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스라엘 "휴전 절대 못해"

2023-10-31 10:49:23 게재

유엔 결의 등 국제사회 여론 무시 … 인도주의 재앙으로 치닫는 가자지구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와 전쟁 중인 이스라엘이 국제사회의 휴전요구에 응하지 않고 가자지구 전쟁을 지속할 것임을 거듭 확인했다. 미국 백악관 역시 지금 휴전을 하는 것은 올바른 답이 아니라며 이스라엘을 거들었다. 지난 27일(현지시간) 열린 긴급총회에서 유엔 회원국들은 즉각적인 휴전을 촉구하는 결의안을 통과시킨 바 있다. 120개국이 결의안에 찬성했고, 미국과 이스라엘 등 14개국만 반대해 국제사회 여론이 어디에 있는지를 극명하게 보여줬다. 이 문제를 다룰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도 긴급히 다시 소집됐다.
29일 팔레스타인 가자지구 남부 칸 유니스에서 이스라엘의 공습으로 사망한 알아카드 가문의 어린 소년의 아버지가 아이의 시신을 안고 오열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과 미국은 요지부동이다.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는 30일 전시내각 회의를 주재한 뒤 "가자지구에서의 휴전은 없을 것"이라며 "이스라엘은 10월 7일 끔찍한 공격을 당해놓고서 하마스에 대한 적대행위 중단에 동의할 수 없다"고 밝혔다. 또 "휴전 요구는 이스라엘이 하마스에, 테러에, 야만에 항복하라는 것"이라며 "제2차 세계대전 때 일본군으로부터 진주만 공습을 받은 미국에 휴전을 요구하는 것에 그 누구도 동의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이스라엘군(IDF)의 가자지구 지상작전과 하마스에 대한 압박만이 이스라엘 인질 석방에 대한 희망"이라며 "군이 가자지구 진입을 신중하고, 매우 강력하게 단계별로 확대하면서 체계적으로 한 걸음씩 진전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네타냐후 총리는 "군 작전 중에도 납치된 이들이 풀려날 수 있도록 노력을 지속하고 있다"면서 "작전은 그들이 풀려날 기회를 제공해 주는 만큼, 우리는 이를 놓치지 않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미국 백악관 역시 이런 기조에 힘을 실었다. 존 커비 백악관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전략소통조정관은 30일 언론 브리핑에서 "우리는 휴전이 지금 올바른 답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면서 현 단계에서 휴전은 하마스를 이롭게 할 뿐이라는 기존 입장을 거듭 확인했다.

그러면서 커비 조정관은 이스라엘이 가자지구 민간인 희생을 피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음이 분명하다고 주장했고,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전날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와 통화하면서 이스라엘이 가자지구로 가는 인도적 지원 허용량을 중대하게 늘리는 노력을 하기로 약속했다고 소개했다. 이는 가자지구 인도주의 위기가 인도주의 재앙으로 치닫고 있는 데 따른 국제사회 우려와 비판을 의식한 것으로 풀이된다.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은 29일 "전 세계가 인도주의적 재앙을 목격하고 있다"며 즉각적인 인도주의적 휴전과 조건 없는 인질 석방을 촉구했다. 그는 "가자지구의 상황은 시시각각 더 절박해지고 있다. 이스라엘이 국제사회의 지지를 받는 인도적 전투 중단 대신 군사작전을 강화한 것은 유감"이라고 우려했다.

30일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한계상황에 처한 가자지구 주민들의 무질서로 구호품 배분센터 4곳의 운영이 중단되기도 했다.

유엔 팔레스타인 난민구호기구(UNRWA) 가자지구 담당 국장 톰 화이트는 "질서가 무너지면서 구호품 배급센터 4곳과 구호품 창고 한곳의 운영이 중단됐다"고 말했다. 그는 "요즘은 매일 수백명의 주민들이 창고에 무단으로 들어와 밀가루를 훔치려 한다"며 "지금 사람들은 생존 모드다. 충분한 밀가루와 물을 얻으려 안간힘을 쓴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가자 주민 수천 명은 29일 중부 데이르 알-발라흐에 있는 유엔의 창고에 물려가 구호품을 마구잡이로 가져갔다.

가자지구 북부지역 상황은 더욱 나쁘다. 이스라엘군의 지상전까지 본격화하면서 유엔은 가자지구 북부지역 병원에 대한 구호품 전달까지 사실상 불가능해졌다고 설명했다.

세계보건기구(WHO)의 중동지역 응급 대응 담당 국장인 릭 브렌넌은 "가자 북부의 알 시파, 알 쿠드스 병원의 위험은 감내할 수 없는 수준"이라며 "이는 재앙 중에서도 최고의 재앙"이라고 말했다. 그는 "보건 분야의 수요는 급증하는데, 우리의 대응 능력은 빠르게 감소하고 있다"며 "대규모 인도적 활동을 위해선 정전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한편 이스라엘은 지난 7일 하마스의 기습공격 이후 매일 공습을 진행해 왔다. 이스라엘은 하마스 기습공격으로 1400명이 사망하고, 239명이 납치됐다고 밝혔다.

하마스가 운영 중인 가자지구 보건부는 이스라엘의 공습으로 지금까지 어린이 3457명과 여성 2136명을 포함해 8306명이 사망했다고 밝혔다. 이 같은 희생자 수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역대 무력 충돌 중 최대 규모다. 희생자 숫자를 보더라도 팔레스타인 희생자가 압도적으로 많고, 그 중 어린이와 여성이 절반을 훨씬 넘어섰지만 이스라엘과 미국은 여전히 국제사회의 휴전요구를 외면하고 있는 상황이다.

정재철 기자 jcjung@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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