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의 눈

골키퍼 역할만 하는 통상교섭본부

2023-09-14 11:12:05 게재

미국과 중국의 전략경쟁이 심화되고, 보호무역주의 확산으로 글로벌 공급망이 재편되면서 통상질서가 요동치고 있다. 어느 때보다 통상외교가 중요한 시점이다.

그러나 경제안보비서관, 외교부 경제안보대사, 통상교섭본부장 등 통상외교와 경제안보를 담당하는 핵심 당국자들이 학계출신으로 채워지다 보니 산업정책과 협상경험 부족으로 통상전쟁에 수세적으로 몰리는 듯하다.

최근에는 통상외교 관례상 선뜻 이해하기 어려운 일도 일어났다. 지난달 18일(현지시간) 캠프데이비드에서 열린 한미일 정상회의에 산업부장관과 통상교섭본부장이 빠진 것이다. 당시 미국은 지나 러몬도 미 상무부장관과 토니 블링컨 국무부장관이 배석했다. 미 상무부 파트너인 우리 산업부장관은 빠졌고 외교부 출신인 조태용 국가안보실장과 박 진 외교부장관이 윤석열 대통령 옆자리에 앉았다.

안덕근 통상교섭본부장이 경제안보 현안에 수동적이고 수세적인 골키퍼 역할만 하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안 본부장은 지난해 미국 '인플레이션감축법'(IRA)에 따른 국내 전기차 보조금 차별문제가 나오자 세계무역기구(WTO) 제소 가능성을 언급해 실효성 논란을 일으켰다. WTO 제소시 결과가 나오기까지 대략 2~3년 걸리는데다 WTO 대법원격인 상소기구는 현재 기능이 정지된 상태이기 때문이다. 현대자동차 등이 2025년까지 미국에 전기차 공장을 짓기로 한 상황에서 제소가 현실적 대안이 될 수 없다는 점도 고려되지 않았다.

WTO 인턴 출신이자 국제법 전공인 안 본부장은 WTO에 대한 애정이 깊은 것으로 보인다. 통상본부는 (사)한국국제경제법학회에 1억8000만원의 예산을 집행해 지난달 31일 WTO 분쟁해결제도 개혁을 위한 국제 심포지엄도 열었다.

안 본부장이 취임 후 추진해온 무역투자촉진프레임워크(TIPF)는 관세양허부분이 제외된데다 구속력도 없다는 한계를 갖고 있다. 국가간 주요 품목에 대한 관세철폐를 놓고 최대 10년 이상 소요되는 자유무역협정(FTA) 대신 TIPF를 통해 실적을 내려는 '체결건수 올리기용'이라는 의미다.

이뿐만이 아니다. 2006년부터 우리나라와 멕시코는 FTA체결을 시작했지만 17년째 타결되지 않고 있다. 멕시코정부는 무역협정을 체결하지 않은 국가에서 수입하는 392개 수입품목에 대해 한시적으로 5∼25%의 임시관세를 부과하키로 했다. 한미일 중 우리나라만 멕시코정부와 무역협정(TA)이 체결되지 않아 국내 철강업체의 타격이 우려된다. 아직 우리정부의 대응은 체감되지 않는다.

경제안보 조직과 통상교섭본부의 리뉴얼 (renewal)이 필요한 시점이다.

이재호 기자 jhlee@naeil.com
이재호 기자 기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