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각자도생 시대 중동정세와 석유시장

2023-08-09 10:54:53 게재
성일광 고려대 중동·이슬람 센터 연구위원

지난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특히 이란의 군사적 위협에 처한 걸프국가들은 우크라이나처럼 될 수 있다는 충격에 휩싸였다. 사우디아라비아와 UAE는 이미 오래전에 자주국방밖에는 해답이 없다는 역사적 교훈을 깨달았다.

2003년 미국의 이라크 침공에 따른 이란의 영향력 확대와 2015년 이란 핵협정 타결, 2019년 이란의 사우디 아람코 정유시설 공격, 2021년 미국의 아프가니스탄 철수 등 일련의 사건 이후 역내 많은 국가는 안보 불안을 체감하고 생존법을 고민할 수밖에 없었다.

변화와 구시대 잔재속 혼돈 겪는 중동

역내 국가는 생존을 위해 새로운 합종연횡을 이어가고 있고 강대국 역시 미국의 빈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치열하게 경쟁중이다. 중동은 현재 변화와 구시대 잔재가 함께 뒤섞인 하이브리드 시대를 경험하고 있다.

반면 데탕트 분위기는 확실하다. 2011년 '아랍의 봄' 이후 편을 지어 대리전을 치러온 중동 국가들이 일제히 데탕트 물결에 합류했다. 시리아와 리비아 내전에서 치열하게 대리전을 펼쳤던 UAE가 튀르키예와 관계 개선에 나섰고 이집트 역시 대사 관계 복원에 합의했다. 바레인은 6년 만에 카타르와 대사 관계를 회복하기로 합의했다. 쿠웨이트와 UAE는 사우디보다 앞선 지난해 이란과 관계정상화에 합의했다.

이란과 사우디의 관계정상화는 역내 데탕트를 확장하는 촉매제 역할을 하고 있다. 이란은 미국의 경제제재를 돌파하기 위해 유럽 국가가 아닌 주변 아랍국가와 손을 잡으려는 것이다. 사우디와의 관계 회복은 다른 순니 아랍국가와 정상화로 가는 열쇠다.

중국이 이란과 사우디 관계 정상화를 중재한 것은 미국이 비운 공백을 채워 역내 영향력을 확대하기 위해서다. 사우디가 중국의 중재를 받아들인 것은 이란의 군사적 위협이 실존하는 안보환경에서 미국을 신뢰하지 못할 바에야 차라리 이란과 대화하는 편이 낫다고 판단한 것이다. 빈살만은 과거 안보를 미국에 의존하고 안정적인 원유를 미국과 국제사회에 공급하는 방식의 관계가 아닌 사우디를 새로운 리더십을 가진 국가로 바꾸려고 한다.

우크라전쟁·이란핵협상이 유가결정 변수

UAE 역시 이미 수년 전부터 중국과 러시아 관계를 중요시하면서 대미 관계 조정이 불가피했다. 2021년 말 UAE는 미국이 중국 화웨이의 5G 통신장비 도입에 반대하자 F-35 전투기 공급계약을 아예 중단시켜버렸다. 미국은 현재 중동 국가의 각자도생 전략의 끈에 꽁꽁 묶인 현대판 걸리버 신세다.

이러한 새로운 변화는 중동을 관통하는 두가지 키워드, 외교 다변화와 산업 다각화로 설명할 수 있다. 외교 다변화는 미국-중국 전략경쟁에서 한쪽으로 치우치기보다는 국익에 도움이 되는 중국과 러시아 모두 손잡고 가겠다는 것이다.

산업 다각화는 석유와 가스 의존경제에서 탈피하기 위해 첨단산업과 미래기술을 도입하겠다는 것이다. 걸프국가들이 일제히 대형국가 프로젝트를 계획한 이유와 맥락을 같이한다. 관건은 대형 프로젝트 사업은 막대한 자금이 필요한 만큼 어떻게 적절한 유가를 유지하는가에 달려있다.

사우디아라비아의 자발적 감산은 유가를 80달러 이상으로 유지하기 위한 것이다. 유가를 결정할 지정학적 변수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전쟁과 이란핵 협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