에도 아직 우리나라에서는 논의조차 이루어지지 않는 수많은 제도들이 이미 선진국에서는 혁신산업을 이끌면서 나날이 진화하고 있다.

선진국 시행하고 있는 제도 벤치마킹을

이미 다변화된 한국사회에서 이해당사자들 간의 충분한 숙의가 이루어져야 새로운 제도의 지속가능성이 담보될 수 있다는 원칙에는 전적으로 동감한다. 하지만 그 논의가 반대를 위한 반대에 부딪힌다거나 산업경쟁력 제고를 위한 논의가 해당산업의 발전속도 뒤에서 허우적댄다면 지극히 비생산적인 사회적 비용을 지불할 뿐이다.

이 시점에서 우리나라 혁신생태계의 법과 제도에 대한 추격자 전략을 다시 제안한다. 미국이든 중국이든 국내 혁신생태계의 법·제도 도입의 기준이 되는 국가를 설정하고 그곳에서 허락하는 모든 제도를 하루빨리 벤치마킹해 원칙적으로 시행하자.

새로운 제도는 변화하는 시장의 요구에 응답하거나 또는 시장의 물줄기를 바꾸기 위한 정부의 수단으로 활용된다. 이러한 혁신적 제도들은 이미 선도 국가들에서 치열한 사회적 합의과정을 거쳐 도입되었고 시장의 변화에 따라 수정·보완되고 있다.

과거 새로운 혁신역량이 없던 한국이 채택해 대성공했던 산업전략, 이제는 혁신생태계 정책전략으로 적용시키자. 이것이 규제 갈라파고스 국가로 불리는 우리의 현실적 대안이 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