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의 눈

지방자치단체장 '자리'의 무게

2023-10-18 11:05:03 게재
총선을 방불케 했던 기초단체장 선거가 끝났다. 평소에는 크게 관심을 끌지 않던 서울의 한 자치구에 전국의 이목이 쏠렸다. 각 정당은 전국 선거인 듯 화력을 집중했고 결과를 두고는 각종 정치적인 해석을 앞다퉈 내놓고 있다. 벌써 내년 총선과 그 이후를 점치는 '예언'들이 난무한다.

'그만큼 의미 있는 선거였나' 싶다가도 한가지 의문이 든다. '왜 누구도 사과하지 않을까.' 보궐선거를 치르는 데 투입한 예산 40억원과 짧지 않은 행정 공백, 그로 인한 주민과 지역의 피해가 분명한데도 사과는 없었다. 여당은 지난해 지방선거 당시부터 충분히 결과를 예견할 수 있었음에도 공천을 감행했고 보선에서는 원인제공자를 다시 후보로 내세웠다. 심지어 당사자는 40억원에 대해 '애교로 봐달라'는 희대의 어록을 남기기도 했다.

하긴 민선 8기 이후 흐름을 보면 '고작' 보궐선거에 사과를 기대하는 건 지나친 바람인 듯도 하다. 서울 도심 한복판에서 159명에 달하는 꽃다운 목숨이 스러진 이태원참사가 대표적이다. 벌써 1년이 다 돼가지만 중앙정부에서건 지자체에서건 진정어린 사과는 나오지 않는다. 책임회피를 일삼다가 엇비슷한 다중인파 밀집사고 대책만 내놓을 뿐 얼렁뚱땅 넘어가려는 모양새다. 유가족과 국민들 마음을 어루만지는 행정은 아직도 보이지 않는다.

그뿐이랴. 지난 여름 발생한 오송 지하차도 참사도 비슷하다. 국민들이 보기에는 명명백백한 상황인데도 관련 기관은 스스로를 가리기에만 분주한 모양새다. 국정감사장에서 허위자료 제출 의혹이 집중 거론될 정도다.

정자교 붕괴 사고는 또 어떤가. '중대시민재해 1호 피의자 입건'이 가장 충격적인 소식으로 남을 정도다. 최근 국민적 불안감을 증폭시키고 있는 이른바 '묻지마 범죄', 교권침해 논란이 불거진 잇단 교사 사망사고도 '행정 책임자'를 찾기 어렵다.

분명 책임져야 할 자리에 앉은 이는 있다. 유권자가 한시적으로 권한을 쥐어준 선출직, 그 선출직에 의해 임명된 정무직과 승진 임용된 고위공직자 등이다. 법이 정한 의무를 제대로 이행하지 못했다면 그 경중에 따라 '직'을 내려놓기까지 하면서 책임을 통감해야 하는 게 마땅하다. 하지만 가장 기본이 되는 진심어린 사과조차 없다. 주민(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는 일에 이 정도 자세이니 나머지는 물어 뭐하나 자조해야 할 판이다.

주민이 직접 선택한 단체장은 달랐으면 좋겠다. 그저 개인적인 영광을 누리라고, 일생 꿈꿔왔던 소원을 성취하라고 주어진 자리가 아니라는 사실을 모르고 선택을 받았다면 지금이라도 깨쳤으면 한다. 직이 갖는 무게에 대해 고민하고 만약의 경우에는 책임질 수 있는 자세로 남은 임기를 뛰었으면 한다.
김진명 기자 jmkim@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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