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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경제학으로 들여다보는 중국경제 성장

2023-08-11 11:14:48 게재
안유화 중국증권행정연구원 원장, 미국 어바인대(UI) 교수

중국은 너무 커서 한개의 성(省), 심지어 한 도시조차 해외 중소국가 규모 크기다. 그리고 중국 지방 관료들의 관할 구역 내 경제권력은 유사한 면적의 다른 국가 정상보다 더 클 수도 있다. 그러면 이렇게 큰 권력이 약탈하거나 방해하지 않고 어떻게 지방경제 발전을 이룰 수 있었을까? 중국경제 발전과 관련해 공무원들의 역할이 어떻게 효율적으로 작동해 왔는지를 들여다보자.

GDP 대표선수 선발 같은 관료승진 제도

'자본주의에도 계획이 있고 사회주의도 시장이 있을 수 있다'는 덩샤오핑의 한마디로 중국은 1992년부터 본격적인 사회주의 시장경제의 길을 걷게 된다. 이후 경제발전이 우선이었던 중국은 각 성의 경제지표 성과순위로 관료를 발탁했는데, 주로 GDP 성장률과 재정수입 증가율 등을 관료승진의 핵심지표로 사용했다.

이에 31명의 각 성 당서기들은 해당 지역의 경제를 발전시키기 위해 기업 CEO처럼 의사결정을 하기 시작했다. 시장경제에서 관리들이 더 나은 평가 성과를 얻고 경제건설 중심의 '승진 챔피언 대회'에서 유리한 조건을 얻으려면 GDP 성장률, 재정수입 등에 관심을 가져야 하며 이는 관할구역내 기업의 경제적 이익에 달려 있었다. 한편 기업의 경제적 이익은 국내 및 국제시장의 경쟁 결과와 관련이 있었다. 이 때문에 지방관료 간의 공식 승진경쟁은 각자 관할 구역 내 기업 간의 시장경쟁과 더 넓은 범위의 국제시장 경쟁과 밀접하게 연결되게 되었다. 시장이라는 변수의 도입으로 관리들의 '승진 챔피언 대회'는 더 이상 상급자나 상사가 인정하는 충성심 표명 운동이 아니라 시장경쟁의 검증이 필요하게 된 것이다.

중국은 중앙정부 차원에서 개혁개방을 몇십년간 이어가면서 세계시장에 깊숙이 통합되어 왔다. 중국 국내에서는 무선인터넷 통신과 고속철도 등과 같은 대규모 지역 간 인프라 건설을 적극적으로 추진함으로써 전국 각 지역 간의 교류와 융합이 활성화됐고 이는 중국을 점차적으로 하나의 큰 단일 개방시장으로 통합되게 하였다.

이로 인해 지방관료들은 지방 기업이 참여하는 시장경쟁 환경을 조작할 수 없게 됐고 외부 시장경쟁 환경의 수용자가 될 수밖에 없었다. 그들은 간접적으로 시장이라고 하는 '보이지 않는 손'의 통제를 받게 되었으며 시장은 그들의 의사결정에 대해 경제성과 결과로 판결을 내리는 역할을 했다.

만약 그들의 정책이 현지 경제발전을 촉진하지 못하고 양호한 비즈니스 환경을 제공하지 못한다면, 전국이라는 통일적인 개방시장에서 자본은 다른 곳으로 유출될 것이고, 인재도 그 지역을 떠나 자신의 장점을 더 잘 발휘할 수 있는 곳으로 갈 것이다. 물질자본과 인력자본의 지역, 국경 간 자유로운 이동은 지방관료들에게 최선을 다해 기업과 인재를 대우하도록 만들었다. 그렇지 않으면 관할 지역에서의 인재유출, 투자철수의 위험에 직면하게 되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지방 관료의 공식적인 이해관계와 지역 경제발전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졌고, 중국 지방경제 발전은 국내 통일된 시장이나 전세계적인 광범위한 시장경쟁 결과에 의존하게 된 것이다. 시장이 생산을 조절하는 중요한 요소가 된 이후 지방관료들이 경제를 발전시키는 '승진 챔피언 대회'는 시장경쟁에 깊이 들어오게 됐다.

이는 지방 관료의 경제정책 효과가 결국 시장경쟁에서 구현되고 시장경쟁의 객관적이고 공개적인 검증을 받게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일부 학자들은 이를 중국 경제성장의 '정부+시장 혼합모델'로 보고 있으며, 이는 중국만의 독특한 경제발전 특징이라고 말할 수 있다.

