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특권주의 산물 '정당현수막 난립' 내년에도 이어질라

2023-12-21 10:45:23 게재

개수·장소 제한 법사위가 제동

'읍면동별 2개 제한' 문제 삼아

행안위 의결 개정안 통과 난항

광역지자체 이미 조례로 규제

국회가 정당현수막의 개수 규격 등을 제한하는 내용의 옥외광고물법 개정에 제동을 걸고 나섰다. 개정안 연내 통과가 불투명해지면서 내년에도 무분별한 정당현수막 때문에 국민들이 눈살을 찌푸리는 상황이 이어질 가능성이 높아졌다.

21일 국회와 행정안전부 등에 따르면 지난 11월 1일 행정안전위원회가 의결한 옥외광고물법 개정안에 대해 법제사법위원회가 19일 심의를 보류했다. 일부 야당 의원들이 현수막 개수를 '읍면동별 2개로 제한'한 개정안 내용을 문제 삼았다. 이 때문에 개정 법률안에 근거해 내년 1월 1일부터 정당현수막 제한을 준비하던 행안부와 지자체들이 손을 놓게 됐다.

정당현수막이 난립하게 된 이유는 국회가 지난해 옥외광고물법을 개정한 탓이다. 지난해 12월 '정당이 통상적인 정당 활동으로 보장되는 정당의 정책이나 정치적 현안에 대해 광고물을 표시·설치하는 경우 허가·신고 및 금지·제한에 관한 규정을 적용하지 않는다'는 조항을 만들면서 이 같은 상황이 벌어졌다. 국민들의 불만이 쏟아졌고, 지나는 행인들이 현수막 줄에 목이 걸려 다치는 등 안전사고도 여러 건 발생했다.

법 시행 초기인 1~3월 3개월 동안에만 안전사고만 여러건이 발생했다. 지난 1월 20일 경북 포항시에서 정당현수막이 걸려있던 가로등이 강풍에 쓰러지면서 지나가던 행인이 머리를 다쳐 병원에 이송됐다. 3월 전북 김제시에서는 정당현수막 3개가 걸려있던 가로등이 쓰러져 지나가던 차량을 덮쳤다. 현수막 줄에 목이 걸려 다친 사고는 2월 인천 연수구와 대구 달서구에서 잇달아 발생했다. 정부가 임시방편으로 마련한 가이드라인도 소용이 없었다.

국민들의 불만은 쌓여갔다. 국민 인식조사에서는 무려 90% 이상이 '제한이 필요하다'고 답했다. 참다못한 지자체들은 법령 범위를 넘어서는 조례를 만들어 정당현수막을 제한하고 나섰다. 전체 광역지자체 중 절반 가까이 동참했다. 조례를 개정한 지자체는 인천 대구 광주 울산 부산 서울 전남 제주 등 5곳이다. 가장 강력하게 반발한 곳은 인천시다. 유정복 인천시장은 정당현수막을 '정치만능주의의 상징' '국회의 특권주의'라며 원색적으로 비난했다.

경남 창원시 등 기초지자체들도 정당현수막 정비에 나섰지만 무소불위의 정당과 국회를 넘어설 수 없었다.

국회도 이 같은 국민들의 원성과 지자체 불만을 견디지 못했다. 무려 11개 개정안이 제출됐다. 행정안전위원회는 이 법안들을 병합해 위원회 대안을 마련하고 지난 11월 1일 의결했다.

개정안의 주요 내용은 정당현수막의 개수 규격 장소 등에 대한 제한을 강화하는 것이 골자다. 공직선거법을 본 따 '읍면동별 2개 이내'로 개수를 제한하고, 장소와 규격은 시행령에 위임하도록 했다. 이를 위반한 현수막을 강제로 철거할 수 있는 근거도 담았다.

또한 부칙으로 안전사고와 난립 예방, 국민불편 해소, 법정 안정성 제고를 위해 조속한 시행이 필요하다며 개정안 시행일을 내년 1월 1일로 정했다.

하지만 이 개정안은 법제사법위원회에 가로막혔다. 더불어민주당 간사인 소병철 의원 등 일부 의원들이 개수 제한을 문제 삼았다. '읍면동별 2개로 제한'한 현수막 개수 제한이 형평성에 어긋난다는 것이 이유다. 소 의원은 19일 법사위 회의에서 "읍면동별 면적 편차가 큰데 일률적으로 읍면동별 2개로 (현수막) 개수를 규정하는 것이 형평성에 어긋난다고 생각한다"며 "현수막 개수를 줄이자는 취지는 동의하나 인구와 면적도 다른데 획일적으로 줄이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주장했다.

내년 1월 1일 개정법 시행에 맞춰 관련 시행령 등을 준비해온 행안부는 개정안 의결이 보류되자 당혹스러워하고 있다. 무려 11개 법안이 제출된 상태에서 마련된 위원회 대안이었고, 해당 상임위에서 이견 없이 통과된 법안이기 때문이다.

행안부 관계자는 "행안위에서 소수정당을 포함한 여야가 논의해 '읍면동 2개 이내'가 합당하다고 판단하고 개정안을 만들었는데 법사위에서 이를 문제 삼을지는 몰랐다"며 "행안부의 재의 요구에도 불구하고 현수막 관련 자체 조례를 제·개정하는 지자체가 계속 늘어나고 있는 상황에서 법안이 시급히 개정되지 않으면 자칫 더 큰 혼란과 불만이 발생할 수 있어 걱정"이라고 말했다.
김신일 기자 ddhn21@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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