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의 눈

이상민 장관 탄핵기각에 부쳐

2023-07-26 11:01:15 게재

헌법재판소가 25일 이상민 행정안전부장관에 대한 국회의 탄핵심판 청구를 기각했다. 지난해 10월 29일 이태원 참사가 발생한 지 269일, 국회가 이 장관의 탄핵소추를 의결한 날로부터 167일 만이다. 용산구는 올해 이태원 지구촌축제를 열지 않기로 했다. 참사의 빌미가 된 대규모 인파 밀집행사를 1년 만에 다시 여는 것은 적절치 않다는 판단에서다.

헌재의 판단도 용산구의 결정도 일면 이해가 간다. 하지만 두 결정 모두 참사를 직시하고 적절한 후속대책을 마련하는 일과는 거리가 멀다는 생각 또한 접을 수 없다. 헌재가 탄핵을 기각했다고 행정안전부의 책임이 사라지는 것이 아니며 이태원 지구촌축제를 접었다고 용산구가 할 일이 없어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괴로운 기억을 되살리고 싶지 않았겠지만 이 장관의 직무 복귀 뒤 첫 행선지는 수해현장보다 '이태원 해밀턴 호텔 옆골목'이었어야 했다. 용산구는 이태원에 추모의 공간과 추모의 장을 만드는 일에 앞장서야 했다.

9.11 테러로 2977명 목숨을 잃은 뉴욕은 그 자리에 '9.11 테러 메모리얼 풀스'란 조형물을 설치하고 매년 추념식을 연다. 쌍둥이 빌딩이 있던 장소에 새 건물을 짓는 대신 '그라운드 제로'로 이름 붙이고 모든 희생자들 이름을 새겨 넣었다. 세계에서 가장 땅값이 비싼 뉴욕 한복판을 참사를 기억하기 위해 통째로 '비워 놓은' 것이다.

세월호 참사 2년 뒤 서울 한 구청에서 건강식품 외판원을 만난 일이 있다. 환갑을 조금 넘긴 외판원은 진도에서 횟집을 운영하던 사장님이었다. 참사 후 진도산 해산물은 꺼림칙하다며 손님이 끊겼고 결국 횟집 문을 닫았다.

이태원상권도 마찬가지다. 참사 이후 좀처럼 회복되지 않는다. 이태원 지구촌축제는 참사 전 약 연인원 100만명이 다녀갈 정도로 성황이었다.

용산구는 서울시와 함께 이태원 참사를 추모할 제대로 된 공간을 참사 현장 인근에 마련하는 일에 나서야 한다. 행안부는 불편한 기억을 지우는 일에만 급급할게 아니라 추모공간 조성을 적극 지원해야 한다. 상인들이 이태원에 추모공간을 만드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는 주장도 있다. 하지만 치료되지 않은 상처는 더 큰 후유증을 낳을 수 있다. 이들을 설득하는 일 또한 지자체와 정부의 몫이다.

독일은 아우슈비츠 보존을 통해 인종 청소의 참상을 드러내며 국제 사회의 용서를 구했지만 일본은 그러지 못했다. 뉴욕은 그라운드 제로를 만들었지만 우리는 어떻게든 덜 노출된 곳을 찾느라 시간을 허비하고 있다. 이상민 장관 탄핵 기각이 이태원 참사 추모공간 논의의 새로운 출발점이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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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형 기자 brother@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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