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시론

'대동강 물' 대신 '임영웅' 파는 세상

2023-11-28 12:03:31 게재

과거 버스터미널이나 재래시장 주변에는 '야바위'라는 도박판을 흔히 볼 수 있었다. 야바위는 언뜻 보면 쉽게 알아맞힐 수 있을 것 같고 건 돈의 몇배를 금방 벌 수 있을 것처럼 사람들을 현혹시킨다. 트럼프 화투 주사위 등 노름 방식은 다양하지만 결국 물주가 먹을 수밖에 없는데 물주와 한 통속인 사람들이 짜고 속임수를 쓰기 때문이다. 일종의 '사기'다.

사기 덫에 걸린 청년층

선진국에 진입했다는 한국사회가 야바위판이 되어가고 있다. 대동강 물을 팔아 먹었다는 봉이 김선달은 명함도 내밀지 못할 정도다.

"임영웅 콘서트 티켓 팝니다"라며 사회관계망(SNS)에 글을 올려 2억7000만원어치를 가로채는가 하면 가전제품 할인 등을 미끼로 물건은 보내지 않고 5억여원을 꿀꺽했다. 허위 청첩장을 돌리고 이를 확인한 사람들의 계정을 이용해 대출을 내기도 한다. 보이스피싱 뿐 아니라 문자나 카카오톡, 트위터 등 사이버상으로 쏟아지는 각종 현대판 봉이 김선달을 가려내기 쉽지 않다.

경찰청 국가수사본부는 최근 8개월 간 사이버 사기·금융범죄를 집중단속해 2만7264명을 검거하고 이중 1239명을 구속했다고 밝혔다. 이중 '사이버 사기' 피의자 2만3682명(구속 1019명)을 범죄 유형으로 구분하면 직거래 사기(40.2%), 투자 빙자 가상자산 등 이용 사기(38.3%), 게임사기(6.7%), 가짜 쇼핑몰·이메일 사기(1.6%) 순으로 나타났다.

'사이버 금융범죄' 피의자 3582명(구속 220명)은 범죄유형 중 메신저 피싱이 54.8%로 가장 많았으며 누리소통망·메신저 계정 등 불법 유통(21.9%), 스미싱 등 문자메시지 이용 피싱범죄(17.1%), 몸캠피싱(6.1%)이 뒤를 이었다.

우울한 것은 사기를 치는 사람이나 당하는 사람 대부분 젊은층이란 사실이다. 경찰 발표를 보면 피의자 연령대로는 20대가 48.49%로 가장 많았다. 이어 30대(22.95%), 19세 미만(14.14%)이다. 이들이 사이버에 익숙한 세대이기도 하지만 어려운 경제사정 때문이란 분석이 나온다.

전세사기 피해 역시 젊은층에 집중되고 있다. 국토교통부가 발표한 '전세사기피해자등 결정현황'(11월 15일 기준 누계)에 따르면 지난 6월 1일 위원회 출범 이후 총 8284건이 전세사기로 결정됐다. 전세사기 피해자 대다수가 수도권 소재 1억원 미만 다가구주택에 거주하는 40대 미만 청년층(71.4%)으로 나타났다.

전세계적으로 가장 많이 일어나는 범죄는 절도다. 하지만 한국은 유독 사기범죄가 1위를 기록하고 있다. 대검찰청이 발표한 '2018 범죄현황'에 따르면 한국도 2014년까지는 절도가 1위를 차지했다. 하지만 2015년 사기 발생 건수가 25만7620건을 기록하며 절도 발생 건수(24만6424건)를 앞질렀다.

한국형사법무정책원구원이 지난 4월 발표한 '2022년 4분기 범죄동향 리포트'에 따르면 2022년 4분기 발생한 전체범죄는 41만4708건이다. 발생건수가 가장 많은 범죄유형은 재산범죄(16만6928건)이고, 이중에서도 사기 발생 건수(8만380건, 전체의 약 19%)가 가장 많았다. 지난 한해 사기범죄 발생 건수는 33만390건이었다.

약간의 차이가 있지만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권인숙 의원이 경찰청에서 받은 자료를 보면 지난 5년간 사기 혐의로 검거된 인원은 총 149만3000명으로 한해 평균 약 30만명 수준이다. 사기 피해는 126조4000억원 규모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사기피해 건수와 액수가 가장 많다"는 얘기도 있다.

사기범죄 예방 컨트롤타워 필요

전문가들은 사기범죄 예방을 전담·대응하는 컨트롤타워가 있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과거처럼 지인에게 돈을 빌려주고 못 갚는 식이 아니라 지능화 대형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사기범죄에 대한 처벌수위가 낮다는 지적도 나온다. 정쟁에 몰린 수사역량을 민생으로 돌려야 한다는 말도 나온 지 오래다.

전세사기는 사회적 재난이란 말도 있듯이 근본적으로 미래세대가 정상적인 경제활동으로 삶을 영위할 수 있는 토대를 만들어야 한다. 봉이 김선달 얘기가 조선 후기 사회상을 반영하듯 오늘날 '사기발생 1위'라는 오명을 벗기 위해서는 사회의 불균형이 시정돼야 한다. 한탕주의를 부추기는 풍조 역시 사라져야 한다.

차염진 기획특집팀장
차염진 기자 기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