잇단 출석조사 불응에 공수처 '고심'

2023-11-06 11:13:53 게재

유병호 감사원 사무총장, 4차례나 거부

'김학의 봐주기' 의혹 주임 검사도 불응

'말년' 공수처장, 수사 흐지부지 우려

'전현희 전 국민권익위원장 표적감사' 의혹,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 봐주기 수사' 의혹 등 주요사건 피의자와 피고발인이 출석조사에 불응하면서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가 대응방안을 놓고 고심하고 있다. 김진욱 공수처장 임기가 두 달여 앞으로 다가온 가운데 그동안 유명무실하다는 지적을 받아온 공수처가 존재감을 드러낼 수 있을지 주목된다.
질의에 답하는 유병호 감사원 사무총장│감사원 유병호 사무총장이 지난달 26일 국회에서 열린 법제사법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의원 질의에 답하고 있다. 연합뉴스 신준희 기자


6일 법조계에 따르면 공수처는 유병호 감사원 사무총장에게 3~5일 중 피의자 신분으로 출석해 조사받을 것을 통보했지만 유 사무총장이 불응하면서 조사가 무산됐다.

앞서 더불어민주당과 전 전 위원장은 지난해 감사원이 전 전 위원장을 몰아내기위해 '표적 감사'를 벌이고 있다며 최재해 감사원장과 함께 유 사무총장을 직권남용 권리행사방해 등의 혐의로 고발한 바 있다. 이에 공수처는 지난 9월 감사원을 압수수색 하는 등 수사를 진행해왔다.

유 사무총장이 공수처 출석요구에 불응한 것은 이번이 네 번째다. 공수처는 지난달 16일과 24일, 31일 등 세 차례나 출석을 요구했지만 유 사무총장은 국정감사 등을 이유로 응하지 않았다.

유 사무총장은 이번에도 불출석 사유서를 제출하면서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회의 등으로 조사가 어려워 12월초에 출석하겠다는 뜻을 밝혔다고 한다.

유 사무총장 측은 언론을 통해 "단 한 번도 피의자 조사 일정에 협의한 적이 없는데 이는 공수처 사건 사무규칙 위반"이라며 "공수처가 유 사무총장측이 조사를 미룬다는 식으로 언론플레이를 한다"고 밝혔다. 공수처가 임박한 시점에서야 일방적으로 출석을 통보해 응하기 어렵다는 게 유 사무총장측의 주장이다.

반면 공수처는 유 사무총장이 의도적으로 수사를 지연시키려 한다고 의심한다. 실제 유 사무총장 뿐 아니라 관련 감사원 직원들도 공수처의 출석조사 요구에 제대로 협조하지 않는 것으로 알려졌다.

통상 피의자가 정당한 이유 없이 수사기관의 출석 요구에 세 차례 이상 응하지 않으면 강제수사에 나설 요건이 된다.

다만 유 사무총장이 독립적인 헌법기관인 감사원의 고위직인데다 섣불리 체포영장을 청구했다가 법원에서 기각되면 수사 동력을 잃을 수도 있어 공수처가 당장 유 사무총장에 대한 강제구인에 나설지는 불투명하다.

공수처 관계자는 "조사 일정 협의가 없었다는 건 일방적 주장"이라며 "체포영장 청구 가능성을 열어두고 검토 중"이라고 말했다.

공소시효 만료가 나흘 앞으로 다가온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 봐주기 수사 의혹에 대해 공수처가 어떤 결론을 내릴지도 관심사다.

앞서 김 전 차관은 2013년 법무부 차관으로 임명된 직후 건설업자 윤중천씨로부터 별장에서 성접대를 받았다는 의혹이 제기된 바 있다. 이에 경찰은 수사를 진행해 일부 기소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했지만 당시 검찰 수사팀은 윤씨를 구속기소하면서도 김 전 차관에 대해선 무혐의 처분했다. 이후 검찰은 2019년 재수사를 통해 김 전 차관을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뇌물 혐의 등으로 기소했지만 공소시효 만료 등의 이유로 김 전 차관은 무죄 판결을 받았다.

그러자 김 전 차관 재수사 과정에서 오히려 불법 출국금지 혐의로 기소된 차규근 전 법무부 출입국관리본부장은 지난 7월 김 전 차관 사건의 1차 수사팀이 범죄사실을 알고도 무혐의 처분했다며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특수직무유기 등 혐의로 공수처에 고발했다.

이에 따라 공수처는 지난 9월 서울중앙지방검찰청을 압수수색하고 1차 수사팀을 지휘했던 윤재필 당시 서울중앙지검 강력부 부장검사를 최근 소환조사하는 등 수사를 진행하고 있다.

하지만 주요 관련자에 대한 조사는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다. 당장 공수처는 당시 주임검사였던 김 모 검사에 대해 피고발인 신분으로 소환을 통보했지만 조사요구에 불응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특수직무유기죄의 공소시효는 10년으로 공수처는 공소시효가 완성되는 10일까지 결론을 내려야 한다. 공소시효 전까지 관련자 조사를 마친다 해도 고의로 직무를 이행하지 않았다는 혐의를 입증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란 관측이 제기된다.

공수처 관계자는 "공소시효가 임박했다는 사실은 고발 당시부터 알고 있었다"며 "일정에 맞춰 끝내기 위해 최대한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구본홍 기자 bhkoo@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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