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시평

디지털 시대의 국제 표준

2023-11-09 11:41:49 게재
손승현 정보통신기술협회 회장

'투키디데스의 함정'은 기원전 5세기 기존 맹주였던 스파르타가 급격히 성장한 아테네에 불안감을 느껴 지중해의 주도권을 놓고 전쟁을 시작한 사건을 일컫는 말이다. 이 용어는 현재 중국을 견제하는 미국의 정책과 관련해 자주 언급된다. 2018년 트럼프정부 시절 시작된 미중 무역갈등은 바이든정부로 넘어와 경제·군사·외교뿐만 아니라 최신 디지털 혁신기술 분야로까지 확대됐다.

2022년 국제통화기금(IMF) 발표 기준 중국 국내총생산(GDP)은 18조3000억달러로 미국 GDP 25조달러의 약 70%를 차지한다. 특히 인공지능(AI)과 양자기술은 연구개발투자 대상이며, 이를 통한 혁신은 시장에서 선두 지위를 유지하고 경쟁국을 따돌리는 핵심수단이 된다.

글로벌 기술 패권 경쟁의 중심 '표준'

중국이 5G 이동통신, 이차전지, 드론 같은 혁신기술에서 미국을 앞서며, 이와 관련된 기술에 대한 국제표준화 논의에서 중국의 리더십과 기술 채택이 확대되고 있다는 사실에 대해 미국은 단순히 연구개발, 시장경쟁 또는 기술적 우위의 문제가 아니라고 인식한다. 미국은 중국에 의해 혁신기술 분야에서 국제표준을 주도하는 거버넌스 지위를 상실할 위험단계까지 진입했다고 우려하고 있다.

미국은 2022년 10월, 향후 10년 동안의 전략의제로 사용될 '국가안보 전략'을 발표했다. 이 보고서는 탈냉전 시대의 종료를 선언하고 중국을 국제질서의 재편을 추구하는 경쟁자로 정의한다. 정치·경제·안보 전반을 아우르는 핵심적 내용만 담은 이 보고서에 놀랍게도 '기술파트' 안에 '표준'을 기술경쟁의 중요한 수단으로 여러번 강조하고 있다. 특히 AI 에너지 생명공학 양자 등 분야에서 국가 간 연대를 강화해 국제표준화를 주도하겠다는 의지다.

2023년 5월 미국은 '핵심 및 신흥기술(Critical and Emerging Technology, CET)'의 표준화 전략을 발표한다. 이 전략의 핵심내용은 국제표준 제정에 있어서 미국의 주도권을 확보하는 방안으로 △CET 표준 개발과 채택에 대한 정부 투자 확대 △민간 주도의 CET 표준 개발 및 채택 촉진 △중국의 CET 표준 주도권 확대에 대한 대응책을 포함한다. 이 전략을 통해 미국정부는 CET 표준 개발과 채택을 위한 연구개발(R&D) 지원, 표준화 인력 양성, 그리고 표준 개발·채택 협력강화 등에 연방정부 투자를 늘릴 계획이며 민간기업과 연구자들이 CET 표준 개발과 채택에 주도적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방안까지도 구체화하고 있다.

표준화에 대해 전략적이고 체계적인 접근과 준비 필요

미중 기술패권 경쟁이 심화함에 따라 표준화 무대에서의 지정학적 경쟁이 가속화됐다. 표준이 점차 새로운 디지털 질서와 기술경쟁의 핵심수단으로 자리잡아가고 있다. 디지털 전환 시대에서 AI 양자 사이버보안 등의 디지털 기술 표준은 WTO TBT 협정의 '표준의 준비, 채택 및 적용에 관한 모범 관행 규약'과 '국제표준개발의 원칙에 관한 TBT 위원회 결정' 등의 관련 국제 규범과 원칙에 따라 다중 이해관계자 참여를 통한 개방적이며 투명하고, 합의 기반의 방식으로 개발되는 중이다.

표준의 지정학적 경쟁이 심화함에 따라 다자 및 양자규범을 마련하는 데에 적극적으로 참여해야 한다. 이와 같은 국제환경 속에서 우리나라가 글로벌 디지털 선도 국가로 도약하기 위해서는 혁신기술에 대한 표준 및 특허 선점을 위한 논의가 이루어지는 초기부터 국제회의에 적극적으로 참여해야 한다.

더불어 연구개발에 투자하고, 해외 표준화 기관과 협력을 강화해 핵심기술 분야에서 주도적으로 국제표준을 제안하고, 표준화 인력을 양성하는 등의 노력을 해야 한다. 뿐만 아니라 표준화에 대해 좀더 전략적이고 체계적인 접근과 준비가 필요하다. 이러한 노력을 통해 우리나라가 '규범 창조자(Rule Setter)'로서 국제무대에서 주목받으며 지속가능하고 안전한 디지털 사회 기반을 구축해 디지털 대전환 시대를 선도하는 나라로 도약하길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