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의 눈

또 반복된 혁신위 잔혹사

2023-12-04 11:24:34 게재
정치권의 '혁신위 잔혹사'가 올해 들어 또다시 반복될 것 같다. 잇단 설화로 몸살을 앓다가 조기 퇴장한 더불어민주당의 '김은경 혁신위'에 이어 국민의힘 '인요한 혁신위'도 사실상 별다른 성과없이 해체수순에 접어들었다. 출범할 때 받았던 화려한 주연급 스포트라이트가 무색하게 지금은 인 위원장의 쓸쓸한 뒷모습만 눈에 띈다.

'인요한 혁신위'의 실패 이유는 복합적이다. 서울 강서구청장 보궐선거 여당 참패 이후 민심을 다시 끌어오기 위해 급조된 태생적 한계, '전권을 주겠다'는 달콤한 약속과 달리 지도부가 혁신안을 수용하지 않으면 모든 것이 무위로 돌아갈 수밖에 없는 '무권' 혁신위라는 점, "준석이는 도덕이 없다"로 대표되는 인 위원장의 각종 설화 등등. 이유를 꼽자면 열손가락으로도 모자랄 지경이다. 그만큼 실패할 가능성이 높은 상황이었고, 헤쳐나가야 할 장애물이 많았다는 뜻이다.

혁신위가 성공하려면 어떻게 해야 했을까. 성공까지는 아니어도 혁신에 저항한 지도부에 생채기라도 내고 퇴장할 수 있으려면 어떻게 해야 했을까. 답은 결국 민심에 있을 것 같다. 혁신위가 출범하게 된 진짜 이유, 즉 강서구청장 보궐선거에서 나타난 민심을 헤아리는 데 좀 더 집중했어야 했다.

지난해 국민의힘 혁신위원장을 맡았고 잔혹사의 범주에서 벗어나지 못했던 최재형 의원의 지적이 새삼 떠오른다. 최 의원은 "아내와 아이 빼고 다 바꿔야한다"는 인 위원장의 일성에 대해 "만약 아내와 아이에 문제가 있다면 어떻게 할 거냐"면서 "국정운영방식과 당정관계를 변화시키지 않고, 강서구청장 선거에서 드러난 민심과 국민의 눈높이에 맞는 당의 쇄신이 이루어질 수 있겠느냐"고 지적했다.

인 위원장은 혁신위원장으로서 수차례 언론 인터뷰를 했지만 윤석열 대통령의 국정운영방식이나 수직적 당정관계에 대해선 한마디도 한 적이 없다. 인 위원장이 '셀럽'형 인기를 얻었을지언정 더 큰 정치적 지지를 얻지 못한 데에는 민심을 선택적으로 읽었던 탓이 없지 않다.

인요한 혁신위가 생각보다 맥없이 무너진 탓에 김기현 지도부에 미치는 영향은 생각보다 적을 수 있다. 지도부 입장에서 보면 강서구청장 보선 참패 후 시간벌기 용도도 있었던 만큼 혁신위의 원래 쓰임새를 다 했다고 느낄지 모른다.

그러나 결국은 순망치한이다. 여론의 주목을 끌었던 혁신위의 신선함, 혁신위와 지도부 간 갈등이라는 이슈가 사라진 공백 속에서 국민들의 시선이 가닿을 곳은 결국 지도부다. 인요한 혁신위의 한계는 명확했지만, 그렇다고 사람 데려다놓고 순식간에 바보로 만들어버린 국민의힘 지도부가 국민들 눈에 예뻐 보일까.
김형선 기자 egoh@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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