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 레바논서 미 공급 백린탄 사용"

2023-12-12 10:45:37 게재

WP 보도에 미 "제공 때 전쟁법 준수 기대" … 이스라엘 "예외적 사용 가능"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 무장정파인 하마스와의 전쟁 초기인 지난 10월 레바논에서 백린탄을 사용해 민간인 피해가 발생한 것으로 알려진 가운데, 해당 백린탄은 미국이 공급한 것이란 보도가 나와 논란이 예상된다.

이스라엘이 국제적으로 금기시되는 '악마의 무기' 백린탄을 레바논 공격에 썼다고 인권단체 국제앰네스티가 지난 10월 31일(현지시간) 주장했다. 사진은 지난 10월 15일 백린탄으로 추정되는 이스라엘군 포탄이 레바논 남부 국경 마을에 투하돼 폭발하는 모습. 알 부스탄 AP=연합뉴스


11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포스트(WP)는 파편 분석을 토대로 이스라엘이 미국에서 공급받은 백린탄을 레바논 남쪽 지역을 공격하는데 사용했다고 보도했다.

이에 미국 당국은 사실관계를 확인하겠다며 우려를 표명했고, 이스라엘 측은 합법적인 무기만 사용하고 있다는 입장을 밝혔다.

앞서 이스라엘방위군(IDF)은 지난 10월 10일과 16일 이란의 지원을 받는 레바논 무장 정파 헤즈볼라와의 교전 당시 두하이라 지역에 백린탄을 투하했다는 의혹을 받았다. 당시 의혹을 조사한 국제인권단체 국제앰네스티(AI)는 IDF가 두하이라 공습 때 백린탄을 투하해 주택과 자동차가 불에 타고 민간인 9명이 호흡곤란 때문에 급하게 병원 치료를 받았다고 밝힌 바 있다.

두하이라는 하마스를 지지하는 레바논의 친이란 무장정파 헤즈볼라가 대이스라엘 공격 때 주요 거점으로 활용해온 곳이다.

백린탄은 발화점이 낮은 백린을 이용해 대량의 연기와 화염을 내뿜도록 만든 무기로 연막탄이나 소이탄으로 사용된다. 군인과 민간인을 가리지 않고 투하 지점 근처에 광범위하게 피해를 주는 까닭에 전쟁범죄 우려가 뒤따르는 무기다.

백린탄의 불꽃이 몸에 닿으면 뼈까지 타들어 가고, 생존하더라도 감염이나 장기기능 장애 등을 겪을 수 있어 '악마의 무기'로 불린다.

WP는 자사를 위해 일하는 언론인이 두하이라에서 155mm 백린탄 3발의 잔해를 발견했으며, 해당 잔해의 표면에 미국제임을 알 수 있는 단서가 기재돼 있었다고 설명했다.

예컨대 탄약 잔해 한 곳에는 'PB-92'로 시작하는 일련번호가 표시 돼있었는데, 군사 전문가들은 WP에 "1992년 미국 아칸소주 파인블러프에서 생산됐다는 뜻"이라고 설명했다. 또 다른 잔해 표면에 적힌 일련번호 'THS-98'은 미국 방위산업체 시오콜이 1989년 미국 루이지애나주 공장에서 생산한 것임을 뜻한다. 또 포탄에 찍힌 'WP'라는 영문은 '백린(White Phosphorus)'을 뜻한다고 WP는 전했다.

이스라엘군은 백린탄 사용이 연막을 피우기 위함이었을 뿐이며, 화재를 일으키거나, 특정 공격 목표를 겨냥한 것은 아니라면서 자신들이 국제법을 준수하고 있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워싱턴포스트는 이스라엘군이 단순히 연막을 만들기 위함이라면 백린 대신 'M150포탄'과 같은 더 안전한 대안을 쓸 수 있었다고 지적했다.

이 보도에 대해 존 커비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전략소통조정관은 이날 대통령 전용기에서 한 브리핑에서 "보도를 봤고 확실히 우려하고 있다"며 "더 많은 내용을 파악하기 위해 (이스라엘에) 질문을 할 것"이라고 밝혔다. 다만 그는 백린탄이 어두운 곳을 밝히고 병력 움직임을 숨기려고 연막을 만들 때 사용되는 등 "합법적인 군사적 용도"가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우리가 다른 나라 군에게 백린탄 같은 품목을 제공할 때는 이런 합법적인 용도로만 사용하고 전쟁법을 준수할 것이라는 완전한 기대가 있다"고 밝혔다.

IDF는 이날 밤 늦게 성명을 내고 "우리는 오로지 합법적인 무기만 사용한다"고 거듭 강조했고 현지 일간 타임스오브이스라엘(TOI)은 보도했다.

IDF는 "우리가 사용하는 주요 연막탄에는 백린이 포함돼있지 않다"면서도 "많은 서방 군대와 마찬가지로 IDF도 국제법에 따라 합법적으로 백린이 포함된 연막탄을 보유하고 있다"고 언급했다. 이어 "이를 사용하기 위한 선택은 다른 선택지와 작전 고려 사항, 가용성 등에 영향을 받는다"며 "이 포탄은 공격용이나 점화용이 아닌 연막 용도로 고안됐으며, 법적으로도 소이탄(화염을 일으키는 무기)으로 정의되지 않았다"고 짚었다.

IDF는 기존 절차에 따르면 백린탄을 도심 지역에서 사용할 수 없지만 "특정한 예외적인 경우"에만 가능하다며 "이런 제한은 국제법에 따르는 것으로, 매우 엄격하다"고 덧붙였다.

한편 TOI는 워싱턴포스트가 '이스라엘이 2013년 백린탄 사용 중단을 약속했다'고 보도한 것이 사실과 다르다며 "군이 백린탄 사용을 한정하겠다고는 했지만, 특정한 경우들에 있어서는 사용 권리가 있다"고 설명했다.

김상범 기자 claykim@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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