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습기살균제 천식 피해 배상 첫 인정

2023-12-14 11:10:01 게재

법원 "옥시 등 위자료 2000만원 배상"

옥시레킷벤키저(옥시)의 가습기살균제를 사용한 뒤 천식 진단을 받은 피해자에게 옥시와 가습기살균제 원료 제조사가 위자료를 물어줘야 한다는 법원 판결이 나왔다. 폐 섬유화 증상이 아닌, 천식 발병에 대해 가습기살균제 판매사와 제조사의 배상 책임이 법적으로 인정된 건 이번이 처음이다.

서울중앙지방법원 민사합의14부(서보민 부장판사)는 13일 가습기살균제 피해자인 천식 질환자 17살 A씨 가족이 옥시와 원료제조사 한빛화학을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원고 일부 승소로 판결했다. 정부에 대한 청구는 기각했다.

A씨는 2009년과 2010년 병원에서 폐렴과 천식 진단을 받은 뒤, 몸 상태가 급격히 나빠져 2014년 오른쪽 폐 일부를 잘라냈다. 뚜렷한 원인을 찾지 못한 채로 병원 치료만 이어오다가, 전국에서 가습기살균제 피해자가 나오면서 옥시의 가습기살균제가 문제였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이후 A씨는 환경부 산하 가습기살균제 피해구제위원회를 통해 천식 질환 구제를 인정받았지만, 폐 질환에 대해서는 인정받지 못했다. 이에 지난해 10월 총 6억원의 위자료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옥시는 재판 과정에서 가습기살균제와 천식 발병 사이의 인과관계가 성립하지 않고, A씨는 원래 천식을 앓았다고 맞섰다.

하지만 재판부는 가습기살균제 피해구제를 위한 특별법에 따라 정신적 손해를 배상할 의무가 있다고 판단했다. 법적으로 질병의 인과관계를 추정할 때는 △원인이 결과보다 먼저 일어나는지 △원인에 노출이 많아짐에 따라 결과도 심각해지는지 △다른 사람들에게서도 확인되는지 등을 확인한다.

재판부는"A씨가 가습기살균제에 노출됐고 이후 기존 천식 질환이 악화됐다"며 "가습기살균제 노출과 천식 사이에 역학적 상관관계가 있음이 확인된다"고 설명했다. 이어 "옥시와 한빛화학은 다른 원인으로 인해 (A씨의 천식) 피해가 발생한 사실을 증명하지 못하므로 가습기살균제 사용과 원고의 천식 질환 사이의 인과관계가 추정된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피고들은 공동하여 원고에게 2000만원 및 그 지연손해금을 지급하라"며 "(A씨가) 정부로부터 1억2000여만원의 구제급여를 지급받았고 이후에도 매월 일정액의 급여를 받는 점, 이 재원을 옥시가 상당 부분 부담한 점을 고려해 액수를 산정했다"고 밝혔다.

서원호 기자 os@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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