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정기관 국어문화원, 예산증액 필요하다

2023-11-10 10:51:23 게재

국어기본법에 따라 지정 ·운영 … 공공언어 개선 통한 공익 가치 연간 3375억원

국어기본법에 근거해 국민들의 국어능력을 높이고 국어와 관련된 상담을 수행하는 법정 기관인 국어문화원 및 관련 예산 삭감으로 공공언어와 언어문화 개선 활동이 위축될 우려가 커지고 있다.
4월 20일 열린 제12회 국어책임관·국어문화원 공동 연수회. 사진 국어문화원연합회 제공


10일 국어문화원은 공공언어 및 언어문화 개선 활동의 수요 증가에도 불구하고 예산이 삭감돼 적절한 활동을 하지 못할 위기에 처해 있다는 사실이 알려졌다. 내년에는 필요예산 15억원에 비해 턱없이 적은 4억5000만원이 국어문화원에 편성됐다. 올해 예산 5억원 보다 5000만원이 삭감된 예산이다.

◆22곳 내년 예산 4억5000만원 불과 = 국어문화원은 2005년 제정된 국어기본법에 근거해 전문인력과 시설을 갖춘 국어 관련 전문기관과 단체 중 지정되는 법정 기관이다. 대체로 국어국문학과가 설치된 대학을 중심으로 지정돼있다. 전국에 22곳이 있으며 국민들의 국어능력을 높이고 국어와 관련된 상담을 하는 등 공공언어와 언어문화 개선을 위해 활동하고 있다.

일반 국민과 공무원, 공공기관 종사자 등을 대상으로 국어능력 향상 교육을 포함해 국어 관련 교육과 상담을 하는 것이 주된 업무다. 한글날 계기 문화행사 등을 펼쳐 국어문화를 증진하는 데 기여하는 역할도 한다.

국어문화원연합회가 주관하는 문화체육관광부 쉬운 우리말 쓰기 사업의 경우, 쉬운 우리말을 알리고 어려운 공공언어를 개선하는 데 상당한 효과를 거둔 것으로 나타났다. 코로나19 관련 용어인 '노쇼 백신' '부스터 샷' '트래블 버블' '위드 코로나'의 경우 쉬운 우리말 쓰기 활동으로 각각 '잔여 백신' '추가 접종' '여행 안전 권역' '단계적 일상회복' 등 우리말 표현을 사용하게 됐다.

공공언어에 쉬운 우리말을 사용해 모든 사람들이 이해하기 쉽도록 하는 것은 언어의 인권 보호 측면에서도 중요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또 장기적으로 쉬운 우리말 쓰기 관련 지방자치단체와 공공기관의 정책 개선을 유도하는 성과를 가져왔다.

국어문화원연합회에 따르면 국어문화원의 적정 예산은 한 기관당 6000만원으로 총 22곳 기준으로 13억2000만원이다. 신규 국어문화원 3곳을 추가로 지정할 것을 고려해 필요한 적정 예산은 15억원으로 국어문화원연합회는 총 15억원의 예산이 내년에 편성되기를 희망하고 있다. 그러나 올해 예산은 5억원으로 국어문화원 1곳당 약 2270만원의 예산이 편성됐다. 내년 예산 4억5000만원을 기준으로 하면 1곳당 약 2040만원의 예산이 편성될 전망이다.

국어기본법에 따르면 국어문화원은 박사 과정 수료 이상 혹은 이에 상당한 경력을 가진 상근 책임자 1명과 석사 이상 혹은 이에 상당한 경력을 가진 상근 연구원 2명을 두게 돼 있다. 그러나 국어기본법에는 '국가가 국어문화원의 운영에 필요한 경비의 일부를 예산의 범위에서 보조할 수 있다'는 임의규정만 명시돼있다.

나아가 국어문화원연합회에 따르면 장기적으로는 국어문화원을 42곳으로 확장해야 한다. 국민들을 위한 교육과 상담 수요가 갈수록 증가하는 가운데 효율적인 대응에 어려움이 있기 때문이다. 충분한 예산이 없어 서울대 경희대 동국대 등이 신규 국어문화원 지정을 요청하고 있음에도 지정할 수 없는 상황이다. 예컨대 서울의 경우 만 18세 이상 인구가 847만명으로 국어문화원이 8곳은 설치돼야 적절한 활동을 할 수 있으나 4곳 설치에 그쳤다. 경기의 경우 만 18세 이상 인구가 1106만명으로 국어문화원이 8곳은 설치돼야 하나 2곳 설치에 그쳤다.

◆"국어문화원, 합당한 대우받아야" = 국어문화원 지원 예산이 줄어든 것은 물론 국어문화원이 주관하는 쉬운 우리말 쓰기 사업 지원 예산은 43억100만원에서 17억2100만원으로 삭감됐다.

세부적으로 공공분야 외국어 등 사용 순화 사업이 올해 8억원 편성에서 내년도 7억2000만원 편성으로 삭감됐다. 매체와 함께하는 쉬운 우리말 쓰기 운동 사업은 올해 25억원 편성됐으나 내년도에는 전액 삭감된 상태다.

이에 따라 관련 전문가들은 예산이 삭감된 사업의 예산을 일부 살려 국어문화원 지원을 보다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사업의 실효성 등으로 인해 정책적 판단으로 특정 사업을 폐지할 수는 있지만 국어문화원이 수행하는 공공언어 및 국민들의 언어문화 개선 활동은 여전히 보다 확장돼야 할 필요성이 있기 때문이다.

특히 공공언어 개선을 통한 공익적 가치는 상당한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2021년 국어문화원연합회 '공공언어 개선의 정책효과 조사 연구'에 따르면 공공언어 개선에 따른 정확한 정보 전달 및 업무의 효율성 향상 등의 공익적 가치는 1인당 연간 7833원으로 나타났다. 이를 전국민으로 확대하면 연간 3375억원에 달한다.

이외에도 민원 서식에서 사용되는 어려운 용어를 개선할 경우 연간 약 1952억원의 시간 비용이, 정책 용어를 개선할 경우 연간 약 753억원의 시간 비용이 절감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 약관 및 계약서류의 어려운 용어를 개선하면 연간 약 791억원의 시간 비용을 절감할 수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배영환 제주대학교 국어문화원 원장은 "2005년 제정된 국어기본법에 따라 국민들의 쉬운 국어생활이 보장받아야 하며 공공언어는 국민들에게 영향을 많이 미친다"면서 "공공기관에서 사용하는 문서 등이 여전히 일반 국민들이 이해하기에 어려운 언어로 돼 있다"고 말했다.

이어 "각 지역 거점별로 국어문화원을 지정해 연구자들이 국어 상담을 하고 공공기관 혹은 지방자체단체와 협력해 공공언어를 쉬운 우리말로 사용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있는데 예산이 1곳당 2000만원 정도에 불과하다"면서 "법적으로 지정을 했으면 합당한 대우를 해줘야 하며 최소한 1곳당 6000만원 정도의 예산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송현경 기자 funnysong@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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