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폭몰이 안전보건활동

안전 요구하자 '협박범', 휴게실 요청했다고 '해고'

2024-01-12 10:58:34 게재

건설노조 위축되면서 현장분위기 회귀 "노동자 생명 위협" … "자기규율 주체인 노조의 '위험성 평가' 참여 보장해야"

2022년 12월부터 시작된 윤석열정부의 '건폭(건설폭력배)몰이' 수사로 노조활동이 위축되면서 안전보건활동이 경시돼 노동자의 안전보건이 위협받고 있다는 지적이다.
민주노총 건설노조는 건설현장 착공면적과 사고사망자수를 비교해 눈길을 끌었다. 착공면적 대비 건설업 사고사망자수를 보면, 2021년엔 1억3529만8000㎡를 공사했는데 산재 사고사망자는 417명이다. 2023년 9월 현재 5220만㎡ 착공면적 중에 사고사망자수는 256명으로 집계됐다.
전재희 건설노조 노동안전보건실장은 "이를 비교하면 2021년 착공면적 대비 사고사망자수보다 2023년 9월 현재가 더 높게 나온다"면서 "공사할 땅이 줄었으면 생산품이 감소했다는 의미이기 때문에 노동자 사고사망자수도 줄어들어야 하는데 오히려 더 늘었다"고 분석했다.
그는 "2021년에는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중대재해법) 시행을 앞두고 삼성 포스코 등 굴지의 건설사가 건설노동자의 작업중지권을 보장하는 등 일대 혁신이 일었다"며 "반면 실제 중대재해법이 시행된 뒤, 시간이 흐를수록 법은 솜방망이가 되고, 노조탄압이 더해지면서 건설사들은 '원래 하던 대로해도 된다' 혹은 '정권의 비호 아래 예전보다 더 해도 된다'고 인식하게 된 것 같다"고 지적했다. 이어 "떨어져 죽는 것보다 배고파 죽는게 더 무서운 건설노동자들은 위험한 걸 보고도 못 본척하며 일하다보니 건설현장은 시간이 흐를수록 더 위험해지고 있다"고 말했다.

건설노조, 부실공사 신고센터 개설 │전국건설노동조합 조합원들이 지난해 9월 7일 서울 강남구 대한건설협회 앞에서 연 '부실공사 및 중대재해 예방 신고센터 개설 기자회견'에서 참가자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연합뉴스 김성민 기자


#. 지난해 5월, 경기 고양시의 한 건설현장에서 일하던 채 모씨는 더운 날씨에도 땡볕을 피할 휴게실이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현장 안내표지판에는 5곳의 휴게시설이 표시됐지만 실제로는 없었다. 채씨는 더위를 피할 휴게실과 에어컨 설치를 요청했다. 폭염이 시작된 6월에도 아무런 변화가 없었다. 그는 언론사에 제보했다. 기사가 나간 뒤 건설사는 채씨의 소속팀 전원으로 계약해지했다. 이후 채씨를 뺀 나머지 동료들은 재고용됐다. 채씨는 노동위원회에 부당해고 구제신청을 냈다. 노동위도 휴게시설 요구로 인해 해고됐다는 것을 일부 인정해 화해권고했다. 형틀목수 노동자는 이영춘씨는 "건설현장에서는 자연스럽게 휴게실 설치를 요구할 수도 없고 언론제보는 꿈도 꿀 수 없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 깔때기처럼 생긴 호퍼에 콘크리트를 담으면 그 무게가 3톤이나 된다. 호퍼는 현장에서 콘크리트를 운반에만 쓰이는 장비인데 타워크레인으로 인양해 타설 노동자들이 밑 부분을 잡아 움직여 콘크리트를 거푸집에 붓는다. 인양중인 호퍼가 끊어져 추락사고나 피하다 발생한 협착사고가 끊이지 않았다. 대안으로 CPB(콘크리트 플레이싱 붐) 설치를 고안해냈다. 건물이 올라 갈때마다 '붐대'를 같이 올리면 안전하게 타설작업을 할 수 있었다. 분배기 등을 사용하는 것보다 부실공사 우려도 낮았고 공사기간 단축에도 도움이 됐다. 건설사도 환영했고 전국적으로 확산되면서 안전여건도 좋아지고 있었다. 타설노동자 김용기씨는 2022년부터 부산·울산·경남건설지부 타설분회를 돌며 홍보활동하고 공사 관계자들에게 CPB 설치를 약속하는 협약서를 받기도 했다. 하지만 김씨는 다른 사건으로 경찰·검찰 조사를 받는 과정에서 "왜 CPB 설치를 요구했느냐?"는 질문을 받았다. 김용기씨는 "안전을 외치니 범법자가 돼 부당강요 협박범으로 조사를 받고 검찰에 기소되고 참담하다"고 말했다.