관료들도 기업 CEO처럼 인센티브 챙겨

비슷하게 강력한 정부와 글로벌 시장 진출을 통해 급성장한 경제가 있는데 바로 박정희 시대 한국이다. 한국의 지리면적은 중국의 한개 성과 비슷하다. 그러나 지적하고 싶은 것은 보통 권력의 힘이 크게 작용하는 경제체제에서 경제발전을 이룬 사례는 극히 드물었다는 사실이다. 리콴유의 싱가포르와 박정희의 한국은 소수 사례에 속하며, 모두 유교 문화권에서만 나타났다는 점에 유의해야 한다. 아르헨티나 군사정부나 아프리카 국가들의 경우 독재정치가 자국 경제발전의 걸림돌이 되었고 부패가 만연해 자국 자산을 기득권자들이 삼켜버리는 현상이 나타났다.

따라서 중국의 이런 '관료 승진 챔피언' 체제 아래에서 지방관료들의 권력이 막강한데, 시장경제는 단지 경제제도의 문제로만 볼 수 있느냐는 질문을 해야 한다. 물론 중국이 비약적으로 발전한 이후 많은 경제학자가 경제모형을 통해 '중국식 경제발전 모델'의 존재에 대해 증명하고 설득하려고 노력해왔다. 지금까지는 시장경제가 중국 관료를 간접적으로 모니터링하고 통제하는 거버넌스 역할을 했다는 것은 증명됐다. 이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기업 CEO가 경영성과로 시장에서 평가되는 것과 같다. 기업의 경영성과가 좋으면 해당 기업의 주가는 상승할 것이고 CEO는 그것에 대한 보상을 받는다. 주로 스톡옵션이라고 하는 인센티브 제도를 통해서.

중국식 '관료+시장 모델', 즉 시장이 관료의 승진을 촉진하는 모델에서 시장은 중국 관료들에게 '스톡옵션'을 행사할 수 있는 기회를 부여했다.

지방관료들은 자신들의 권력을 '자본'처럼 여겨 시장에서 주식옵션처럼 행사하며 거대한 부를 챙길 수 있었고, 경제발전을 우선시했던 중앙정부도 이에 대해 암묵적으로 용인해왔다. 이로 인해 지방의 관료들은 자기가 맡은 자리에서 기업의 CEO와 같은 역할을 했다.

각 성 관료들은 기업의 투자를 적극적으로 유치했을 뿐만 아니라 관련 경제성과의 일부분도 보상으로 챙길 때가 많았다. 이는 마치 기업에서 경영성과가 좋을 경우 CEO가 일정 주식옵션을 성과금으로 받는 것과 같은 효과를 가져왔는데, 이런 암묵적인 인센티브 정책 환경에서 중국경제는 고속으로 성장했다.

중국 GDP는 1980년의 7289억위안에서 2010년의 39조7983억위안으로 거의 55배 성장했다. 당시 환율로 2010년 중국의 GDP 규모는 5조7500억달러로 일본의 5조3900억달러를 초과하며 세계 G2 국가가 된다.

시진핑정권 등장 후 관료 몸사리기

그러나 이런 환경이 변화한 것은 2012년 시진핑정부 출범 이후다. 갓 임기를 시작한 시 주석은 반부패를 자신의 정치 1호 공약으로 추진했으며, 이는 지방관료들의 부패행위에 대해 종신 책임을 묻는다는 정책으로 이어졌다. 이에 각 당서기와 성장 및 부처별 장관 등 관료들은 위압감으로 인해 경제성장에 대한 욕심을 부리기보다 일을 최소화하는 쪽으로 방향을 잡기 시작했다.

또한 중국관료에 대한 평가도 과거 GDP 대표선수를 뽑는 것에서 환경보호 등 다른 요인들을 모두 고려해 관료성과 평가를 진행했다. 그 결과 중국 전역에 걸쳐 대부분의 관료들이 일을 추진하다가 생기는 위험을 감수하기보다 일을 최소화하는 안전한 방향으로 자신의 선택을 최적화했다. 또한 지방경제가 발전했다고 해서 과거처럼 일정부분을 자신의 특전으로 챙길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기에 일을 하고자 하는 동력도 크지 않았다.

그 결과 중국경제는 2013년부터 급격하게 동력이 떨어지기 시작했고, 설상가상으로 정부가 부동산 경제를 돌려세우기 위해 무분별한 금융행위를 제재하기 위한 신용축소 정책까지 함께 펼치면서 급기야 2013년 6월 30일엔 금리가 13.5%가 치솟는 위기가 발생한다. 이로 인해 정부와 여러 갈래로 얽히고설킨 대량의 민영기업이 도산하기 시작했고, 이는 사실상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안유화 중국증권행정연구원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