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의 눈

'할말 못하는' 중소기업계

2023-10-12 11:09:51 게재
"요즘 중소기업계가 이상하다." 최근에 만난 중소기업인들의 이야기다. 이들의 주장을 종합하면 중소기업단체들이 '할말을 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연구개발(R&D) 예산 삭감에 대한 침묵이 대표적이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국회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당초 내년 주요 R&D 예산을 올해 24조9392억원보다 2% 늘어난 25조4351억원 규모로 검토했다. 하지만 윤석열 대통령의 '카르텔' 발언 이후 전면 재검토에 들어갔다. 결과는 1991년 이후 33년만의 R&D 예산 삭감이었다.

중소벤처기업 R&D지원 예산도 마찬가지다. 내년 R&D지원 예산은 1조3208억원으로 올해 1조7701억원보다 25.4% 삭감됐다. 중소기업기술정보진흥원 예산은 23.8%(4064억원) 감소했다. 올해 102억원이던 중소벤처기업진흥공단 예산은 아예 없어졌다. 지역경제 활성화를 위한 지역 중소·벤처기업 R&D지원 예산도 올해 1189억원에서 내년 449억원으로 절반 이상 잘렸다.

중소기업 R&D는 대부분 협약형 계속사업이다. 삭감된 25.4%의 정부 몫까지 과제책임자인 중소기업이 부담해 과제를 수행해야 할 처지다.

과학연구계는 크게 반발했다. 중소벤처기업 현장도 분개하고 있다. R&D 예산의 비효율성을 바로잡는 건 당연하지만 그렇다고 축소하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는 것이다. 빈대 잡자고 초가삼간 태우는 격이라는 비판이 쏟아진다. 하지만 중소기업계는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다. 중소기업계를 대표하는 단체들과 단체장들은 'R&D 카르텔'에 대해 말이 없다.

'대체공휴일'에 대한 대처에는 원칙이 없다. 정부는 10월 2일을 대체공휴일로 지정했다. 소비진작을 통한 내수활성화가 지정 이유다. 중소기업계는 조용했다.

2년 전에는 달랐다. 2021년 문재인정부가 3·1절 광복절 개천절 한글날 등 국경일을 대체공휴일로 추가하려 하자 반발했다. 그해 6월 중소기업중앙회는 "공휴일이 확대되면 소상공인의 부담이 가중되고 대체휴일 확대에 따른 생산차질과 인건비 증가가 불가피해질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앞서 2011년에는 '중소기업 63.9%가 대체공휴일제 도입에 반대한다'는 설문조사까지 내놓았다.

최근 중소기업단체들의 태도는 그동안 모습과는 분명 다르다. 이를 두고 중소기업 현장에서는 "중소기업단체장들이 중소벤처기업 경쟁력 확보보다 자신의 정치이념과 이해기반에 치우쳐 있다"는 얘기까지 나온다.

국내외 경영환경이 악화되고 있다. 중소벤처기업에게 닥친 '고난의 시간'이 더 연장되는 상황이다. '할말은 하라.' 중소기업 현장의 목소리다.
김형수 기자 hskim@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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