11일 민주노총 건설노조와 더불어민주당 을지로위원회가 서울 영등포 국회의원회관에서 공동주최한 '노조탄압이 건설현장 노동안전보건에 끼치는 영향' 토론회에서 나온 건설노동자들의 현장분위기 증언이다.

건설노조는 이날 조합원을 대상으로 지난 8~9일 스마트폰 구글독스를 이용한 설문조사를 발표했다. 2654개의 응답을 받았다.

설문조사에 따르면 건설노조가 탄압을 당하면서 건설현장에 끼친 영향(중복응답)으로 61.3%가 '불법도급 만연'을 꼽았다. 이어 노동강도 쎄짐(53.2%), 임금 축소(50.0%), 부실공사 증가(46.7%), 노동시간 연장(44,5%), 체불 증가(26.4%) 등이 뒤를 이었다.

2022년 1월 6명의 노동자의 목숨을 앗아간 HDC현대산업개발 광주 화정아이파크 붕괴참사의 원인인 동바리 조기해체, 콘크리트 양생 불량 등이 시정됐느냐는 질문에 '참사 전과 다를 게 없다'는 응답이 50.9%였다. 13.1%는 (노조탄압 등으로) '더 안좋아졌다'고 답했다.

윤석열정부가 들어선 이후 건설현장 변화에 대한 질문도 있었다.

건설현장 불법도급 정도에 대한 질문에는 '매우 만연해졌다'(100% 불법도급)는 응답이 36.7%, '만연해졌다'(70% 이상 불법도급)가 35.1%로 나타났다.

응답자의 78.4%는 미등록 이주노동자 늘었다고 답했다.(매우 늘었다 60.9%+늘었다 17.5%) 건축상태에 대해서는 61.3%가 부정적으로 평가했다.(매우 부실 27.3%+부실 34.0%)

'안전발판이 제대로 설치돼 있지 않는 등 위험상황에서 작업중지를 할 수 있느냐'는 질문에 34.0%가 '할 수 없다'고 답했다. 그 이유에 대해서는 노조탄압 여파로(22.6%) 건설사 눈치가 보이기(34.0%) 때문이라고 꼽았다.

고용노동부는 2022년 11월 '중대재해 감축 로드맵'을 발표하면서 위험성 평가를 핵심수단으로 제시했다. 위험성 평가는 노·사가 함께 사업장 내 유해·위험요인을 스스로 파악해 개선대책을 수립·이행하는 제도다.

하지만 응답자 55.9%는 건설사들이 통보만 할 뿐 TBM(작업 전 안전점검)을 할 때 노동자 의견을 묻지 않는다고 답했다. 의견을 청취한다는 22.8%였다.

손익찬 일과사람 변호사는 '건설노조 조합원' 신분을 밝히고 건설현장에서 일어난 불법행위를 '안전신문고'나 '국민신문고'에 공익신고한 노동자들이 개인정보 유출 사례를 소개했다. 불법행위를 신고했다가 오히려 신고자가 건조물침입 등 혐의로 경찰조사를 받거나 건설사에 이름과 휴대전화 번호, 민원 내용이 넘어가는 경우도 있었다.

손 변호사는 "건설현장에서 이뤄지는 불법행위를 보고 민원을 제기했을 뿐이지만, 돌아오는 것은 피의자로 수사받는 것, 신상정보가 공개된 것으로 범죄행위"라고 말했다.

이어 "이는 건설노조 조합원 신분을 밝힌 민원 전체에 관해서는 민원내용의 진실성을 떠나서 민원인을 법률적으로 괴롭히겠다는 의미로 이해된다"며 "안전하고 깨끗한 건설현장을 만드는 것에는 관심이 없고 기업을 귀찮게 하는 조합원을 벌주겠다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전문가들은 중대재해 감축을 위한 핵심이 자기 규율에 기반한 위험성 평가라면 자기 규율의 핵심 주체로서 노조와 노동자들의 참여권을 보장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류현철 (재)일환경건강센터 이사장은 "건설업 안전보건에서는 조직된 노조의 요구가 실제로 현장의 재해예방에 기여해온 바가 크다"면서 "노조를 탄압하고 노사 간의 현저한 힘의 불균형을 초래하거나 노조 존재 자체를 부정하는 상황 속에서는 현장의 위험을 드러내는 일은 입바른 소리로 치부되고 결국 중대재해로 이어져야만 현장의 위험이 드러나게 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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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남진 기자 njhan@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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