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시론

다시 불거진 미 은행 건전성 위기

2023-08-11 14:04:18 게재

미국 은행의 건전성 우려가 다시 고개를 들고 있다. 올해 초 실리콘밸리은행(SVB) 파산 이후 미 연준(Fed)의 유동성 지원과 정부 대책으로 위기가 잠시 수면 아래로 내려갔지만, 여전히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특히 국제신용평가사 피치의 미국 신용등급 강등과 더불어 무디스의 은행산업 전반에 대한 부정적 평가의 강펀치가 이어지면서 미국은 물론 우리나라 주식과 채권시장은 하락을 거듭하고 있다.

무디스는 커머스 뱅크셰어스, BOK파이낸셜, M&T뱅크, 올드 내셔널 뱅코프 등 10개 지역 중소은행의 신용등급을 한 단계씩 내렸다. 무디스는 SVB 사태 직후인 4월 21일(현지시간) US뱅코프, 자이언스 뱅코프, 뱅크 오브 하와이 등 11개 지역은행의 신용등급을 내리면서 추가 강등을 예고한 바 있다.

SVB 사태 불씨 안 꺼진 채 상업용 부동산 부실 커져

US뱅코프, BNY멜론은행, 스테이트 스트리트, 트루이스트 파이낸셜, 노던 트러스트 등 6개 대형은행의 '강등 검토(review under rating)'는 시장에 더 큰 충격을 주고 있다. US뱅코프는 10일 기준 시가총액이 약 80조원으로 우리나라 KB금융그룹 20조원의 4배 크기이고, 글로벌 금융그룹 순위 8위에 있는 대형은행이다. PNC파이낸셜 서비스, 캐피털 원 파이낸셜, 시티즌스 파이낸셜, 피프스 서드 뱅코프, 리전스 파이낸셜, 앨리 파이낸셜, 뱅크 OZK, 헌팅턴 뱅크셰어스 등 11개 은행에 대해서는 '부정적인 전망(negative outlooks)'을 내놨다. 이들의 시총은 피프스 서드 뱅코프 90조원, PNC 파이낸셜 66조원, 캐피털 원 파이낸셜 56조원 규모다.

무디스가 이들 은행에 부정적 평가를 내놓은 것은 Fed의 통화 긴축정책이 은행의 자산가치를 떨어뜨리고 있어서다. 실제 미국 중소형 은행은 겉으론 양호해 보여도 속은 상당히 곪아 있다. 연준이 짧은 기간에 급격하게 525bp의 기준금리를 올린 탓에 은행이 보유한 국채가격이 급락했다. 여기에 피치의 신용등급 강등과 미 재무부의 국채발행 확대 계획, 일본은행(BOJ)의 수익률곡선제어(YCC) 정책 변화가 더해지면서 10년 이상 미국 장기 국채금리가 빠르게 상승하는 이른바 '베어 스티프닝(Bear steepening)'이 나타나고 있다. SVB 사태를 부른 원인인 만기보유채권(HTM)의 미실현손실(unrealized loss) 문제가 다시 불거진 셈이다. 이번에 등급이 강등되거나 부정적 관찰 대상이 된 은행들은 유동성과 자본에 영향을 미치는 금리 및 자산부채관리 리스크에 직면했다. 이들 은행이 유동성을 확보하기 위해 급히 채권을 팔 경우 손실이 실현되면서 SVB처럼 갑작스레 위기에 빠질 가능성이 있다.

인플레이션으로 예금 규모가 줄고 있는 것도 부담이다. 미국 은행들은 예금유출에 따른 자본확충을 위해 앞다퉈 예금금리를 올렸다. 대출로 받은 이자에 예금으로 내준 이자를 뺀 순이자마진이 줄면서 은행의 수익성도 악화하고 있다. 이번 등급강등의 가장 결정적 이유 중 하나는 상업용 부동산(CRE) 대출의 부실화 우려다. 고금리와 재택근무에 따른 사무실 수요가 감소하고 있어서다. Fed에 따르면 전체 상업용 부동산 잔액의 절반을 미국 중소형 은행이 보유하고 있다. 상업용 부동산 문제는 언제든지 터질 수 있는 '폭탄'이다. 주거용 모기지와 달리 상업용은 변동금리 비중이 높다.

내년까지 약 1조4000억달러 상당의 상업용 모기지 만기가 도래하는데 저금리에서 고금리로 리파이낸싱(차환)이 이뤄질 경우 상당한 타격을 입을 가능성이 크다. 모건 스탠리 등의 리서치 자료에 따르면 내년 말까지 모든 종류의 미국 상업용 부동산 가격이 고점 대비 27.4% 하락할 것으로 전망됐다.

상장사의 40%가 한계기업, 더 늦기 전에 대책 마련을

물론 미 연준이 JP모건체이스, 뱅크오브아메리카 등 금융시스템상 중요은행 및 대규모 자산을 보유한 은행을 대상으로 진행한 스트레스테스트 결과 23개 은행이 모두 통과하는 등 충격에 견디는 손실 흡수능력은 갖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중소형 은행들이 하나둘 무너지기 시작하면 '대마불사' 은행의 흡수 능력에도 한계가 있다.

눈길을 국내로 돌려보자. IMF외환위기로 '조상제한서' 로 불리는 시중은행 대부분이 무너진 경험이 있다. 국내 부동산 경기침체와 저축은행이나 증권사 등을 중심으로 한 부동산프로젝트 파이낸싱(PF) 대출의 부실 우려에 코스피 코스닥 상장사 1278개사 중 40.5%가 한계기업으로 분류되고 있다. 가계와 기업 등 민간부채는 5000조원에 이른다.<8월 9일자 내일시론 참조> 더 늦기 전에 대책을 마련해야 할 때다.

안찬수 오피니언 실장
안찬수 기자 기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