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의 눈

'임금도둑' 언제까지 방관만 할 건가

2023-10-25 14:55:37 게재
"아버지가 회사에 바랐던 것은 그냥 법을 지켜달라는 것입니다." 추석을 앞둔 지난달 26일 사측의 부당해고와 임금체불에 항의하며 회사 앞에서 분신한 뒤 사망한 택시기사 방 모(55)씨 딸의 호소다. 택시기사는 227일째 1인 시위 중이었다.

12일에는 50대 건설노동자가 현장에서 체불임금 문제로 다투다 하도급업체 작업팀장격인 '십장' 동료를 흉기로 살해한 뒤 자살했다. 이 모두 노사 법치주의를 강조해온 윤석열정부에 대한 하소연인 셈이다.

임금은 노동력의 대가다. 노동자들은 이 임금으로 자신과 가족의 경제활동을 영위한다. 만약 제때 임금을 못 받거나 떼인다면 가정이 파탄 나거나 본인의 삶이 어그러진다.

정부는 경제적 제재와 강제수사 등으로 체불임금을 엄단하겠다고 했지만 줄어들 조짐을 보이지 않는다. 법무부는 지난해 10월 '근로자 임금체불 피해회복을 위한 검찰업무 개선방안'을 마련했다. 그 결과 임금체불로 기소된 사람은 8월 기준 지난해 892명에서 1653명으로 1.9배 증가했다. 구속인원도 3명에서 8명으로 늘었다.

고용노동부도 5월 상습체불 사업주에 대한 신용·경제적 제재를 강화하는 내용을 담은 '상습체불 근절대책'을 발표했다. 추석을 앞두곤 '체불청산 기동반'까지 운영했다. 또한 고용부는 매년 악성·상습 체불사업주 명단을 공개하고 있다. 2013년 9월 이후 올 7월까지 3035명이나 되고 5184명이 신용제재를 받았다.

'백약이 무효'일까. 임금체불은 올해 들어 크게 늘고 있다. 고용부에 따르면 8월 기준 체불임금은 1조1411억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29.7% 늘어났다. 올해 피해 신고자만 18만명에 이른다. 신고하지 못한 피해자까지 포함하면 피해액은 훨씬 많을 것이다. 특히 임금체불 피해자의 대부분은 중소기업 비정규직 등 취약계층이다.

정부도 심각성을 알고 있는 것 같다. 추석을 앞둔 지난달 25일 이정식 고용노동부장관과 한동훈 법무부장관은 '임금체불 근절을 위한 대국민 담화문'을 통해 "임금체불은 노동의 가치를 본질적으로 훼손하는 반사회적 범죄"라고 규정했다.

하지만 노동·시민사회단체는 이를 매번 명절이면 벌이는 ‘연례행사’쯤으로 평가한다. 해마다 임금체불 엄단을 강조하지만 '반의사불벌죄 폐지' 같은 근본적인 해결책이 없는 엄포만 늘어놓고 있다는 지적이다. 그동안 체불사업주들은 반의사불벌죄 조항을 악용해 체불임금의 일부 지급을 조건으로 버티면서 처벌을 피해왔다.

이참에 노동·시민사회단체에서 오랫동안 요구해온 △임금체불에 대한 반의사불벌죄 실질적인 폐지 △상습 임금체불에 대한 징벌적 손해배상 도입 △임금채권의 소멸시효 연장 등을 담은 근로기준법 개정에 대해 노사정이 논의하면 어떨까.
한남진 기자 njhan@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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