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누구를 위한 마약과의 전쟁인가

2023-08-16 10:56:55 게재
이효원 한성대학교 크리에이티브 인문학부 겸임교수

강남 대치동 일대 학원가에 마약 음료가 돌아다녀 큰 충격을 주었다. 이 사건의 중간책 2명은 곧바로 체포됐지만, 서울 한복판에서 그것도 고등학생을 대상으로 한 대담한 범죄 행각에 많은 사람들이 가슴을 쓸어 내렸다. 한국은 더 이상 마약 청정국이 아닌 것일까?

'마약과의 전쟁'도 정쟁거리로 비화

한동훈 법무부장관은 취임 초기부터 지금까지 마약에 진심이다. 마약사범 처벌을 비난할 사람은 없다. 문제는 한 장관이 마약을 정치적 논쟁거리, 혹은 자신의 영웅화를 위한 수단으로 활용한다는 점에 있다.

마약범죄가 증가하는 원인이 문재인정부 탓, 민주당 탓을 하거나 검찰의 손발을 잘랐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그리고 검거와 단속, 처벌 등 사법적인 대책 강화만 언급하면서 '악'소리가 나게 강하게 처벌한다고 한다.

만약 한 장관이 정치색은 빼고 마약사범을 단순히 처벌하는 데 그치지 않고 예방과 치료까지 총력을 기울인다면 박수를 받을 것이다.

하지만 마약범죄는 부자들에게 예외다. 압구정 롤스로이스 사건이 대표적이다. 가해자 신씨는 케타민이라는 마약이 검출되고 20대 여성을 치어 중상을 입혔지만, 대형 로펌 변호사가 등장하자 17시간 만에 유치장에서 풀려났다. 이후 국민 정서에 반한 이 사건은 다시 도마 위에 올랐고, 과거 마약 전력까지 드러나면서 결국 구속되었다.

연예인의 마약 사건은 정치권의 불리한 이슈를 덮는 가림막으로 사용되고, 재벌들의 마약 사건은 감추기 일쑤였다. 과연 누구를 위한 마약과의 전쟁인 것일까?

마약과의 전쟁(War on Drugs)의 원조는 미국이다. 마약과의 전쟁은 베트남 전쟁 시기에 리처드 닉슨 대통령이 처음 선포했고, 이후 공화당이든 민주당이든 마약과의 전쟁은 꾸준히 유지하고 있다. 하지만 큰 소득은 없었다. 오히려 마약 시장은 성장했고 전과자만 늘어났다.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에 의하면 2020년 5월부터 2021년 4월까지 1년 동안 마약중독 사망자 수가 처음으로 10만명을 넘었다고 한다. 총기 사고로 사망한 사람 수가 1년에 약 4만명인 것에 비해 2.5배나 많은 수치다.

미국 마약 중독 현황의 심각성은 필라델피아 북동부 켄싱턴 거리에서 극단적으로 드러난다. 마치 좀비거리를 연상케 하는 켄싱턴 거리는 펜타닐이라는 신종 마약에 완전히 점령당했다. 펜타닐은 2021년 기준 7만9000여명의 사망자를 내고 18~45세 미국인 사망원인 1위로 꼽힐 정도다.

주된 마약공급망 의심받는 주한미군

얼마 전 주한미군과 관련된 충격적인 마약 사건이 터졌다. 경찰은 평택에 캠프 험프리스에 근무하는 주한미군 남자친구를 통해 합성대마를 유통한 혐의로 20대 한국여성을 구속했다. 범행에 가담한 미군은 이미 전출됐지만 이와 관련돼 조사받은 주한미군은 20여명이 넘는 것으로 알려졌다.

2000년에는 주한미군 공군 소속 C 대위가 100억원에 이르는 코카인을 들이려다가, 2012년에는 전·현직 주한미군 병사가 국제우편을 통해 최대 7000명이 동시에 투약할 수 있는 분량의 합성대마를 들이려다 적발된 적이 있다.

주한미군의 마약사건은 수없이 많다. 하지만 윤석열정권은 마약의 주된 공급망으로 의심받는 주한미군은 건드리지 못하고, 평택과 이태원 일대만 수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