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의 눈

그 많던 '친윤'은 어디로 사라졌을까

2023-11-20 11:25:11 게재
심판의 계절이 돌아왔다. 내년 4월이면 21대 국회의원 298명에 대한 재평가가 이뤄진다. 특히 지난해 3월 집권여당으로 '신분 상승'한 국민의힘 의원 112명에 대해선 더욱 엄중한 잣대가 적용될 것이다.

민심은 어느 때보다 싸늘하다. 윤석열정부에게 1년반 전 '전권'을 맡겼는데, "먹고 살기 힘들다"는 원성이 높다. 여당 의원들을 바라보는 시선이 차가울 수밖에 없다.

윤석열정부 들어 '친윤' '핵관(핵심관계자)' '지도부'로 분류된 의원들이 책임을 피하기 어려워 보인다. 그러다 보니 하루아침에 여당 혁신위원장이 된 의대 교수가 "당 지도부 및 중진 의원, 대통령과 가까이 지내는 의원들은 총선 불출마를 선언하거나 아니면 수도권 어려운 곳에 와서 출마하는 것을 강력히 요구한다"고 으름장을 놔도, "터무니없는 억지"라며 반발할 수 없는 게 현실이다. 여론이 그만큼 여당 지도부·윤핵관·영남 중진에게 싸늘하다는 걸 본인들도 잘 알고 있는 것이다.

민심을 간파한 혁신위원장이 "물러나라"고 요구하자, 지도부·윤핵관·영남 중진은 침묵으로 버티고 있다. 윤석열정부 초기, 그들은 요란스러웠다. 앞다퉈 '친윤'임을 호소했다.

윤 대통령 뜻을 받들어 이준석을 내쫓고 김기현을 대표로 세우는 데 앞장섰다. 나경원을 배척하려고 연판장까지 돌렸다. 유승민을 결사저지했다. 윤 대통령이 "이념이 가장 중요하다"고 외치자, 민생은 아랑곳하지 않고 이념투쟁에 나섰다. '윤석열 검찰'이 야당 수사에 매진하자, 야당과의 협치는커녕 전쟁에 열중했다. 그때는 '친윤' 목소리만 들렸다.

그랬던 '친윤'이 의대 교수의 호통 한마디에 슬그머니 뒤로 빠졌다. '윤핵관' 배지를 떼고 '윤핵관'이 아닌 척 하고 있다. 약속이나 한 듯 입을 닫고 납짝 엎드려 민심 눈치만 본다.

이게 뭔가. 한때 대한민국을 뒤흔들던 '친윤' 아닌가. "무책임한 거대야당 때문에 국정을 망쳤다" "무조건 불출마하라는 건 억지다" "민심의 재평가를 받겠다"며 차라리 소신껏 저항해야 하는 것 아닌가. '내가 친윤이다' 외치던 결기는 어디로 사라졌는가.

지난 1년 반동안 '친윤'은 윤 대통령이 남몰래 불러주는 술자리가 영광스러웠을 것이다. 윤 대통령의 '하사주'는 그 영광만큼 무거운 책임이 따른다는 걸 '친윤'은 몰랐을까.

'금으로 만든 술동이에 담긴 향기로운 술은 천 사람의 피요, 옥쟁반에 담긴 아름다운 안주는 만 백성의 기름이라…' 위정자들이 권력놀음에 취하면 백성은 분노하고 심판한다. 만고의 진리다.
엄경용 기자 rabbit@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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