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촌

유엔의 실종

2023-09-01 11:36:40 게재
조 현 서울대 객원교수, 전 유엔대사

매년 9월에는 유엔총회의 새로운 회기가 시작된다. 유엔 총회장은 각국 대표들의 기조연설로 말의 성찬장이 된다. 뉴욕 시내는 정상들의 의전과 경호차량으로 북적일 것이다. 하지만 정작 유엔의 손길을 애타게 기다리는 세계 곳곳의 전쟁터에는 유엔이 보이지 않는다.

우크라이나전쟁은 2년째 지속되고 있고, 이로 인한 개도국들의 식량위기도 불가피해 보인다. 아프리카에서는 지난 3년간 일곱번씩이나 쿠데타가 났다. 북한은 이제 유엔의 제재는 아랑곳하지 않고 미사일을 쏘아댄다. 세계 도처를 휩쓰는 폭염과 홍수는 지구온난화에 대한 유엔의 적극적인 대응을 갈망한다. 이래서 유엔은 무기력을 넘어 유명무실하게 느껴진다.

사실 유엔은 태생 직후부터 기대만큼 작동하지 못했다. 미소냉전 속에서 1960년대에는 아프리카 신생독립국의 탄생을 돕는 데에 만족해야 했다. 신탁통치이사회가 중요했던 시절이다. 이어서 이들 개도국들에 대한 경제개발 지원이 큰 역할로 떠올랐다.

냉전이 끝나고 유엔은 드디어 세계정부 역할을 할 것처럼 보인 적이 있었다. 21세기에 들어서면서 유엔이 개최한 새천년 정상회의는 인류의 희망을 상징하는 듯했다. 그것도 잠시, 불과 20여년이 지나지 않아서 유엔은 기능마비 상태에 빠져버리고 말았다.

리더십 실종 크고 작은 무력분쟁 불러

작년 2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유엔의 한계를 극적으로 드러냈다. 안보리에서 거부권을 가진 러시아가 유엔을 진영간 싸움터로 만들었다. 그러나 더 깊은 원인은 미중갈등이다. 지난 30년간 중국은 꾸준히 경제 기술 군사력의 발전을 이루었다. 한편 시진핑 체제의 강화는 중국의 경제가 발전하면 민주주의 체제로 전환될 것이라는 믿음이 소망에 불과하다는 것을 깨닫게 해주었다.

트럼프행정부는 '미국 우선주의'를 기치로 중국을 압박하고 나섰다. 암담하던 코로나 상황에서 '우한 바이러스'라는 낙인은 미국내 반중국 정서를 컨센서스로 만들어내기에 충분했다. 이때 중국이 오히려 유엔의 강화를 주장하고 나섰지만 희극적인 역설로 치부되었을 뿐이다. 이어서 바이든행정부는 유엔을 중시한다고 천명했지만 대중국 압박정책은 그대로 계승했다. 그 방법이 동맹과 유엔을 활용한다는 점에서 다를 뿐이다. 경제안보의 강화는 마침내 브릭스(BRICS)의 확대를 가져왔다.

이제 유엔의 정상화는 더욱 요원해지고 있다. 이렇게 유엔의 리더십이 실종된 상황에서 세계 도처에서는 크고 작은 무력분쟁이 계속되고 있다. 쿠데타와 정치적 암살 역시 빈번해졌다. 민주주의 국가도 예외가 아니다. 유럽에서는 이민유입에 대한 반작용으로 극우 정당이 기반을 굳혀가고 있다. 세계는 미국의 다음 대통령선거를 우려의 눈으로 주시한다. 가히 세계적인 민주주의 후퇴 현상이라고 볼 수 있다. 앞으로 몇년 간은 혼돈의 시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필자는 지난해 6월 뉴욕의 유엔대사 이임만찬에서 유엔의 장래를 걱정하면서 "이 지구가 하나의 비행기라면 지금 필시 '안전벨트를 메라(Fasten your seatbelt)'는 기내방송이 나올 것"이라고 조크를 했다.

한국은 유엔 체제의 수혜국이다. 대한민국의 탄생은 물론 한국전쟁의 승리와 경제발전도 유엔의 국제질서에서 가능했다. 그러나 그 국제질서가 흔들리고 있다. 만약 진영간의 갈등이 전쟁으로 이어진다면 지금의 어려움은 약과에 불과할 것이다. 전쟁은 오판과 부추김으로 일어난다. 김정은의 오판 가능성은 상시적 변수다. 더군다나 한미일의 안보협력은 억제력을 높이겠지만 동시에 긴장의 상승작용을 일으킬 수도 있다. 미중갈등을 전쟁으로 점화시킬 곳은 대만뿐이 아니다.



동북아 3국 대화 공간 만들어 오판 막아야

이제 동북아에서 대화의 공간을 만들어 오판이나 긴장의 상승작용을 막아야 한다. 미국과의 긴밀한 협조 속에서 추진되면 가능한 일이다. 한미동맹이 억제력을 과시하는데 그쳐서는 안된다. 마침 한국은 내년부터 2년간 안보리 비상임이사국으로 활동하게 된다. 상임이사국인 중국, 올해부터 활동해온 일본과 함께 동북아의 3국이 안보리에서 만나게 된다. 여기서 한반도의 긴장을 완화시킬 실마리가 나오기를 고대한다.

기능이 정지된 안보리에서 어떻게 동북아의 대화 채널을 만드는가? 강화된 한미동맹이 있는데 웬 전쟁 타령인가? 모두 타당한 지적이다. 그러나 최선을 바라되, 최악을 대비하는 것(hoping for the best, preparing for the worst)이 외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